부모들의 절실함을 이용하지 마세요!
부모들의 절실함을 이용하지 마세요!
부모들의 절실함을 이용하지 마세요!
2017.09.28 17:46 by 류승연

“승연아~ 어디서 들었는데 침으로 발달장애 아이들을 고치는 데가 있다더라. 동환이 좀 데려가 보지 그러니.”

전화를 걸어 온 친정 아빠의 목소리가 제법 심각하다. 하지만 아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큰소리로 거절부터 한다. “에이~ 아빠. 그거 이미 다 알고 있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동환이는 침 안 맞을 거예요.”

큰 딸의 단호한 거절이 못마땅한 아빠는 계속해서 설득하려는 시도를 해 본다. 사랑하는 외손주가 평생을 지적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데, 침을 맞아 조금이라도 상태가 나아질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니겠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침으로 지적 장애가 고쳐진다면 맞지 않을 이유가 없다. 침 한 번 맞는 데 천 만원이라 해도 부모들은 줄을 설 것이다. 집도 팔고, 은행에 대출 신청도 하고, 마지막엔 장기라도 팔지 모른다. 하지만 침으로는 발달장애가 고쳐지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고쳐진다는 말 자체가 잘못 됐다. 발달장애에 완치란 없다.

001

20대의 성인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엄마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아들이 동환이 나이쯤이었을 때 ‘발달장애 업계’에는 침 치료 열풍이 불었단다. 뇌의 어디어디를 자극하면, 무슨무슨 기능이 활성화 되어 어쩌고저쩌고. 몇 시간 씩 한의원에서 대기하다 침을 맞았단다. 수 천 만원을 한의원에 갖다 바쳤단다. 결과가 어땠냐고? 짐작하는 대로다.

만일 침으로 지적장애와 자폐증이 고쳐진다면(?) 이건 인류 역사가 진일보할 획기적인 발견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석학과 전문가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지만 아직 원인조차 찾지 못한 발달장애 치료법을 대한민국 한의원에서 찾아낸 것이니 말이다. 비슷한 경우가 매번 되풀이 되었다고 한다. 어느 시기에는 이런 요법이, 어느 시기에는 저런 요법이 발달장애 업계를 휩쓸었다고. 그 때마다 엄마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르르 줄을 섰다고.

요즘은 어떠냐고? 요즘은 해독주스와 우슈가 화제다. 누군가가 발달장애 카페를 통해 해독주스와 우슈 요법(?)에 관해 설파를 했고, 많은 엄마들이 호응을 하며 요법(?)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해독주스와 우슈가 발달장애의 치료에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행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누구도 모를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봐야 알 문제다. 수많은 전문가도 생각하지 못했던, 진짜 효과가 있는 획기적인 치료법일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의사와 제약업계는 고개 숙이고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는 제 성장 속도대로 커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마침 우연하게도 그 시기에 해독주스와 우슈를 접하게 돼 하나의 뛰어난 치료법으로 승격(?)을 해 버린 해프닝이라면…. 그 때는 어찌해야 하나.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모든 건.

다만 이러한 흐름을 바라보면서 우려스러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새로운 치료법에 열심인 일부 부모에게서 ‘장애’를 무찔러야 할 적폐쯤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나 역시 장애 아이를 둔 엄마다. 아들은 아홉 살인데도 아직 말을 못하고 밥도 혼자 못 먹는다. 생후 13개월부터 이런 치료, 저런 치료에 돈도 갖다 바칠 만큼 갖다 바쳤다. 지금도 솔직한 심정으론 어떤 치료든 좋으니 이런 아들을 획기적으로 바꿔줄 치료가 있으면 맨 앞에 가서 줄이라도 서겠다.

002

하지만 그런 치료라는 게 과연 있을까? 설령 있다 해도 그 과정이 아이를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고, 몸에 무리를 준다면…. 그래도 나는 치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걸까? 내 아이에게서 ‘장애’라는 적폐를 몰아내기 위해 힘든 과정을 참고 극복하는 것. 그것이 진정 아이를 위하는 길일까?

해독주스를 마시고 부작용이 일어나는 아이의 사례를 보면서도 몸에 독소가 빠져나가는 과정이라며 자신의 아이에게 계속 주스를 권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 처음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선배 맘들이 겪어 왔던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침을 맞았고, 누군가는 이름도 생소한 어떤 치료들에 매달렸다. 일반적인 치료에 실망한 부모들의 욕구를 채워줄 ‘유행하는 치료법’은 언제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 자꾸만 반복되는 이러한 흐름을 보면서 나는 드러난 현상 밑에 숨은 ‘무엇’을 찾고 싶어진다.

새로운 치료법의 발견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인류의 발전은 새로운 도전이 거듭되면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장애 당사자와 가족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발생하는데도 계속 목적만을 위해 간다면, 그 때는 겉으로 내세운 목적이 아닌 그 밑에 숨은 ‘진짜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들의 절실함을 이용하려는 ‘어떤 의도’ 말이다.

자식이 장애 확진을 받는 순간부터 부모들은 ‘발달장애 업계’라는 이상한 세계에 입문을 한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도 모르고, 룰도 정보도 없다. 원래 세계에 살던 사람들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상한 세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하는 건 자신들뿐이다.

외롭고, 슬프고, 아프기만 한데 자식을 보면 암담하다. 왜 이상한 소리를 지르고 팔짝팔짝 뛰는 걸까? 아이가 좋아질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좋다는 치료법에 대한 소문이 들린다. 어떤 치료를 받으면 아이가 어떻게 된단다. 귀가 솔깃해진다. 절실한 내 마음에 내려온 한 줄기 빛 같다.

나도 나도 받게 할래. 그 치료.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야. 시간이 문제가 아니야. 내 자식이 좋아질 수 있다고 하잖아. 내 목을 옳아 매는 이 이상한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단 말이야. 받아야 해. 치료해야 해. 난 엄마니까, 부모니까!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어. 줄을 서야 해! 어서!

(사진:Arthimedes/shutterstock.com)

사실 발달장애 업계는 블루오션(무경쟁시장) 지대나 다름없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시스템이 없고, 제대로 된 법칙도 없는데 시장은 매우 크게 형성돼 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빈틈 많고 진출할 곳 많은 ‘발달장애 업계’의 구멍을 파고들어 이익을 챙기려는 불순한 무리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발견되곤 한다. 사이비 시설, 사이비 학교, 사이비 치료실, 사이비 직업장 등 나열하면 끝이 없다. 그 모두는 부모들의 절실함을 이용한다. 내 아이를 조금이라도 ‘정상인’에 가깝게 만들고 싶은 부모들의 ‘욕구’를 건드린다. 장애는 평생 완치되는 질병이 아니란 걸 알지만, 평생을 안고 가야 할 특성이라는 것도 알긴 알지만, 그래도 절실함이 더 크다.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은 절실함을 따른다.

어찌해야 할까?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러한 현상을. 이러한 마음을.

일단 할 수 있는 말은 제발 장애 아이 부모들 좀 이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부모 된 자들의 절실함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죄질이 극히 나쁘다. 그리고 ‘발달장애 업계’라는 이상한 세계에 속한 우리 부모들도 중심을 바로 세웠으면 한다. 어떠한 유혹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아이를 지킬, 굳건한 중심 말이다. ‘장애’는 몰아내려 해도 몰아내지지 않는다. 무슨 짓을 해도 몰아내지지 않는 ‘장애’라면, 장애를 가진 내 아이와 하루라도 더 행복할 방법을 찾는 데 에너지를 소비하는 게 낫다. ‘장애’를 몰아내려고 애쓰는 대신에.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