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위해 남의 아이를 키웁니다
내 아이를 위해 남의 아이를 키웁니다
내 아이를 위해 남의 아이를 키웁니다
2017.09.29 17:40 by 제인린(Jane lin)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섬집 아이> 중에서

 

국내 베이비시터 비용은 월평균 119만 원, 입주 시에는 300만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제 엄마가 굴 따서 버는 돈 정도론 아이의 베이비시터 비용을 내기도 버겁죠. 중국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최근 중국 내에 거주하는 한국인 엄마들이 높은 유치원 비용을 대기 위해 유치원 보조교사나 한국어 교사 등 투잡을 뛰는 경우가 높다고 하네요. 자신의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해 남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 이들의 속사정을 들어볼까요?

(사진: Makistock/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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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선 

필리핀 국적의 20대 여성, 아라씨는 자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홍콩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올해로 벌써 3년째 홍콩에 거주하고 있죠. 그녀의 직업은 중국인 부부의 자녀를 돌보는 ‘베이비시터’입니다.

홍콩에서 통용되는 베이비시터의 월급은 입주 여부에 따라 상이합니다. 이중 아라씨는 ‘입주 보모’입니다. 매일 아침 오전 6시에 일어나 늦게 서야 잠이 드는 2명의 아이를 전담하는 것이 주된 업무이죠. 아이들이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받는 시간에는 잠깐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에도 그녀는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거나 세탁, 청소 등의 업무를 하며 고단한 하루를 보냅니다.

그렇게 한 달 일하고 받는 돈은 50~60만 원 정도. 아라씨는 “춘절(중국 최대 명절)과 중추절 등의 기간에는 약 1000위안(약 20만 원) 가량의 보너스를 받기도 한다”며 “현지에서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괜찮은 수준”이라고 설명합니다.

필리핀 내 공무원 월급 수준이 월 20~25만 원에 불과한 걸 감안하면 그녀의 수입은 결코 적은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모국에 두고 온 유치원생 두 자녀를 생각하면 ‘이게 맞나’싶을 때도 많습니다. 자신의 자녀 대신 남의 자녀를 맡아서 키우고 있는 셈이니까요. 이 같은 사연은 홍콩 중산층 가정에 입주해 사는 대부분의 외국인 베이비시터에게 해당됩니다.

홍콩뿐 아니라 중국 본토 대륙 도시에도 아라씨와 같은 사정을 가진 한국인 엄마들이 많습니다. 중국의 경제 발전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자신의 아이 대신 중국인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모양새죠.

(사진: TonyV3112/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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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

중국 유치원 등록비용은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중국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엄마들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의 교육 수준은 낮은 수준이지만, 교육비만큼은 상당히 빠르게 치솟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유치원 비용의 경우, 최근 5년 동안 급격히 올라 월평균 200만 원을 호가하는 곳이 상당하다네요.

더욱이 최근 들어와 베이징, 상하이, 선전, 충칭, 난징 등 1~2선 대도시를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는 쌍어(双語) 유치원의 원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죠. 영어와 중국어, 또는 그 외의 외국어 다수를 지도한다는 뜻에서 ‘쌍어’ 유치원이라고 불립니다.

이곳에서 각종 찬조금 명목으로 거둬들이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월평균 400만 원을 훌쩍 넘어섭니다. 현지 물가와 월급 수준에 비교해 보면, 일반 회사원들은 감히 꿈도 못 꿀 정도로 높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대도시를 중심으로 소재한 대형 유치원의 대부분이 쌍어 유치원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일반 로컬 유치원을 찾는 것이 어려워진 형편이죠.

학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거주지 인근에서 운영 중인 쌍어 유치원을 선택합니다. 자신의 월급 수준과는 별개로 말이죠. 그렇지 않은 경우 도심 외곽에 소재한 로컬 유치원에 등원시켜야 하는데, 도심 외곽까지 평균 1~2시간의 이동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어렵죠.

문제는 바로 이 지점. 자녀를 해당 유치원에 등원시킬 수 있는 여력이 안 되는 부모들에게 발생합니다. 중국 현지의 한국인 근로자의 경우 한국에 소재한 본사에서 중국 주재원으로 파견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중 현지 자녀 교육 시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을 해당 기업에서 100% 지원받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죠.

과거 상당수 기업체에서 주재원 자녀들에 대한 교육비 일체를 지원했었지만, 매년 이 지원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하는 추세입니다. 한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해외에서의 한국 기업의 위상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말들이 오고 간 2010년대 초반부터 말이죠.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어려운 경제 사정은 곧장 현지 소재의 하청 업체에 타격을 입힙니다. 현지 하청 업체의 상당수가 과거 주재원으로 일했던 한국인 근로자가 독립해 설립한 업체들이거든요. 현지 진출 한국 대기업에 각종 부품을 공급하거나 제조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하청업체 모두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 기업인 셈이죠.

올 초 고고도 미사일 사드(THAAD) 사태 이후 365일 24시간 3교대로 운영했던 기업체가 줄도산을 겪었습니다. 현재는 대부분의 기업이 주5일, 일평균 8시간 근무체제로만 운영됩니다. 이처럼 어려운 때인지라 주재원과 그의 가족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이죠.

영어를 구사하는 필리핀 국적의 베이비시터를 소개하는 중국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 (출처: 58同城)

이 같은 현실 탓에 한국인 학부모들은 맞벌이의 세계로 뛰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적합한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죠. 주재원으로 파견된 근로자의 배우자 가운데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이는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딱 맞는, 한국에서 제법 고등 교육을 받았지만 현지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구직자에게 적합한 일이 바로 유치원 보조교사나 한국어 교사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인증받은 기관의 정규 한국어 교사 채용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결국 유치원 보조교사 또는 어린이집 보조교사 쪽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죠.

해당 업무는 주로 일주일에 서너 차례 출근한 뒤 유치원 아이들을 지도하고 교육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아직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연령대의 아이를 돌보는 일이 대부분이라 근로자의 업무 만족도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가정 또는 중국인 가정의 자녀를 키우는 필리핀 국적의 여인의 삶은 중국 현지 언론을 통해서도 종종 보도됩니다. 자신의 자녀 대신 타국의 국적을 가진 가족의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여인들의 삶은 대게 ‘기구하다’는 표현으로 언론에 보도되곤 하죠. (사진: 바이두 이미지 DB)

비정규직 보조 교사로 고된 노동을 하고 손에 쥐어지는 월급은 2000~4000위안(약 40~80만 원)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는 앞서 설명한 쌍어 유치원에 자녀를 등록할 시에 소요되는 월 200~400만 원의 교육비로는 턱없이 모자라는 금액이죠. 때문에 해당 업무 외에 남는 시간을 활용해 과외를 시작하는 등 일거리를 늘려나가는 학부모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주로 시간당 최대 200위안(약 4만 원) 수준의 비용을 받고 한국어에 관심이 높은 이들에게 한국어 과외 수업을 진행합니다. 과외 수업의 참여자 대부분은 유치원생, 초등학교 저학년들이죠.

이렇게 마련한 수입은 곧장 자녀가 쌍어유치원 또는 학교에 입학하는 자금으로 활용됩니다. 많은 주부들이 외국까지 와서 일에 치여 사는 것에 회의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더 슬픈 건 자신들의 업무가 자신의 아이보다 ‘남의 자녀’를 돌보는 것이라는 점이죠.

중국의 경제 수준이 과거와 다르게 고공 성장을 거듭하는 반면, 삶에 어려움을 겪는 현지 한국인의 사례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진: 바이두 이미지 DB)

‘엄마’라는 이름으로 내 아이의 교육비 마련을 위해서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이들. 내 아이를 위해 남의 집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한 이들. 이 모습은 과거 한국인 부부의 자녀를 돌보기 위해서 자신의 아이를 돌보지 못했다던 중국인 입주 베이비시터들의 가슴 아픈 사연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불과 십수 년 사이에 정반대의 입장이 된 중국 내 한국인 가정의 모습. 앞으로 수년 뒤에는 또 어떻게 변할까요?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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