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간다’고 쓰고 ‘팔려간다’고 읽는 나라
‘시집간다’고 쓰고 ‘팔려간다’고 읽는 나라
2017.10.19 10:50 by 송희원

소녀들은 눈물겹습니다. 신체‧정신적으로 받는 차별이 쌓이고 쌓여 경제‧사회적 약자의 길로 내몰립니다. 눈앞에 난관들은 결국 미래의 기회까지 앗아가죠. 시대착오적인 얘기라고요? 전 세계 ‘일하는 아이’의 75%가 여아이며, 만성적 기아의 시달리는 인구의 60%도 그들입니다. 열 명 중 한 명의 여성이 유년기에 성폭행을 당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바로 오늘날의 얘깁니다. 더퍼스트미디어는 매년 10월 11일 ‘세계여자아이의 날’을 맞아 개발도상국 소녀들의 현실을 들여다봅니다. 

“절대 안 해요! 전 학교에 다니고 싶단 말예요…”

열세 살 소녀 타나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말했다. 딸의 단호함에 부모들은 당황한다. 도대체 무엇이 어린 소녀를 이토록 완강하게 만들었을까?

방글라데시의 시골마을 ‘쇼키뿔’에 사는 타나(가명‧13)는 가난한 집안의 막내딸이다. 쇼키뿔이 원래 가난한 농촌마을이지만, 타나의 집 형편은 친구들보다 조금 더 어렵다. 직접적인 원인은 아버지의 건강 문제였다. 농사일을 하던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자, 어머니가 하루 벌이에 나섰다. 그녀가 일용직으로 일하며 버는 돈은 하루 300다카(한화 약 4000원). 일거리가 매일 나오는 것도 아니라 궁핍한 생활을 벗어날 방도가 마땅찮았다.

양철로 지어진 타나의 집은 화장실조차 딸려 있지 않다(좌), 식수로 사용하는 지하수는 철분 등이 함유돼 있어 위생적이지 않다.(우)

부모가 가난 극복의 대안으로 삼은 건 막내딸의 결혼이었다. 고작 초등학생인 소녀를 비밀리에 시집보내려 했던 것. “열심히 공부해 의사가 되고 싶다”던 타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얘기다. 타나 위의 두 언니는 이미 출가한 지 오래다.

 

엄마에게서 딸에게로... 대물림 되는 조혼의 굴레

인도 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방글라데시는 고온다습한 기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살아간다. 국토면적은 대한민국의 1.5배 정도지만, 인구는 3배가 훌쩍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이에 비해 교육시설과 사회기반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방글라데시가 가난한 나라의 대명사가 된 이유다.

표면적으론 늦게나마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 유엔이 결의한 ‘새천년개발목표(MDGs)’의 ‘초등교육 보편화’ 의제를 지키고자 초등교육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초등학교 등록률이 절반 정도에 그친다. 남자아이들은 학교 대신 일터로, 여자아이들은 결혼으로 내몰리는 탓이다.

그중에서도 조혼 문제는 방글라데시의 뿌리 깊은 악습이다. 남자들은 어린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선호하고, 가난한 가정에선 경제적인 이유로 여아를 일찍 결혼시키는 문화가 굳어져 있다. 심지어 조혼 시 신부 측에서 오히려 지참금을 보내기도 한다. 어린 신부가 자랄 때까지 신랑 측이 밥값이나 생활비를 대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숫자로 나타난다. 방글라데시에선 10명 중 2명의 여성이 15세 이전에 결혼하며, 18세 이전 조혼율은 무려 52%에 달한다. 이는 전 세계 조혼율 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방글라데시의 여성 10명 중 6명이 18세 이전에 결혼한다.
방글라데시의 여성 10명 중 6명이 18세 이전에 결혼한다.

 그나마 ‘먹고 살길’을 찾기 쉬운 도시의 상황은 나은 편이다. 시골로 갈수록 상황은 더 나빠져 10명 중 8명 이상이 18세 이전에 결혼한다. 당연히 당사자보단 부모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한다. 방글라데시 부모들은 최소한의 의식주조차 보장되지 못한 딸의 미래를 위해선 조혼이 그나마 나은 선택이라고 믿는다. 방글라데시 현지에서 4년여 동안 활동하고 있는 김정석 굿네이버스 방글라데시 지부장은 “현지 부모들은 자신의 딸이 조혼을 통해 의식주를 보호받는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아동들의 교육받을 권리 등이 박탈되는 건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동들이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되어 자신들의 삶과 꿈을 저당 잡히고 있는 셈이다.

 

제 인생 제가 스스로 결정할 순 없는 건가요?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시 북동쪽 ‘밀뿔’지역에 사는 사디아(가명‧16)는 최근 큰 기대에 부풀어 있다. 고등졸업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다카대학교에 지원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방글라데시 국립대학교 중에서도 최상위 레벨에 속한다. 사디아는 대학에 들어가 회계학을 공부하고 장차 은행에서 일하는 게 꿈이다.

하지만 하마터면 이런 꿈조차 꿀 수 없을 뻔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버지가 계속 결혼을 종용했기 때문이다. 딸이 만류하자, 온 가족에 친척들까지 나서 사디아를 설득했다.

사디아가 당시의 아찔한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어른들은 가난한 집 여자아이들이 조혼하는 걸 당연하다고 여겨요. 심지어 또래의 여자아이들도 결혼 안 한 친구들이 오히려 ‘하자’가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저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았고, 제 미래를 직접 그리고 싶었거든요.”

조혼의 위기를 탈출한 사디아 양.

다행히 스스로의 의지와 주위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사디아는 꿈을 지킬 수 있었다. 만약 사디아가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조혼을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일단 자연스레 학업은 중단된다. 혼인 후 이어지는 임신‧출산과 떠안게 되는 집안일을 생각하면 공부는 언감생심이다.

정신과 신체의 건강 측면에서도 악영향을 피할 수 없다. 어린 나이에 출산하는 산모는 고혈압과 합병증의 위험이 높고, 신생아들도 조산과 저체중 출생의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김정석 지부장은 “세계적으로 보면 매년 5만 명의 십대 임산부가 임신‧출산 중에 사망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임신우울증을 앓거나 정서적으로 두려움과 불안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잦다”고 덧붙였다.

학업이 중단되고, 정신‧신체가 연약해지면서 사회적 관계의 고리는 끊어진다. 가정에서 남편이 시키는 대로 생활하며 자신의 발언권마저 차단된다. 결국 취약한 아동 인권으로 야기된 조혼이 성인여성의 인권약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결혼한 아이들이 가정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워낙 어린 나이니 집안에 말썽이 생기기 마련이죠. 결국 화목함과는 거리가 먼 가정생활이 이어지고, 아픔과 상처만 안게 됩니다. 이런 게 반복되면 삶의 의지도, 자신감도 점점 떨어지죠. 가장 축복받아야 할 결혼으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삶을 사는 겁니다.”(김정석 지부장)

 

“아미 호떼 짜이~(I Want to be~)”, 소녀의 꿈은 지켜져야 한다

“결혼을 일찍 해야 청소년기의 여아들이 성폭력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여자 나이가 많으면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날 수 없다.”

방글라데시의 조혼은 매우 오랫동안 고착화된 관습이다. 위에 나열된 것처럼 그릇된 사회적 인식이나 사회적 낙인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정도다.

방글라데시 정부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2021년까지 조혼 비율을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인다. ▲15세 이하 결혼을 완전히 금지한다 ▲조혼 시 벌금을 현행 1000다카에서 10만 다카(한화 약 140만원)로 100배 인상한다 등의 조혼금지 정책을 세워 시행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지 주민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 결국, 올해 초 “특수한 사정일 경우 부모 허락 아래 가능”이란 예외 조항이 생기기도 했다. 심지어 불법을 눈감아주거나, 공무원이 뒷돈을 받고 아동의 나이를 조작해 조혼을 돕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많은 국제구호단체들이 방글라데시의 아동과 부모들을 대상으로 조혼예방사업을 펼치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다. 지난 2010년부터 ‘아동권리위원회(Child Right Council)’을 조직해 아동들에게 조혼금지 의식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굿네이버스 방글라데시도 그중 하나다.

가장 주력하는 부분은 아동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김정석 지부장은 “가족‧친지 모두가 압박해도 본인의 의지가 강하면 이겨낼 수 있다”면서 “우린 교육을 통해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하고, ‘청소년위원회 (Youth Council)’를 조직해 함께 실천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주변의 관심도 필수다. 앞서 사디아가 조혼을 피했던 건 선생님‧지역사회‧친구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응원해준 덕분이었다. 김 지부장은 “주변의 관심은 현장 최일선에서 가장 잘 듣는 처방전”이라고 했다. 이에 굿네이버스 방글라데시는 ‘아동권리지킴이(Child Right Keeper)’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지역사회 리더들과 학교 선생님으로 구성된 이 조직은 부모가 자녀를 조혼시키려는 움직임이 감지되면 가정에 직접 찾아가 아동의 부모를 설득한다. 아동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지역민들의 모임 ‘아동보호위원회(Child Protection Commision)’와 ‘좋은아빠(Good Daddy) 프로그램 등도 같은 맥락이다.

굿네이버스 방글라데시의 ‘아미 호떼 짜이((I Want to be~)’는 아동이 꿈을 세우고 발표하는 프로그램이다.(좌)/아동 조혼 반대 거리 캠페인 전경(우)

이런 활동의 목표는 단 하나. 방글라데시의 소녀들이 강제 결혼과 조기출산으로 인해 ‘엄마’의 길로 내몰리는 게 아니라, 먼 훗날 자신의 의지로 그 자리에 안착해 행복한 삶과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우리를 비롯해 많은 단체들이 방글라데시의 조혼 문제를 극복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조혼 비율을 보이죠. 몇몇 단체의 힘만으로 방글라데시 1억 6000만 명 사람들의 삶을 바꾼다는 게 사실 헛된 꿈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치지 않고 얘기하고, 교육하고, 변화를 보여준다면 언젠간 전환점이 마련될 것이란 걸요.”(김정석 지부장)

 

/사진: 김정석 지부장 ‧ 굿네이버스

* 이 콘텐츠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국제구호개발NGO ‘굿네이버스’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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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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