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하는 몸에 대하여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쓰고 그린, 「여자아이의 왕국」
생리하는 몸에 대하여
2017.11.14 11:42 by 지혜

지난 한 주는 최악이었다. 생리 때문이다.

생리를 할 때 어려운 점은 여럿 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굴을 낳는 듯한’ 찝찝한 느낌, 생리대나 탐폰 혹은 생리컵 등을 쓰며 생기는 불편한 상황이나 상태, 의지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뻗치는 짜증과 우울 그리고 어김없이 이어지는 자책, 지속적으로 반복되지만 치료는 불가능한 통증 같은 것들.

중학교 1학년 때 시작해서 지금까지, 20년이 넘었다. 임신과 수유 기간을 빼고 한 달에 한 번씩 일주일이니까 어림잡아도 300번 2100일이 훌쩍 넘는 날들 동안 ‘나는 생리 중’이다. 이 정도의 반복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능숙해지기 마련이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일수록 생리에 잘 대처했다. 찝찝한 느낌이 들어도 참았고, 실수로 옷이나 의자에 묻어 창피해도 참았고, 생리대에 피부가 쓸려서 따가워도 참았고, 잠이 미칠 듯이 쏟아져도 참았고, 땅 속으로 꺼질 듯 우울해도 참았다. 참지 않으면 “너만 생리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유난”이 되어버리니까. 점점 생리에 익숙해졌다. 그저 참아냄으로, 마치 생리를 안 하는 몸처럼 보이려고.

다행히 참지 않아도 되는 한 가지가 있다. 생리통이다. 나의 통증은 무자비한 누군가가 배 깊숙이 두 손을 넣어 힘껏 쥐어짜는 느낌이다. 아무리 오래 반복을 해도 통증은 적응할 수가 없다. 더 괴로워질 뿐이다. 그래서 진통제를 먹는다.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진통제 종류는 제법 많아 직접 먹어보고 통증의 강도를 체크하는 방식으로 내 몸에 잘 듣는 약을 찾아냈다. 액상으로 된 이부프로펜을 먹고 좀 심하다 싶을 때는 나프록센을 먹는다.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진다. 참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폐경까지 잘 넘기리라 마음 놓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늘 먹었던 약을 먹고 30분쯤 지났을까. 통증이 가라앉기도 전에 얼굴, 특히 눈이 너무 간지럽더니 붓기 시작했다. 보기 흉할 정도로 퉁퉁 부어서 이틀 동안 선글라스를 끼고 다녀야 했다. 이부프로펜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싶어 먹은 나프록센도 마찬가지다. 의사는 자극을 줄수록 증상이 점점 심해져 기도가 막히는 경우도 있으니 절대 먹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제 먹을 수 있는 진통제는 나의 생리통에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아세트아미노펜밖에 없다.

지난 주 생리를 시작하자마자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타이레놀 두 알을 먹었다. 통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미리 먹어두어야 한다. 약을 안 먹고 버티다가 통증이 심해지면 그때는 먹어도 소용이 없다. 이 사실도 겨우 몇 년 전에 알았다. 일찍 알았다면 나는 그만큼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나와 우리는 생리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으니까, 생리에 대해 잘 몰랐다.

그토록 경건하게 약을 삼켰지만 예상대로 아세트아미노펜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다음 달에는 아세트아미노펜에 진정제 성분이 추가 된 약을 먹어봐야겠다고 여러 번 다짐하며 통증을 고스란히 참았다. 뜨거운 팩을 아픈 배 위에 올려두고 잠이 들었다가 깼다가했다. 아이 밥마저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너무 미안한데 아프다. 다시 생리에 대해 생각한다. 내 몸인데 왜 내 마음대로 안 될까, 나는 내 몸을 원망해야 할까, 폐경까지는 얼마나 남았을까, 그 때까지는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내 아이도 나를 닮아서 생리통이 심할까, 약 알레르기까지 닮아서 진통제도 소용없지 않을까,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며 생리통이 심하니 쉬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생리하는 몸을 이해받을 수 있을까, 나처럼 내 몸을 원망하게 될까, 잘 참아낼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왜 참아야할까.

 

우리는 마법에 걸린 공주가 아니다, <여자아이의 왕국>

 

첫 생리를 시작한 딸에게 엄마와 아빠는 특별한 말 몇 마디를 건넨다. “공주야, 오늘 너는 여자가 된 거야.” 이날부터 여자아이는 자기 왕국의 주인이 된다. 하지만 즐겁지 않다. 무섭고 아프기 때문이다. 그림책은 생리의 고통을 숨기지 않는다. 생리는 세찬 강줄기와 아무렇게나 떨어지는 폭포 또는 폭발하는 화산이다. 딱딱하고 불편한 것이다. 어둡고 낯선 숲에서 독사과를 먹은 공주처럼 아프고, 유리산 꼭대기에 갇힌 공주처럼 외롭고, 높은 탑에 갇혀 마법에 걸린 공주처럼 졸립다. 여자아이는 왕국 안에서 불행하기만 하다. 그러나 도망갈 수 없다.

몇 년이 지나고 여자아이는 서서히 왕국을 다스리는 법을 알게 된다. 세찬 강줄기와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폭포 옆으로 포근하고 따뜻하게 머물 곳을 찾아낸다. 어두운 숲도 친근해지고 자신을 감시하는 용도 약간은 길들이게 되었다. 왕국 안에서 자신의 길을 잘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길을 간다.


내가 배운 생리는 기능으로서만 존재했다. 생리를 하는 이유와 현상만을 중요하게 여겼지, 생리를 하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구체적인 감정들에 대해서는 모두가 무심했다. 그런 점에서 성교육의 일부가 아닌 생리 그 자체를 전부로 그려낸 <여자아이의 왕국>은 의미 있는 그림책이다. 그렇지만 딸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 오랫동안 생리를 경험한 아니 참아낸 내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공주야, 오늘 너는 여자가 된 거야.”

아이는 생리를 시작하며 여자라는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여기에서 여자는 곧 공주다. 마법에 걸린 공주라는 프레임 안에서 생리는 비밀스럽고 신비한, 여자들만 알아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리고 그렇게 자기만의 왕국에 갇혀버린다. ‘생리를 하는 몸’으로 이 세계에 남지 못하고 ‘여자다운 몸’이 되어 이 세계를 떠나야 한다. 여자아이는 왕국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나’와 ‘세계’의 소통이 막혀버린 차가운 벽 안에서 홀로 찾은 그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조용히 참아내는 것은 아니었을지. ‘여자답게’ 말이다.

나와 나를 낳은 사람 그리고 내가 낳은 사람 모두 생리를 경험한다. 이토록 평범하고 보편적인 고통이 지극히 사적인 고통이 되어버렸다. 여자아이는 아픔과 불편함에 대해 말하고 듣는 기회를 잃었다.

언젠가 나의 딸이 첫 생리를 한다면, “이제 너도 여자가 되었다” 말하지 않겠다. “너의 성장을 축하한다” 말할 것이다. 나는 나의 딸이 ‘생리하는 몸’ 그대로 이 세계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같은 몸과 다른 몸 사이에서 자신의 몸에 대해 큰소리로 묻고 답할 수 있기를. 왕국 바깥에서 길을 만들어내고 그 길 위에서 나보다 덜 아프고 덜 불편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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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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