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에서 사업가로…성공과 상생
윤정환씨는 사무기기 관리 전문 엔지니어 출신이다. 뭐든 고치는 게 좋았던 윤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엔지니어의 길에 들어섰다. 발군의 손재주는 금세 입소문을 탔다. “컴퓨터부터 프린터, 복사기 등 다양한 사무기기를 남들보다 더 신속하게, 더 말끔히 수리하는 기술자”로 불렸다. 돈이 모이자, 동지들도 모았다. 나름 성공가도를 달리던 시절 얘기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삼성·LG·HP 등의 공식서비스센터가 제 역할을 못했어요. AS 소화량이 10~20%에 불과했죠. 나머지는 모두 사설 수리업체에서 떠맡았던 덕분에 일감이 넘쳐났습니다.”
소위 ‘리즈시절’에 대한 윤씨의 회상이다. 이에 힘입은 윤씨는 매장과 엔지니어를 대폭 늘리며 사세를 확장해 갔다. 한창 시절 그의 매장은 30곳에 달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던가, 이후 그는 수익보다 상생을 실현시키려 애썼다. 각각의 매장을 엔지니어들에게 맡겨 독립시키는 방식을 통해서다. 자금이 필요하면 지원했고 자신에게 들어온 일감도 공유했다. 윤씨는 “사업 초기부터 상생을 제1원칙으로 삼았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위기와 변화 속 실패한 ‘버티기’… 10년 만에 겪은 좌절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위기가 찾아왔다. AS의 중요성을 자각한 브랜드업체들이 서비스센터를 대폭 늘렸고, 튼튼해진 기기들은 고장도 덜 났다. 경쟁이 과열되면서 일감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처음엔 엔지니어들과 함께 협동조합 형식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공동으로 일감을 나누고 가격도 낮춰 서비스센터와 경쟁했다. 그러나 수요는 크게 오르지 않았고 한번 기울어버린 업황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손해는 불어만 갔고 많은 엔지니어들이 그를 떠났다. 결국 10년 차가 되는 해,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이 ‘망했다’.
“그땐 참 순진했어요.”
모든 것을 잃은 윤씨가 착잡한 듯 말했다. 윤씨는 “정의로운 길을 가야한다는 이상에만 기댄 채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는 둔감했다”고 토로했다.
|“인생이든 사업이든 ‘더불어’가 제맛입니다.”
안양의 맥가이버는 현재 재기에 여념이 없다. 경기도 판교의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자식뻘 되는 동료들과 창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간 일했던 분야의 인프라를 살려 ‘사무기기 통합솔루션 서비스’를 구상 중인데, 윤씨의 경험과 전문성은 최고의 무기로 꼽힌다.
핵심은 ‘찾아가는 서비스’. 사용자가 직접 무거운 기기를 들고 서비스센터나 사설 수리업체를 찾아가야 했던 기존 방식에 대한 도전이다. 기기의 픽업과 전달은 최근 아파트마다 설치된 무인택배함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주문과 결제 등의 과정은 별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뤄진다. 실제 수리는 윤씨와 제휴한 엔지니어들이 맡게 된다.
물론 아직은 리스크 투성이다. 수요를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데다, 고객 컴플레인이 발생할 경우 과정이 번거롭다는 약점도 있다. 무인택배함을 공유하는 방법이나 사설업체와의 계약 조건 등 세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윤씨는 도전을 멈출 생각이 없다. 지난 10년을 손해보며 버티다 보니 어지간한 난관은 웃어넘길 수 있는 그다.
그가 성공하고 싶은 진짜 이유는 돈이 아니다.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다. ‘상생을 통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말이다.
“요즘 스타트업하는 젊은 친구들 보면 참 대단해요. 빠르고 정확하거든요. 그런데 너무 빨리 가려다 보니, 멀리 가는 걸 놓치는 것 같아요. 멀리 가려면 ‘함께’가야 하는데…. 이익 창출에만 너무 매몰돼 상생이란 키워드에 무감각한 게 아쉽더라고요. 함께 이뤄내면 성취감의 크기가 다릅니다. 많이 말아먹어본 제가 하는 얘기니 믿으셔도 돼요.(웃음)”(윤정환씨)
/사진: 윤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