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쫓았다 꿈에 다다랐다
차별 없는 디자인을 꿈꾸는 청년
사람을 쫓았다 꿈에 다다랐다
2017.12.13 14:48 by 송희원
자신을 ‘이상하게 끌리는 놈’이라 소개하는 이성재씨

이성재씨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아버지 영향이 컸다. 하지만 이씨가 재능을 펼치기엔 집안 사정이 녹록지 않았다. IMF 풍파를 겪던 가족은 터전을 옮겨야 했고, 이씨 역시 일산에서 대구로 전학을 갔다.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아버지 상황이 너무 힘든 거예요. 새로 전학 간 학교의 교복 한 벌 사달라는 말을 못 했죠. 얼굴에 철판 깔고 ‘오래 못 있을 거 같으니 교복 남는 거 있으면 하나 나눠 입자’고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새로운 학교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투리도 잘 못 알아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다닐만한 재미난 요소를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미술을 생각해냈다. 선생님을 찾아가서 미술동아리 개설을 부탁했지만 돌아온 건 “이 학교에는 미술 하려는 애들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때부터 전 학급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함께 할 부원들을 찾았다. 마침내 미술을 좋아하는 학생 11명을 모았다.

“학교에서 지원금을 안 받는 조건으로 교실을 하나 내줬어요. 아버지 미술용품을 가져오고 자비를 털었어요. 수업이 끝나자마자 모여서 열심히 그렸죠.”

노력의 결과 부원들은 대회에 나갈 때마다 상을 타왔다. 졸업식 날 학교에선 동아리의 리더였던 그에게 공로상을 줬다. 그 이후 그는 미술에 대한 꿈을 계속 키웠다. 하지만 집안 형편상 수업료가 비싼 예술고등학교는 무리였다. 결국, 학비를 지원해주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산업디자인 인재를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전교에 단 3명만 있는 특별반이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만 했다.

고등학교에서 작업한 포트폴리오

 

| 소원이요? 사람 좀 소개시켜주세요…

고3이 되자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미술학원을 등록했다. 다행히 아버지 지인이 운영하는 학원이었고 저렴하게 다닐 수 있었다. 그는 수업이 끝날 때마다 혼자 남아 자발적으로 청소를 했다. 우연히 그 모습을 접한 학원 선생님. 꽤나 대견하게 봤나 보다.

“선생님이 제 사정을 듣곤 부탁 하나 들어주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멘토 한 분만 소개해달라고 했죠.”

몇 달 뒤 선생님이 소개해준 사람은, 미술작가로 활동하는 주동진 교수(서울과학기술대)였다. 이후 졸졸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묻고 배웠다.

“교수님을 따라 전시회를 많이 다녔는데, 그때 사람들에게 저를 소개해 줬어요. 그 사람들 통해 배운 게 많았거든요. 그때 깨달았죠. 절실하면 뭐든 배울 수 있다는 걸요. 내가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러 다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이내 자퇴서를 냈다. 등록금에 대한 부담도 컸지만, 무엇보다 세상과 직접 부딪치며 배우고 싶었다. 그에게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준 교수님과 선배들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사실 자퇴를 한 건 성급한 결정이었어요. 하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세상을 경험하는 저 자신의 방식을 찾았으니까요.”

 

| 운명적으로 만나다, 3D 프린터와

이성재씨의 학창시절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돈이 없어 옷 한 벌 맘 편히 못 샀다”고 할 정도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 차별 없이 사용하고 만족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고 싶은 이유다. 그 수단을 발견한 건 군대에서였다. 이씨는 “TV에서 3D 프린터를 보고는 바로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3D 프린터는 모델링(3차원 설계도면)만 있으면 저렴하고 쉽게 제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 ‘차별 없는 서비스를 만들자’는 그의 꿈을 이뤄주는 최적의 기술이었다.

3D 프린터 모델링 작업과 시제품

“전역 후 상경해서 3D 프린터 학원을 등록했어요. 그때 당시에는 학원도 많이 없어서 학원비가 무척 비쌌어요. 한 달 등록금은 냈는데, 두 번째 달부터는 힘들겠더라고요. 돈을 벌어야 했죠. 그때 마침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와디즈를 알게 되었죠.”

그 길로 ‘라이트 픽쳐(사진을 조명으로 만든 인테리어 소품)’를 직접 제작해 펀딩 프로젝트를 띄었다. 흰색 사진판을 3D 프린터로 출력해 조명을 비추면 사진이 보이는 원리다. 물론 ‘뚝딱’ 이뤄낸 건 아니다. 을지로에 있는 조명가게들은 거의 전부 돌아다녔고, 거기서 수거한 조명기를 모조리 분해·조립해보며 원리를 체득하는 과정이 선행됐다. 그렇게 완성된 제품은 펀딩 사이트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다니던 3D 프린터 학원에선 이 활동을 높이 평가해 이씨를 디자인 팀장으로 스카우트했다.

“학원에서 라이트 픽쳐 모델링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학원 사장님이 그걸 본 거예요. 그 후 사장님 제안으로 디자인 팀장이 됐어요. 학원에 3D 모델링 작업 의뢰가 들어오면 제가 했죠.”

라이트 픽쳐(좌), ‘2016 메이커 페스티벌’에서 이씨는 자신이 제작한 라이트 픽쳐와 의상을 선보였다

 

| 아이템이 아닌, 꿈으로 모인 사람들

그는 현재 경기도 판교의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미리봄(MILIBOM)’이란 플랫폼을 만드는데, 소비자가 온라인, 오프라인, 모바일 등 다양한 경로를 넘나들며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소비자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의류나 화장품 같은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고, 이를 NFC(Near Field Communication, 근거리 무선 결제시스템)로 구매하면 공장에서 바로 배달되는 프로세스다.

미리봄 서비스의 핵심기술인 NFC결제시스템은 빠른 접속 속도를 기반으로 10초가 걸리던 기존 구매속도를 1초로 단축한다. 공대 연구소까지 찾아가 기술에 대한 조언을 듣고 협력까지 요청한 상태다. 시제품은 내년 1월 중, 완성된 버전은 3월쯤 출시하는 것이 목표. 그는 이 서비스를 중소기업 제품에 적용할 계획이다.

미리봄 서비스 프로세스

이 프로젝트는 이미 상당 시간을 공들여온 작업이다. 그가 콘퍼런스나 대학교 교육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알게 된 개발자, 마케팅, 경영, 법률 전문가들이 팀을 꾸린지 벌써 1년이 넘었다. 모두 “차별 없는 디자인”이라는 꿈을 위해 모인 이들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느꼈어요. 정말 무엇이든 절실하게 하고 싶으면 사람들에게 다가가 부탁하면 된다는 걸요. 밥도 엄청 많이 얻어먹었어요(웃음). 앉아서 고민하고 자료를 찾는 것보다 직접 찾아가 관계 맺는 게 훨씬 더 값진 일이에요. 제 경험상 만났던 모든 분이 기꺼이 시간을 내서 경험을 나누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꿈을 함께 이뤄주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죠.”

‘2016년도 사회적기업 창업전문과정’ 교육에서 발표하고 있는 이성재씨

 

/사진: 이성재

 

필자소개
송희원

목표 없는 길을, 길 없는 목표에 대한 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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