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보호자
나는 당신의 보호자
2017.12.14 14:54 by 키만소리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평소라면 퉁명스럽게 ‘어, 왜?’ 하며 받을 언니의 전화였지만, 여행이 끝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수화기 너머의 언니는 나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잘 좀 하지 그랬어. 네 성질에 엄마 모시고 여행 간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영어 한마디 못하는 엄마를 챙기지는 못할망정 무슨 그런 고생만 시켰냐는 말이었다. 나도 나름대로 힘든 점이 많았다고 반박해 봐도 소용없었다. 언니의 잔소리는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었다. 전화를 끊고 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았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이 못생겨 보인다. 못난 마음들이 가득 비쳐서 그런걸까. 아니면 나의 잘못을 모른 척한 부끄러움 때문일까.

찌는 듯한 동남아 더위에 미련하게 뚜벅이 여행을 고집했다. 발바닥이 까매질 정도로 걷고 또 걸었다. 방콕의 매연이 쉬지 않고 들어오는 버스에 앉아 피곤한 몸을 뉘였던 엄마. 무릎이 저려 밤마다 다리를 주물러야 겨우 잠을 잘 수 있던 엄마. 그런 엄마를 배려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렇게 힘들어할 거면 왜 왔냐며 핀잔을 줬다. 언니 말이 맞다. 나는 엄마한테 잘했어야했다.

55년생, 엄마의 여행 나이는 고작 다섯 살 정도. 떨어지는 낙엽도 신기할 나이. 혼자보다는 함께 걷는 걸 좋아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맛을 모르고, 보호자가 사라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나이. 나는 그런 다섯 살 엄마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보일 ‘효녀’ 이미지에만 충실했지 엄마에게 진심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보호자 없이 낯선 땅 위에 혼자 서 있었던 엄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감,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코끝이 찡해졌다.

버스에서 내리자 갓 튀긴 꽈배기 냄새가 났다. 시장 갈 적에 엄마가 꼭 사주시던 옛날 꽈배기였다. 단 걸 싫어하는 엄마는 꽈배기에 묻은 설탕을 탈탈 털어 드시곤 했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사과할 용기가 없던 나는 꽈배기 뒤에 숨기로 했다.

“아저씨, 꽈배기 2천 원 어치만 주세요. 설탕은 빼고요.”

하얀 기름종이에 담긴 꽈배기가 뽀얀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식기 전에 집으로 가자.

이 콘텐츠는 첫눈출판사에서 출간한 책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의 내용을 재가공한 것입니다. 키만소리 작가와 책에 대해 더욱 궁금하신 독자분들은 첫눈출판사 브런치로 방문해 주세요.

필자소개
키만소리

프리랜서 피처 에디터. 카카오 브런치에 '엄마야 마음 단디 먹고 배낭 메라'라는 제목으로 여행 웹툰 에세이를 연재해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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