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화법이 싫었다. 엄마는 상관없어. 어디든 좋아. 다 괜찮아.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나. 엄마표 3종 철벽 방어에 여행 지역부터 기간까지 여행에 관계된 모든 것들을 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
대체 왜 그러시는 걸까. 엄마는 어떤 질문에도 원하는 것을 명쾌하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 엄마, 짜장면 어때? 면은 좀 그렇지 않냐. 그럼 삼겹살 먹을까? 기름진 건 별로지 않니? 그럼 엄마가 먹고 싶은 걸 말해봐. 뭐 먹고 싶어? 아니 그냥 삼겹살이나 먹자. 그리고 집에 돌아와 TV를 보던 엄마가 냉면이 나오는 장면에서 군침을 삼키며 말한다. 아우 맛있겠다. 엊그제부터 냉면 먹고 싶었는데 삼겹살 먹고 나니까 생각나네.
본심을 숨기려면 차라리 끝까지 꼭꼭 숨기면 좋을 텐데. 꼭 뒤늦게 나타나는 엄마의 본심이 내 승부욕을 자극한다. 표정에 드러나는 것처럼 솔직하게 한마디만 해주면 좋을 것을. 엄마는 결코 말하는 법이 없고, 자꾸 나와 스무고개를 하니 문제인 것이다. 사소한 일이야 참을 수 있지만 목돈을 들이는 배낭여행이라는 생각에 나의 참을성은 조금씩 바닥을 드러냈다. 나는 정색하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건 ‘우리의’ 여행이야. 내가 좋아도 엄마가 싫을 수 있고, 엄마가 좋아도 내가 싫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엄마 생각을 정확히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어.”
엄마는 입을 샐쭉 내밀고 있다가 겨우 입을 뗐다.
“…엄마는 옛날 사람이라 너처럼 그렇게 말하는 게 조금 어려워.”
형제 많은 시골집 막내로 태어나 뭐든 새것보다 언니 오빠에게 물려받는 것이 익숙했던 엄마. 결혼하고도 좋고 싫고를 따지기보다 형편 안에서 되는 대로 만족하며 살아왔고, 나와 언니가 태어난 후로는 우리를 우선순위에 두고 살았다는 엄마. 그래서 뭐가 좋다, 뭐는 싫다, 표현하는 일이 낯설단다. 처음 알았다. 엄마가 솔직할 수 없었던 진짜 이유를.
호불호를 가릴 한 치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던 팍팍한 엄마의 삶이여. 좋아하는 걸 잊어버릴 만큼 빠듯하게 걸어온 세월이여. 멋모르는 딸의 무정함에 속마음을 꺼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제야 들렸다. 엄마의 진짜 대답이.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거면) 상관없어.
어디든 (네가 좋아하는 곳이면) 좋아.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거라면) 다 괜찮아.
처음부터 엄마의 말엔 내가 담겨 있었다. 평생을 엄마 그늘 아래 살면서 엄마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엄마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참 많았다. 여행이 끝날 쯤엔 엄마에게 더 다가섰을까. 이 여행이 왠지 우리 관계를 변하게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콘텐츠는 첫눈출판사에서 출간한 책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의 내용을 재가공한 것입니다. 키만소리 작가와 책에 대해 더욱 궁금하신 독자분들은 첫눈출판사 브런치로 방문해 주세요.
프리랜서 피처 에디터. 카카오 브런치에 '엄마야 마음 단디 먹고 배낭 메라'라는 제목으로 여행 웹툰 에세이를 연재해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