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네 글자에 14억이 열광하다
대륙은 지금, 창업 전성시대
‘스타트업’ 네 글자에 14억이 열광하다
2018.01.03 11:32 by 제인린(Jane lin)

‘촹커(创客)’

IT신기술을 활용한 혁신적인 창업자를 뜻하는 신조어이자, 지난 2016년 중국 정부가 꼽은 올해의 단어이기도 하다. 당시 중국 전역을 들썩이게 했던 ‘창업’과 ‘창업자’에 대한 열풍은 2년이 훌쩍 지난 2018년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광활한 대륙 ‘중국’. 이곳에서 왜 하필이면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창업’ 열풍이 뜨겁게 불고 있는 것일까.

사실 중국이 수년째 7%대의 고공성장을 기록 중인 신경제 대국이란 걸 감안하면, 비교적 안정적이면서도 고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회사원 또는 공무원이 각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중국 유수의 대학으로 손꼽히는 베이징대와 칭화대, 인민대 등을 중심으로 창업 열풍이 수년째 이어지며, 최근에는 2~3선 도시로의 확산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안정적인 시대에 실패가 난무하는 위험천만한 창업 생태계에 몸을 던지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셈이다.

 

| 中 창업 열풍은 어디에서 불어오는가

14억 인구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창업 열풍을 설명하기 위해선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인 측면을 상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아는 중국의 정치는 반외세적인 동시에, 외세를 따라 하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모순된 면모를 보인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 문화의 우수성에 거리낌 없이 열광하는 것이다.

이런 성향은 SNS 채널을 통해 잘 나타난다. 중국 정부는 지금껏 국내 어느 곳에서도 전 세계인이 애용하는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유명 SNS의 사용 및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심지어 검색에 최적화된 포털 사이트인 구글조차 중국에선 접속 불가다. 중국인들은 하는 수 없이 자국민이 만들어 운영하는 아이치이, 텅쉰, 웨이신, QQ 등의 SNS로 소통하고, 바이두를 통해 인터넷 검색을 한다. 그런데 열거한 것들 모두 해외에서 먼저 만들어진 각 분야의 온라인 서비스를, 이름만 바꿔 그대로 따라 한 형태다.

각 서비스는 이름과 생산지만 바뀌었을 뿐 해외 유명 서비스들과 매우 유사하다. 재밌는 건 해당 서비스들이 개발 직후부터 14억 인구라는 어마어마한 고객을 확보한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가 외국 유명 온라인 서비스를 완벽히 봉쇄하는 정책을 취함으로써, 이들 서비스 업체가 승승장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중국에 거주하는 기간 동안 중국 국내용 SNS와 포털 사이트 등을 이용해 정보를 공유하고,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고 있다. 구글이나 유튜브와 같은 해외 계정으로의 접속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런 규제는 다음 블로그, 네이버 밴드, 카카오톡과 같은 한국산 어플리케이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시 주석이 해외 SNS 허가규정을 폭넓게 인정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지만, 이는 단지 앱 다운로드 영역에 대한 허가일 뿐, 가입절차 과정은 여전히 접근 불가 사항으로 제한해 놓았다. 허울만 좋은 허가 규정인 셈이다.

중국 정부가 단단히 세운 온라인 세상에서의 장벽은 곧장 중국 국내산 어플리케이션과 IT 업체의 승승장구를 불러왔다. 그리고 가히 ‘호황기’라고 불릴 만큼 빠르고 지속적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이들 대부분 지난 2013년 무렵 시작한 스타트업들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중국을 대표하는 온라인 업체, 일명 B.A.T(바이두, 알리바바, 텅쉰)는 현재 중국판 구글, 아마존, 유튜브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 안정적인 직장? 너무 심심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의 창업자가 줄을 잇는 이유는 쉽게 설명된다. 일각에선 ‘중국 경제의 하향세와 취업 불능 청년의 속출’이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의 수를 크게 늘렸다고 평가하지만, 필자의 분석은 약간 다르다. 오히려 지난 십수년 동안 꺼지지 않는 경제 호황이 보다 많은 수의 창업 꿈나무를 양성해왔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실제로 현재의 중국의 경제상황은 과거 우리나라가 가장 가파른 경제 호황을 누렸던 80~90년대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우리의 부모님, 언니, 오빠, 형들은 누구나 이 시기 취업 후 돈 모아 집 한 채 장만하는 것을 꿈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그 꿈을 이뤘을 것이다. 현재 한국의 20~30대들보단 비교적 쉽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의 경제 호황은 당시 한국보다 훨씬 가파르다. 중국의 현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은행대출로 새 주택을 구입하고, 그렇게 구입한 주택은 1년 후 어김없이 매도가격의 두 배 이상 껑충 뛰는 현상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다. 전 세계 유례없는 경제 호황기에 살고 있는 중국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취업과 공무원의 길은 다소 ‘심심’한 길로 여겨질 뿐이다.

중국 정부가 스타트업을 위한 창업 특구로 지정한 베이징 소재 중관촌

 

매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자산을 소유한 젊은 청년들은 따분한 직장 생활 대신, 화끈한 한 방을 꿈꾼다. ‘알리바바(alibaba)’를 창업한 마윈(馬雲)처럼 말이다. 마윈 역시 불과 십여 년 전에는 월급 1000위안(약 16만원) 남짓의 영어교사에 불과했다. 나라에서 해외의 질 좋은 온라인 서비스를 방패로 막아주면서, 자국의 청년들에게 ‘창업’의 땅을 개척하라고 등까지 떠미는 모양새인데, 이쯤 되면 중국 청년들에겐 창업에 도전하지 않아야 할 마땅한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려워 보인다.

 

| 손쉬운 사회 재진입의 교두보 역할

마지막으로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창업 열풍을 들여다보자. 이제 중국 젊은이들에게 창업은 하나의 사회현상이자, 재미있는 문화로 여겨진다. 대학 졸업을 앞둔 예비 졸업자들은 공기업 입사나 공무원 시험 준비 대신, 캠퍼스 내 개설된 창업 동아리 문을 두드리고, 저마다 작지만 의미있는 사업 아이템 발굴에 열중한다.

대표적인 창업지구로 꼽히는 베이징 서북쪽의 중관촌 이노웨이(inno way)에는 이 같은 대학생 예비 창업자와 동아리의 입주를 반기는 무료 사무실이 즐비하다. 중국 정부와 베이징 시정부는 투자자와 선배 창업자를 모아 하루도 빠짐없이 투자 설명회를 연다. 이를 통해 창업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창업자금 역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이 일대에서 청년들은 창업자금 명목으로 1회 최대 100만 위안(약 1억 6000만원)을, 최장 3년(무이자)까지 제공 받을 수 있다. 반짝이는 창업 아이템만 있다면 누구나 제2의 마윈을 꿈꿀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가 스타트업을 위한 창업 특구로 지정한 베이징 소재 중관촌

비단 IT나 하이테크만의 얘기가 아니다. 결혼 후 출산이라는 과정을 겪은 여성들에게 ‘창업’은 비교적 손쉬운 사회 재진입 방식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중국인의 혼인 적령기는 20대 초중반. 빠른 결혼과 출산 과정을 겪는 중국 여성들에게 사회 재진입은 필수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때 수공예 제품을 직접 제작·유통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창업해 성공하거나, 자녀들이 소유했던 영유아용 장난감을 공유하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성공하는 사례가 적잖이 소개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을 가리키는 ‘촹예마마(创业妈妈, 이하 창업마마)’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중국 산동위성TV는 매주 한 차례씩 ‘촹예마마(创业妈妈)’라는 프로그램으로 이들의 활약을 보도한다.

지난해 첫 방송에 소개된 영유아 장난감 브랜드 ‘베이베이성(贝贝城)’ 창업자 자오(赵)씨도 출산 후 창업에 성공한 여성으로, 그녀가 운영하는 장난감 매장은 제품 구매 전 직접 체험이 가능한 놀이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선(先)체험 후(後)구매’가 가능한 매력적인 곳인 셈이다.

지금까지 중국의 창업 열풍을 소개하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인 측면을 조금씩 살펴봤다. 필자가 주목하는 중국의 창업 열풍은 이제 시작이다. 지금까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정도로 치부됐다면, 앞으론 진짜 혁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혁신은 지금껏 서양세력이 주도했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의 판도를 크게 바꿔 놓을 것이다.

 

/사진: 제인린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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