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노노, 그곳은 ‘희망도시’였다
조선족 밀집지역에서 만난 사람들
범죄도시? 노노, 그곳은 ‘희망도시’였다
2018.01.04 17:58 by 최현빈

환한 대낮, 두 남자가 거리 한복판에서 칼을 들고 서로를 위협한다. 갑작스런 상황에 주민과 상인은 물론 인근 경찰들도 어쩔 줄 모른다. 한 영화에서 그려낸 조선족 밀집지역의 풍경이다.

#1. 우마길_ 왠지 모를 불안감이 감도는 거리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골목은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에 위치한 ‘우마길’. 서울의 대표적인 조선족 밀집지역 중 하나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그곳은 정말 흉악한 범죄의 소굴일까?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우마길로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서울지하철 7호선을 타고 남구로역에서 내리면 된다. 역 출구를 빠져나오자 붉은 글자가 새겨진 간판들이 맞아준다. 서울 속의 작은 중국이랄까. 3분 정도 걷자 우마길의 초입이 보였다. 골목 앞에는 환전소와 함께 파출소 지구대의 모습이 눈에 띈다.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지만, 괜히 불안했다. 안전한 골목엔 저런 게 필요하지 않았을 테니까.

우마길 골목의 모습

#2. ‘연길순희냉면’의 최씨_ “아들과 영상통화하며 시름 잊어요”

우마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상인들도 마찬가지. 어떤 가게들은 계산을 위한 금액을 제외하곤 한국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골목을 배회하다 한국어로 ‘신장개업’이라 쓰여진 음식점에 들어갔다. 탕수육을 시키자 우리가 흔히 ‘꿔바로우’라 부르는 톡 쏘는 새콤한 맛의 중국식 탕수육이 나왔다. 이곳의 종업원인 최씨(35∙여)에게 이곳 생활에 대해 물었다.

우마길에 온 지는 얼마나 됐나?

최씨(이하 최): 4개월 정도 됐다. 중국 길림성에 살다가 돈을 벌기 위해 취업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은 처음이다.

혼자 돈을 벌기 위해 온 것인가?

최: 맞다. 남편이랑 아들은 중국에 있다. 2개월 전에 가족을 보러 중국에 한 번 다녀왔다. 그래도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매일 밤 아들과 영상통화를 한다. 하루의 유일한 낙이다.(웃음)

혼자 타국에서 지내면 가족들이 걱정할 법도 한데

최: 일이 힘들지 않냐는 걱정은 한다. 매일 오전 10시 반에 출근해 오후 10시 반에 퇴근하니까. 한국 생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어차피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중국사람인걸.

몇몇 한국 사람들은 중국인 밀집지역을 무서워한다

최: 나도 들었다. 영화 <범죄도시>도 봤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별 문제 없이 산다.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고, 일이 끝나면 자고. 휴일엔 친구를 만나거나 쇼핑을 한다. 한국 사람들도 이렇지 않나?

우마길 사람들의 모습. 생각보다 평범하다.

맞다. 똑같다. 한국에 함께 온 친구들이 있나?

최: 나처럼 돈 벌러 넘어 온 친구들이 있다. 대림동에 한 명 살고 안산시에도 산다. 거기도 동포들이 많이 사는 동네다.

중국인들은 왜 모여서 지내나?

최: 일단 말이 안 통하니까. 그나마 우리는 어느 정도 말이 되는데, 한족은 그렇지 않다. 이곳 골목을 보면 조선족 말고도 한족 사람들도 많이 들어와 살고 있다.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모여 사는 게 훨씬 좋다.

그럼 다른 동네에 사는 지인이나 친구는 없나?

최: 다른 동네 사는 동포가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못 들었다. 그리고 우리들에겐 여기가 훨씬 안전하다.

영화 <범죄도시> 봤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별 문제 없이 산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휴일엔 친구도 만나고… 한국 사람들도 이렇지 않나?

최씨가 일하는 식당의 모습

#3. 술집 ‘사계흥면식점’의 임씨_”영화는 영화일 뿐, 실제 칼부림 본 적 없어”

이야기가 끝나고 사진 촬영을 부탁했지만, 최씨는 끝끝내 거절했다. 그렇게 다시 골목으로 나왔다. 우마길은 전형적인 유흥가의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가게는 술집과 노래방, 음식점이었다. 해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자,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분식집과 술집을 겸하고 있는 ‘사계흥면식점(四季興面食店)’에 들어갔다. 임문상(56)씨는 9년 전 형과 함께 이곳 우마길에 가게를 차렸다.

가게에서 일하시는 다른 분들은 한국말은 전혀 못하더라

임문상(이하 임): 여기 일하는 분들은 모두 한족 분들이다. 한국말은 전혀 못한다.

사장님은 한국말이 익숙한데?

임: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으니까. 거의 16~17년 되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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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집 겸 주점을 운영하는 임문상 씨의 모습

가게를 차리기 전엔 무엇을 했나?

임: 처음 한국에 왔을 땐 형님과 함께 공사판을 전전했다. 8년 동안 각지를 떠돌며 돈을 모았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인가?

임: 큰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다. 여기 오게 된 사연은 좀 긴데…

간략히 이야기해 줄 수 있나?

임: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원래는 한국 사람인데, 6∙25전쟁 때 중국으로 피난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큰아버지만 남쪽(남한)으로 내려갔고, 그렇게 이산가족이 된 거다. 나랑 형님은 중국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 온 거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

임: 중국과 남한은 편지나 돈을 주고받는 행위가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고향을 늘 그리워했다. 지금도 음식 때문에 힘들어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난다. 아무튼, 1997년에 이산가족상봉 방송을 접했다. 큰아버지가 한국에서 가족을 찾고 있던 거다. 그때 방송국에 편지를 했고, 한국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그렇게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다시 만났고, 3개월 뒤 다른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넘어왔다.

 

1983년, KBS에서 방송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아버지는 한국 문화가 익숙했겠지만, 자식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

임: 맞다. 우리 세대는 모두 중국에서 태어났으니까. 지금도 한국 음식은 입에 잘 안 맞는다. 문화도 익숙하지 않고.

어디를 가나 음식이 가장 중요한가보다

임: 우마길에 중국인이 모여 사는 것도 다 음식 때문이다. 한국에 사는 중국인들은 고향의 맛을 늘 그리워한다. 가끔 한국 음식을 먹는 건 괜찮은데 날마다 먹으면 물린단다. 타지의 한국 사람들도 비슷할 거다. 음식 장사를 생각한 것도 이런 부분 때문이었다.

중국에서도 요리 솜씨가 좀 있었나 보다

임: 형님과 함께 재주를 좀 익혀서 왔다. 처음엔 중국식 꽈배기와 호떡, 전병 등을 팔아 가게를 시작했다. 지금은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중국인 주방장을 고용했다.

6∙25때 중국으로 피난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게 이산가족이 됐는데, 1997년이산가족상봉을 계기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한국을 너무 그리워해서

우마길의 가게는 대부분 술집, 음식점, 노래방이다.

가게를 처음 차릴 당시 이곳 골목의 모습은 어땠나?

임: 그때는 지금처럼 번화하지 않았다. ‘금산각’이나 ‘왕중왕’같은 유명한 몇 개 식당이 있었을 뿐이다. 그 가게들이 이곳에서 장사한 지 15년이 넘었으니, 진정한 이 골목의 산 증인인 셈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인인가?

임: 주말엔 한국 사람들도 좀 온다. 최근엔 영화에 나온 골목이라고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몇몇 상인들은 그런 영화가 불편할 법도 한데

임: 대체로 ‘영화는 영화다’란 분위기다. 술 취해서 싸우는 사람들은 있지만 칼을 들고 설치는 사람들은 한번도 못 봤다. 대림동 사람들은 그런 영화가 장사에 악영향을 준다고 시위도 하고 그런다더라. 정작 영화는 여기서 찍었는데.(웃음)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

임: 실제 모습이 그러니까. 그리고 취객이 난동을 부려도 112만 누르면 바로 와서 해결해준다. 파출소가 바로 앞에 있다. 아마 당신이 사는 곳보다 출동이 빠를 거다.

이곳을 좋아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임: 당연하다. 삶의 터전이니까. 특히 아침에 일어나서 조깅하는 걸 좋아한다. 골목과 학교 주변으로 뛰고 오면 그렇게 상쾌할 수 없다.

삶의 목표가 있다면?

임: 집을 사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이젠 가족들도 모두 모였고, 이 동네에 집을 구해 오래오래 장사하며 살고 싶다.

 

/사진: 민동오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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