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때?” 엄마의 수영복 패션에 온 가족이 웃음을 터트렸다. 여행 배낭을 꾸리다 챙겨 갈 수영복이 마땅치 않다는 걸 깨닫고 부랴부랴 언니의 수영복을 입어본 것이다. 그런데. 언니의 수영복은 엄마에겐 작아도 너무 작았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탈락이었다.) 아빠는 고개를 돌렸고, 언니와 나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무룩해진 엄마는 여행을 안 다녀봐서 수영복 하나 없다며 서글픈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수영복을 사달라는 이야기다. (엄마는 효심 찌르기 작전이 먹힌 후로 종종 같은 작전을 썼다. 딱 이번만 마지막으로 넘어가준다.)
“에잇, 내가 수영복 하나 사줄게. 가자!” 그렇게 엄마와 함께 수영복 매장으로 향했다. 직원의 추천을 받아 엄마에게 어울리는 비키니를 몇 벌 골랐다. “이 나이에 비키니 입으면 주책인데….” 말은 그래도 비키니를 보는 엄마의 눈은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처럼 빛났다. 탈의실에서 나온 엄마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뱃살이 이렇게 튀어나와도 괜찮냐며 부끄러워하는 엄마 표정이 너무나 해맑아 뱃살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
엄마가 고른 비키니는 오렌지 빛깔 꽃과 초록색 빛깔의 잎사귀가 피어난 것이었다. 예뻤다. “어디 놀러 가시나 봐요.” 직원 언니의 한마디에 엄마는 호호 웃으며 묻지도 않은 걸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 딸이 엄마랑 여행 가자고. 호호. 그것도 해외여행을 가자네.” 엄마는 비키니를 입고서 딸과의 여행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어디를 가는지, 얼마 동안 가는지, 가서 무엇을 할 건지, 상세하게 읊는 엄마에게 ‘엄마, 제발 그만해. 비키니라도 갈아입고 말해’ 눈빛을 쏘았지만 소용없었다.
“우리 딸이 수영복 하나 사준다고 해서. 호호”
“어머, 효녀네요.”
나는 엄마의 주책 때문에 수영복 매장에서 세상 제일 효녀가 되었다. 비키니가 담긴 쇼핑백을 손에 들고 집으로 향하는 엄마의 발걸음은 가벼워보였다. 엄마의 말처럼 효녀가 된 기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엄마와 여행을 가는 딸이 몇이나 있나 싶더라. 그래서 자신 있게 말을 꺼냈다.
“엄마, 나 효녀야?”
엄마는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딸, 효녀는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야.”
아니 아줌마, 그 포인트가 아니잖아요. 지금 굉장히 감동적이고 센서티브한 순간이라니까. 하여튼 이 아줌마랑은 정말 안 맞아. 감동 포인트가 달라도 너무 달라. 이렇게 다른데, 우리 진짜 잘 다녀올 수 있을까?
이 콘텐츠는 첫눈출판사에서 출간한 책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의 내용을 재가공한 것입니다. 키만소리 작가와 책에 대해 더욱 궁금하신 독자분들은 첫눈출판사 브런치로 방문해 주세요.
프리랜서 피처 에디터. 카카오 브런치에 '엄마야 마음 단디 먹고 배낭 메라'라는 제목으로 여행 웹툰 에세이를 연재해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