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우리 반에 장애인이 있다면?
새 학기, 우리 반에 장애인이 있다면?
2018.01.24 16:40 by 류승연

새 학기를 앞두고 모두가 설레는 마음이다. 그런데 3월 개학을 맞아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뜻밖의 얘길 꺼낸다. “엄마, 우리 반에 이상한 아이(발달장애인)가 있어”

어떤 아이냐고 물으니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도 가끔씩 낸단다. 엄마 입장에선 덜컥 겁이 난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엄마의 마음은 더 하다. 첫 학교생활에 장애 아이가 한 반이라니. 담임선생님이 장애 아이를 돌보느라 우리 아이한테까지 신경을 써줄까도 의문이고, 발달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니 불안하기만 하다.

엄마들 인맥을 총동원해 장애 아이에 대한 정보수집에 나서고, 장애 아이가 학교에서 매일 어떤 행동으로 수업 방해를 했는지를 두고 열을 올린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대중심리’에 발동이 걸린다. 이상하고 위험해 보이는 장애 아이에 대한 편견과 불안감이 슬금슬금 모두에게 확산된다.

“어떡하지? 어떡해? 걔 때문에 반 분위기 흐리는 거 아니야?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까?”

장애 아이의 엄마이자 비장애 아이의 엄마이며, 장애인 아들이 반 전체의 주적도 되어 보고, 비장애인 딸의 반에 또 다른 장애 아이가 있어 학교폭력위원회(이하 학폭위)가 열릴 뻔한 경험을 모두 갖고 있는 나는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괜찮다고. 같은 반에 장애 아이가 있어도 괜찮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진짜 걱정해야 할 것은 장애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라고. 그리고 장애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의 불안이라고.

내가 장애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하는 말 아니냐고? 노노. 겪어 보면 안다. 한 학급이 1년 동안 운영되는 과정에서 진짜 문제가 장애 아이인지 아닌지. 지나보면 알게 된다.

이쯤에서 비장애인 딸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때는 2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그 시절 딸의 학급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특수학급이 개설돼 있지 않다. ‘정상’이라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흔히 ‘정상인’이라고 부르는 일반 아이들이 다니는 보통의 초등학교다.

3월 초, 유치원 엄마들 단톡방 곳곳에서 알람이 울린다. 우리 딸 반의 어떤 남자애 때문에 지금 누구 엄마 등이 학교에 쫓아가고 난리가 났단다. 아는 거 없냐고 묻는다.

딸에게 물어보니 반에서 누구랑 누구랑 싸워서 선생님한테 혼났다는 얘기를 한다. 그런 일이 몇 번 더 있었다고 한다. 그랬나보다 하고 지나간다.

3월 말 학부모총회가 열린 후 같은 반 엄마들 간의 비상연락망이 완성되고 단톡방이 새로 꾸려진다. 모임도 잦아지고 여러 대화가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특정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오른다. 폭력적인 그 아이 때문에 벌써 몇 명이 피해를 봤다는 얘기다.

이런 사건을 모르고 있던 엄마들도 깜짝 놀란다. 그 아이가 얼마나 심한 ‘악행’을 저지르는지 여기저기서 엄마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남자아이들은 맞서 싸우기라도 하지, 여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마음은 더 불안하다.

이제 엄마들은 길에서 지나칠 때마다, 카페에서 차를 마실 때마다, 함께 점심을 먹을 때마다 그 아이에 대한 얘기만 나눈다. 불안감이 모두의 마음을 잠식한다.

그러다 한 엄마가 총대를 멘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지내겠다고. 학폭위 개최를 위한 엄마들 소집령을 내리고 담임선생님과도 면담을 요청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하나 밝혀진다. 단지 나쁜 아이인 줄로만 알고 있던 그 아이는 ADHD(과잉행동장애)를 갖고 있단다. 당사자 아이의 부모도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다가 자꾸 학교에서 사건이 터지니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은 후 비로소 알게 됐단다.

ADHD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아이는 매우 뛰어난 인지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공격적인 성향만 두드러지는 경우였다. 아이가 성격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었다는 것, 스스로도 충동을 억제할 수 없는 호르몬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고조된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는다.

학폭위를 열기 위해 담임선생님과 해당 아이의 부모, 학급 엄마 십수명이 교실에 둘러앉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학폭위는 열리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선을 그은 것이다. 분노하는 다수의 엄마들에 맞서 홀로 해당 아이를 지킨 것이다.

해당 아이의 부모도 약물치료와 놀이치료 등을 병행하고 약물이 효과를 보일 때까지 일찍 하교하는 등 나름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하지만 해당 아이의 엄마는 ‘아픈’ 자신의 아이에게 그토록 냉정한 날을 세웠던 반 엄마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모두와 연락을 끊고 길에서 오가다 만나도 눈 한 번 맞추지 않았다. 스스로 고립되는 길을 택하면서 자신의 아이를 지켰다.

시간이 지나면서 약물은 점점 효력을 발휘했다. 아이는 약 때문에 축 처져 있기 일쑤였고 더 이상 그 아이로 인한 싸움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자, 이제 반의 최대 위험 요소가 사라졌다. 이제 이 학급은 분위기를 흐리던 장애 아이가 사라졌으니 모든 게 평화롭고 아름다워야 한다. 과연 그랬을까? 아니, 애석하게도. 그 반대다.

장애 아이는 하나의 구실일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문제행동을 모두 덮는 하나의 커다란 구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아이 탓을 하면 모두가 편했다. 공공의 적이 있었기에 엄마들은 연대했고 끈끈해졌으나 정작 남 아이를 탓하느라 자신의 아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고 있는지는 살피지 못했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는 ‘정상적’인 아이들은 ‘의도를 갖고’ 친구를 괴롭혔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남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의 방식으로,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의 방식으로, 반에는 문제가 넘쳐났다.

그건 더 나빴다. ‘정상적’인 아이들의 의도한 잔인함은 장애 아이들의 순수한 민폐(낯선 소리와 행동)보다 더 많은 피해를 야기 시켰다. 이제 학기 말이 되자 반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공공의 적을 두고 연대했던 엄마들도 한 해가 끝나갈 쯤엔 삼삼오오 갈렸다. 내 아이를 괴롭히는 저 아이의 엄마, 저 아이의 엄마 등과는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는 한편 일부 엄마들 마음에는 때때로 죄책감이 솟구친다. 그때 학폭위 개최를 위해 참석을 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아이는 문제 축에도 끼지 못할 수준이었네. 진짜 문제들은 따로 있었네”.

새 학기가 되면 같은 반에 장애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 발달장애 아이들의 많은 경우는 인지가 낮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을 것이다. 말로 안 되는 의사소통을 몸으로 하려다 보니 울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하고, 어쩌면 옆 친구를 때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기만 하면 그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낯설어 보이는 모든 행동이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라는 걸 깨닫기만 하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해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역할은 담임선생님과 특수교사, 실무사와 공익 등이 주로 하게 될 것이다.

반 친구들은 그런 어른들의 대처법을 보면서 장애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배워나갈 수 있다. 여태까지 알던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타인과 소통을 하는 방법을 익혀나가게 된다.

사람 대 사람 간의 소통에 꼭 말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역시 말이 아닌 수많은 방법으로 주변 사람들과 감정을, 생각을 나누며 살고 있다. 그것을 반 아이들은 장애인 친구를 통해 어릴 때부터 배울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인지가 낮은 게 꼭 안 좋은 것만도 아니다. 아기와 같은 순수함에 교사들도, 반 친구들도 아마 깔깔깔 웃고 빙그레 웃음 짓게 될 날이 많을 것이다.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친구와 하나의 사회를 함께 꾸려나가는 방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같은 반이 된 장애인 친구? 걱정할 것 없다고. 오히려 장애인 친구를 통해 내 아이가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리고 진짜 걱정해야 할 것은 장애를 가진 남의 아이가 아니라 ‘정상적’인 속도로 잘 자라고 있는 내 아이라고. 집에서 보는 모습만이 다가 아닌 내 아이의 진짜 모습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내 아이를 잘 키우자고. 남의 아이에 대해 불안감을 확산시키는 대신 내 아이를 잘 키우는 데 온 힘을 다하자고.

그렇게 내 마음에서 불안감이 사라지고 나면 그땐 장애 아이를 바라봐도 문제 요소는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다르지만 같은’ 또 하나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 아이로 인해 내 아이는 아마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것이 장애 아이와 한 반이 된 친구들이 얻게 된 행운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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