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 엄마야, 오늘따라 왜 이리 보고 싶노, 응석부리고 싶은 날. 쁘렌띠안 섬에서의 마지막 날이 엄마에게는 그런 날이었던가 보다.
우리는 노을 지는 해변을 함께 걸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예쁜 노을이 하늘을 수놓았다. 선선했던 바람이 기분 좋게 머릿결을 흩날려 주었다. 벌써 여행 온 지 열흘이 지나 있었다. 친구도 아닌 엄마와 동남아 해변을 걷다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부엌에서나 보던 엄마의 등. 그 굽은 등을 동남아 해변에서 보다니. 여러모로 이상했다. 이상하리만큼 좋았다.
“엄마, 여행 오니깐 좋지?”
“우리 엄마 보고 싶다.”
엄마의 엉뚱한 대답은 내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엄마의 우리 엄마. 외할머니. 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요양원에서 도망치듯 세상을 떠나신 외할머니.
엄마와 외할머니의 마지막 추억은 한 통의 전화였다. 어느 날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전화해 말씀하셨단다. “현자야, 엄마 좀 데려가 주라.” 엄마는 “이제 곧 큰 집으로 이사 가요. 이사 끝내면 바로 모시러 갈게요.” 하고 전화를 끊었단다.
그로부터 얼마 후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이 날아왔다. 외할머니의 부고를 먼저 접한 건 나였지만, 엄마는 당시 고3 수험생이던 나를 장례식에 데려가지 않았고, 대신 내가 외할머니에게 쓴 편지를 무덤에 묻어 주셨다. 그 후로는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긴 세월 꽁꽁 묶어 두었던 그리움이동남아 해변에서 불쑥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너무 예쁘다. 우리 엄마도 이런 광경 한 번쯤은 보고 가셔야했는데. 엄마는 못난 딸이라 이런 데 한 번도 못 모시고 왔어. 좁고 불편한 집이어도 모셔왔어야 해. 고생 안 시켜드리고 싶은 욕심에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던 게 후회돼. 그게 살면서 제일 후회돼….”
외할머니 이야기를 마친 엄마가 울었다. 덩달아 나도 울었다. 처음부터 나의 엄마였던 엄마도 딸이었다는 것을, 잊고 살았나 보다. 처음으로 내 곁의 엄마가 나의 엄마가 아니라 엄마를 그리워하는 여린 딸이구나, 싶었다.
그날 밤, 엄마를 오랫동안 짓누르던 후회가 쁘렌띠안 섬에 흩뿌려지는 것 같았다. ‘엄마가 이제야 외할머니를 보내드리는구나.’ 어느새 노을이 지고 푸른 밤이 찾아왔다. 별들이 고개를 내밀자 나는 엄마 손을 잡았다. 괜찮다고 말하는 대신 손을 잡았다. 적막한 해변에 파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콘텐츠는 첫눈출판사에서 출간한 책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의 내용을 재가공한 것입니다. 키만소리 작가와 책에 대해 더욱 궁금하신 독자분들은 첫눈출판사 브런치로 방문해 주세요.
프리랜서 피처 에디터. 카카오 브런치에 '엄마야 마음 단디 먹고 배낭 메라'라는 제목으로 여행 웹툰 에세이를 연재해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