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귀엽냥? ‘불청개’를 맞은 고양이
개귀엽냥? ‘불청개’를 맞은 고양이
2018.02.02 21:03 by 최현빈

새해를 맞아 3일의 휴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여자친구가 그 날짜에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어 강아지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 얼떨결에 알겠다고 대답해 버렸다. 문제는 고양이 ‘숲이’가 집에 들어온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와 고양이,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은데...
그런데 개와 고양이,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은데...

여자친구는 강아지를 놓고 홀연히 사라졌다. 강아지 이름은 코코. 포메라니안과 스피츠 사이에서 나온 ‘폼피츠’ 종이라고 했다. 하얗고 귀가 뾰족한 것이 북극이 사는 여우같이 생겼다. 이제 6개월 된 ‘어린이’ 강아지긴 하지만 덩치는 숲이보다 2배 가량 컸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한쪽에 웅크려서 눈치를 보고 있는 숲이가 걱정됐다.

고양이 '숲이'와 강아지 '코코'
고양이 '숲이'와 강아지 '코코'

 

| 1일차, 가장 중요한 건 사료 안전

강아지는 오자마자 킁킁대며 온 집을 돌아다닌다. 낯선 생명체의 등장에 숲이는 잔뜩 긴장했다. 강아지도 숲이의 존재를 금방 눈치챈다. 곧바로 숲이의 엉덩이에 코를 들이밀고 킁킁대려는 강아지. 고유의 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숲이는 낯선 생명체의 인사가 불쾌한 모양이다. 다리와 털을 꼿꼿이 세운 고양이 특유의 자세를 취한다. 강아지가 킁킁대려 하면 ‘하악’ 소리로 위협한다. 작은 고양이의 ‘하악’이 얼마나 위협이 될 진 모르겠지만…

위협이 조금은 효과를 발휘한 걸까. 강아지가 돌아선다. 안도하고 있을 때 강아지는 어디론가 뛰어간다. 목표는 숲이의 밥그릇이었다. 곧바로 머리를 박고 숲이의 사료를 흡입한다. 밥그릇을 재빨리 빼앗아 캣타워 위에 올려놨다. 아쉬운 강아지는 다시 숲이의 엉덩이 주변을 맴돈다. 개와 고양이와의 동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자기 사료를 주자 강아지는 허겁지겁 먹어치운다. 훔쳐가는 사람도, 고양이도 없는데 왜 이렇게 급하게 먹는지, 다 먹은 뒤 스스로 버거웠던 듯 기침을 한다. 문제는 숲이의 식사다. 숲이는 캣타워에 올라갈 마음이 없다. 밥그릇을 내려놓으면 강아지가 탐내고, 캣타워에 올려 두면 영락없이 쫄쫄 굶을 판이다. 서로 격리시켜 놓는 게 유일한 해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초보 집사’s Note_ 강아지에게 고양이 사료를 먹여도 될까?

강아지와 고양이를 함께 키운다면 반드시 서로의 사료를 분리해야 한다. 필요한 영양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동물성 단백질만을 섭취하는 육식동물이고, 강아지는 동물성과 식물성 단백질 모두 섭취하는 잡식동물이다. 보통 고양이에게 필요한 동물성 단백질은 강아지의 5배다. 그래서 강아지가 고양이의 사료를 먹으면 단백질 과다섭취로 신장계 질환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고양이가 강아지 사료를 먹으면 영양실조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문제는 강아지가 고양이의 사료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단백질 함유량 때문인지 고양이 사료는 강아지에 비해 냄새가 훨씬 강하다. 사람의 음식을 주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원리로 강아지가 자기 사료를 찾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강아지와 고양이가 한 집에 있다면 고양이 사료는 절대 강아지의 입이 닿지 않는 공간에 두는 것이 좋다. 다행히 강아지는 고양이와 달리 자기 밥을 남기지 않아서 고양이가 강아지 밥을 먹을 염려는 덜하다.

강아지는 끊임없이 숲이를 궁금해했다.
강아지는 끊임없이 숲이를 궁금해했다.

빨래 건조대를 철제 펜스처럼 활용해 방문을 막았다. 숲이는 원래 지내던 내 방에, 강아지는 비어 있는 동생 방에서 생활하게 했다. 급한대로 건조대로 서로의 접촉은 막았지만, 시선은 막을 수 없었다. 강아지는 숲이가 어지간히 궁금한 모양이다. 방 안을 뛰어다니는 숲이를 보자 자신도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이 폭발했는지 ‘왈!’ 하고 짖어버린다. 한밤중에 이런 민폐가 없었다. 건조대는 완전한 답이 아니었다.

빈 종이박스를 뜯어 건조대와 벽을 따라 붙였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건너가거나 볼 수 없고, 사람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높이로. 숲이를 볼 수 없게 되자 강아지는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가 잠들었다. 숲이도 침대 한 켠에서 눈을 감았다. 강아지와 고양이와의 첫날밤은 그렇게 끝났다.

 

| 2일차, 낮은 강아지의 시간, 밤은 고양이의 시간

다음날, 한가로운 휴일을 만끽하기 위해 옆방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자 원래 주인은 잊은 듯한 강아지가 매달리기 시작한다. 다리에 매달려 안아 달라고 조르고, 던져 달라는 듯 공을 물어온다. 초롱초롱한 강아지의 눈망을을 외면할 수 없었다. 강아지와 오전 산책을 다녀오고, 오후에도 산책을 다녀오고, 저녁거리를 사는 김에 한번 더 산책을 다녀왔다. 숲이는 낮 내내 얌전히 잠만 잤다.

해가 저물자 강아지는 세 번의 산책이 만족스러웠는지 방석에 누워 눈을 감는다. ‘이제야 내 시간이 생겼구나’라 생각하는 순간 숲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벽 너머 어딘가에 집사가 있다는 걸 눈치챈 숲이는 ‘끼야오옹~’ 소리를 낸다. 숲이가 있는 방으로 넘어갔다. 신나서 ‘예이~’ 소리를 내며 방 안을 뛰어다니는 숲이. 밤에는 숲이와 낚싯대로 사냥 놀이를 하고, ‘고양이 마약 간식’이라고 불리는 ‘츄르’도 먹였다. 집사의 몸은 낮엔 강아지의, 밤엔 고양이의 것이었다.

초보 집사’s Note_ 강아지 고양이 한 집 살이

 

무리해서 고양이와 강아지를 한 공간에 둘 필요는 없다. 이들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 대체로 강아지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초보 집사는 문제견을 다루는 모 프로그램 훈련사의 방법을 따라해봤다. 강아지가 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지려 할 때마다 간식을 조금씩 주는 것. 처음엔 종이 박스 너머를 향해 짖기도 하고, 마구 긁기도 하고, 앞발을 걸쳐 직립(?) 자세를 취하기도 했던 강아지는 신기하게도 고양이에게 관심을 끊었다. 나중에는 박스를 걷어 내도 반응하지 않았을 정도.

반면 숲이에겐 강아지가 입고 있던 옷을 줬다. 처음엔 낯선 냄새 때문인지 잔뜩 경계하며 앞발로 툭툭 건드려 보기만 했다. 하지만 나중엔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껴안고 장난까지 친다. 강아지를 마주했을 때의 반응도 바뀌었다. 첫날에 몸을 잔뜩 세우고 ‘하악질’만 했지만, 이틀이 지난 후엔 자신이 먼저 장난까지 쳤다.

 

| 3일차, 개와 고양이는 모두 관종

강아지와 고양이의 동거 3일차. 다음날이면 여자친구가 여행에서 돌아와 강아지를 데려갈 예정이었다. 첫 만남은 꽤나 살벌했지만, 이틀 정도 함께 지내보니 어느 정도 노하우를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낮에는 강아지랑 놀아주고, 밤엔 고양이와 놀아주면 됐기 때문이다. 강아지의 배설물을 치우며 ‘오늘 하루만 보내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숲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보통 집사가 출근을 하면 홀로 남겨진 숲이는 잠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모양이다. 하지만 최근 며칠 사이엔 집사가 낮에도 집에 있다는 걸 인지한 모양이다. ‘끼에에엥~’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고 숲이가 있는 방으로 넘어갔다. 그러자 옆방에서 강아지의 ‘끼이잉…’ 소리가 들렸다. 몸은 하나인데 필요로 하는 곳은 둘이었다. 양쪽 방을 계속 왔다갔다하며 놀아 주는 수밖에 없었다. 숲이와 놀아주다, 강아지랑 놀아주다, 또 다시 숲이랑 놀아주는 식이었다. 한 쪽이 신나면 다른 한쪽에선 불쌍한 낑낑 소리가 났다.

지칠 대로 지친 집사는 결국 둘을 함께 둬 보기로 했다. 지켜보고 있는 동안엔 별 일 없겠지. 숲이를 강아지가 있는 방에 데려왔다. 둘의 관계는 첫날보다 훨씬 나아졌다. 강아지는 숲이의 엉덩이에 살짝 관심을 보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자리로 가 개껌을 씹었다. 잔뜩 경계하던 숲이도 강아지가 자신에게 관심을 끊자 자신이 다가가 장난을 쳤다. 웅크려 숨기 바쁘던 때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밤이 되자, 숲이는 원래 있던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서 잠들려 하는데 문 앞에서 강아지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 이틀은 아무 소리 없더니 이젠 독수공방 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강아지는 박스 울타리 아래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을 던졌다. 마지막 밤이기도 하니, 강아지를 안으로 들였다. 다행히 하루 종일 낑낑댄 게 둘 다 어지간히 힘들었는지 고양이와 강아지 모두 침대에 눕자 마자 잠들었다.

다음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나는 다시 박스 울타리를 치고 출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아지를 잘 데려갔다는 여자친구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철천지원수라는 강아지와 고양이. 둘과의 아슬아슬한 동거가 무사히 끝난 순간이었다.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자본과 인력, 인지도 부족으로 애를 먹는 스타트업에게 기업공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단숨에 대규모 자본과 주목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파트너와 고객은 물론, 내부 이...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현시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트업 30개 사는 어디일까?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