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장애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장애인을 장애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2018.02.28 18:29 by 류승연

얼마 전 소속돼 있는 부모단체에서 월례회 공지가 뜬다. 부모단체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모임 등이 있으면 모두 참여하고 싶다. 가서 보고, 듣고, 배우고, 도움도 받고 싶다.

부모단체는 여러 곳이 있는데 각 단체별로 추구하는 방향과 시행하는 프로그램이 조금씩 다르다. 일단 한 곳은 가입했으니 나머지 단체도 시간이 지나는 대로 하나씩 가입하리라.

어쨌든 월례회 공지를 보니 평일 오전 10시다. 긴 겨울방학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또 찾아온 봄방학이다. 열 살이 된 쌍둥이 남매와 한 몸으로 찰싹 붙어 있을 시간이다. 다른 사람들도 아이를 데리고 온다기에 껌딱지 둘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약간 늦게 도착하니 회의가 한창이다. 회장님을 중심으로 어른들은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고, 아이들은 곳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신발을 벗자마자 아들의 낌새가 수상하다. 트램플린도 없고, 미끄럼틀도 없다. 딱 봐도 재미없는 곳에 왔다는 것을 알아챈다. 칭얼칭얼 대기 시작하며 한바탕 난리를 부릴 준비를 하고 있기에 만병통치약인 핸드폰을 쓱 하고 내밀었다.

휴대폰을 대신할 다른 보상재를 찾아야 하는데, 줄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민다. 아들이 떼를 쓰며 난리를 부리기 시작하면 어른들의 회의는 물 건너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아이들의 손에 엄마의 휴대폰이 들린다. 휴대폰이라는, 아니 유튜브라는 시대의 선물 덕분에 어른들은 무사히 회의를 진행해 나간다.

아들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데 문제는 딸이다. 이 시간이 심심하다. 엄마들 얘기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남동생이 보는 뽀로로는 너무 시시하다. 한쪽에 자리 잡고 간식을 좀 먹더니 나에게 와서 하소연을 한다.

“엄마~ 심심해~”

“가서 친구들이랑 놀아. 다 비슷한 또래의 초등학생들이야”

“장애인이랑 뭐를 하고 놀아?”

나는 식겁한다. 장애 아이의 엄마들만 모여 있는 이곳에서 장애인이랑 뭐를 하고 노냐는 질문을 하다니. 내가 너를 그리 키웠더냐! 어찌어찌 그 상황을 넘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루해진 아이들의 행동반경이 더 커진다. 한 아이가 씽크대에 있는 물을 틀고 장난을 치려 한다. 아이의 엄마가 쪼르르 달려가 물을 잠근다. 우리 아들이 늘 치는 장난이기도 해서 딸과 나는 마주 보며 싱긋 웃는다. 그러더니 딸이 말한다.

“하하하. 누가 장애인 아니랄까 봐”

이제 나는 정색을 한다. 아까도 그러더니 지금도 또! 얘가 도대체 누구야? 내 딸이 맞는 거야? “장애인인 게 뭐 어때서?”라고 외치던 딸이었는데 몇 달 만에 사람이 바뀐 거야? 왜 자꾸 장애인 비하발언을 하지? 그것도 동생이 장애인이면서.

나는 월례회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딸을 따끔하게 혼내기 시작했다.

“장애인이랑 뭐를 하고 노냐고? 왜? 장애인은 놀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야? 동환이가 놀 줄 모르던? 장애인이면 놀 줄도 모르는 것 같아? 그리고 뭐? ‘장애인 아니랄까 봐?’. 장애인이라서 물 트는 장난을 친다는 거야? 그런 장난은 누구라도 칠 수 있어. 왜 너는 장애인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해? 오늘 네가 한 말들은 장애인을 무시하는 거야. 엄마가 그렇게 가르치던?”

화가 난 나는 다다다다 쏘아붙이고 딸은 잔뜩 침울해져서 눈이 빨개진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그러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뭐라고 웅얼웅얼한다. 씩씩거리던 나는 “뭐라고? 안 들려! 똑바로 말해!”라고 다그친다.

“엄마가 장애인은 창피한 게 아니라며…”.

이어지는 딸의 이야기가 놀랍다. 장애인은 창피한 게 아니라고 하면서 왜 장애인을 장애인이라 못 부르게 하냐고 한다. 장애인이란 말은 하면 안 되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장애인은 행동이랑 생각이 나랑은 다르다고 하지 않았냐고, 그래서 어떤 놀이를 하면 좋은지 엄마한테 물어본 것인데 왜 화를 내느냐고 한다.

물을 트는 아이도 장애인인 동환이랑 똑같은 행동을 하기에 귀여워서 그런 건데 엄마는 자기 말을 듣지도 않고 화만 낸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딸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무시를 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동생을 돌보고, 동생 덕분에 많은 장애 아이들을 만나 보면서 ‘장애인은 나와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을 뿐인 똑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방법을 문의한 것이었다. 아마도 동생이랑은 다른 특성을 가졌을 장애인 친구와 무엇을 하면서 놀면 좋은지 다가가는 방법을 물은 것이었다. 한 아이의 물을 트는 행동도 동생이 하는 행동과 오버랩되며 ‘장애의 특성’으로 이해한 것이었다. 그래서 귀엽다며 웃은 것이었다. 다만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장애인’이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엄마인 내가 뒤집어진 것이었다.

다른 장애 아이 엄마들이 혹시라도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내 딸을 비난할까 봐, 혼자서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바로 나였던 것이다.

이제는 내가 창피해질 차례다. 나는 뜨끔해진다. 딸의 말을 왜곡되게 받아들인 걸 곧바로 사과해야 하지만 하도 화를 냈던지라 그러기엔 조금 민망하다.

흠흠. 장애인을 무시한 게 아니었으니 됐다며 그래도 남들에게 오해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을 할 때는 조심해서 하라고 끝까지 ‘충고’를 한 뒤 끝을 맺는다. 나도 참 못났다.

정작 딸 앞에서는 제대로 사과도 못 하고 대신 딸을 통해 배운 것들을 여기에 끄적인다.

장애인을 장애인이라 부르는 건 창피한 게 아니다. 내가 ‘여자’로 불린다 해서 창피한가? 남자가 아니라서? 아니다. 그렇듯이 장애인은 그냥 장애인이다. 여자가 여자이고, 남자가 남자이고, 소년이 소년이고, 할머니가 할머니이듯이.

못할 말도 아니다. ‘장애’와 ‘감기’와 ‘살’은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장애에 대한 편견 없는 세상을 목표로 한다면 그것이 내가 가진 장애이든, 내 자식이 가진 장애이든 당당히 말할수록 좋다.

“네 아들은 팔에 큰 점이 있구나? 내 아들은 발달장애가 있어”

“이번에 네 딸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며? 축하해. 우리 아들은 이번에 피자가게 박스 접기 일자리를 구했어. 다들 축하해 줘”

이런 이야기가 서로 간에 편하게 오고 갈 수 있어야 한다. ‘장애’와 ‘장애인’을 쉬쉬하며 말해선 안 되는 분위기가 아니라 누구라도 쉽게 ‘장애’를 얘기하고 장애인을 장애인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나조차도 못하고 있던 일이다. 아들의 장애를 이만큼이나 오픈하고 사는 나조차도 해내지 못하고 있던 일이다. 그것을 딸이 해내고 있었다. 장애인을 장애인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동생과는 다를 게 분명한 또 다른 장애인의 특성을 알기 위해 거리낌 없이 ‘장애’에 대해 문의를 하는, 편견 없는 딸이기에 해낸 일이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장애인인 게 뭐 어때서?”라는 말을 누구라도 당당히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누군가는 큰 코를 가지고, 누군가는 곱슬머리를 가질 때 누군가는 자폐증을 가졌을 뿐인 그런 세상.

‘장애’가 홍길동의 아버지도 아니고, 장애인을 장애인이라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세상, 그래서 ‘장애인’이라는 말을 들어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변화되어야 함을 느낀다. 나부터 ‘장애’와 ‘장애인’을 말하는 것에서 편해지기. 그것부터 시작이다.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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