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자- 경계성 발달장애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자- 경계성 발달장애인
2018.03.08 14:05 by 류승연

아들을 치료실에 들여보내고 대기하는데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자폐증을 가진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엄마다. 그녀의 아들은 일명 '느린 학습자'라고도 불리는 경계성 발달장애인으로 일반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인지가 높은 편이라 일반학급에서의 수업도 어느 정도 따라는 가지만 그렇다고 보통의 아이들처럼 온전히 학습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진 못한다. 때문에 하루 2~3교시는 특수반에 내려가 특수교사로부터 필요한 학습을 받는다.

나는 그녀가 부럽다. 자식이 ‘기능 좋은’ 경증의 발달장애인 아닌가! 주변에서 약간의 도움만 받으면 성인이 된 후 수월하게 독립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장도 쉽게 구할 수 있겠지.

어디 그뿐인가. 나처럼 "부모 죽고 난 뒤 어쩔까~"하는 걱정도 덜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한숨을 푹푹 내쉰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힘들어하는 아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부럽게만 보이던 경계성 발달장애인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장애와 비장애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자만이 느껴야 하는 소외감, 그로 인한 슬픔이다.

우리나라의 발달장애인 수는 20만 명을 넘어가는 것으로 집계가 되고 있다. 그런데 ‘느린 학습자’라 불리는 경계성 발달장애인은 8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이들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면 보통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영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방치될 경우 인지 능력이 저하돼 결국 지적장애의 경계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고 한다.

80만 명이라는 숫자에 깜짝 놀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살면서 경계성 발달장애인을 만난 적이 몇 번 있는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그들은 굳이 ‘장애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느렸다. 이해력도 느리고 일처리 속도도 느려서 성격 급한 나는 화를 내거나 속이 부글부글 끓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몰랐는데 내가 장애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눈에 보인다. 그들 역시 경증의 발달장애를 갖고 있었다. 다만 그들도 스스로가 경증의 발달장애인이라는 것을 몰랐고, 그들의 부모도 몰랐다. 그저 어릴 때부터 말 안 듣는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 시키는 일 제대로 안 하는 아이 등이 되어서 혼이 나거나 구박을 받기만 했을 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경계성 발달장애인이 살아가면서 세상과 부딪히는 첫 번째 문제는 장애 여부를 공개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다. 요즘은 발달검사니 뭐니 해서 부모들은 일찍부터 알게 된다. 내 아이가 정상적인 발달속도보다 느리게 자라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 아들처럼 대놓고 또래 아이들과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아쉬울 정도로 조금씩 느리다. 그러다 보니 장애 등급을 받기도 애매하다. 장애 등급을 받으면 정말 장애인이 되어버릴 것 같아 무섭기도 하다.

감각을 통합시키고 인지능력을 높이기 위해 치료실은 다니면서도 아이의 이런 상황을 주변에 알려야 할지, 특히 학교에 알려야 할지가 고민이다.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교사에게는 알린다 치자. 그렇다면 이젠 같은 반 친구들이나 그 부모들에게도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알리고 나면 ‘장애인’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렵다. 숨겨도 문제다. 감각이나 소근육 문제 등을 함께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을 경우 아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특정 행동(상동행동, 자기자극행동) 때문에 오해를 사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의 장애를 공개하느냐 여부는 진로와도 이어진다. 경증이지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학교에서도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게 지원하느냐 아니면 일반 아이들과 똑같이 키우면서 그들의 사회 안에 적응하도록 노력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여기 이 지점에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부모가 일반인 사회에 아이를 편입시키려고 무리하게 조바심을 낼 경우 아이가 구박 덩어리로 전락한다.

우리 아들 같은 중증의 발달장애를 갖고 있으면 부모는 학습에 큰 욕심을 갖지 않게 된다. 그보다는 포크로 햄 집어 먹기를 성공했다는 게 더 중요하다. 기저귀를 빼고 잠을 잤는데도 이불에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게 마냥 예쁘기만 하다.

하지만 경계성 발달장애인, ‘느린 학습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오는 부분이 있다 보니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고. 조금만 더 몰아치면 보통의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게을러서 안 하는 것 같고 의지가 없어 안 하는 것 같으니 아이 얼굴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혼을 낸다. 몰아치는 부모 앞에서 언제나 혼나기만 하고 자란 아이는 주눅이 든다. 할 수 있는 일도 점점 더 못하게 된다. 자신감이 떨어진다.

집에서만 그러면 다행일 지경이다. 마지막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친구 관계, 대인 관계다. 여기에서 느끼는 좌절감과 실패감이 아이를 가장 힘들게 한다.

앞서 내가 만난 아이의 엄마도 이 문제 때문에 힘들어했다. 새 학기가 되면 아이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새로운 친구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한 것이다. 보통의 아이들처럼 같은 반이 된 친구를 새롭게 사귀면 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동안 신뢰할만한 친구 관계란 것을 맺어본 적이 없기에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아이들은, 한없이 착하고 순진해 보이기만 하는 보통의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부모의 생각보다 훨씬 더 잔인할 수도 있다. 아이들은 안다. 저 친구는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저학년일 때야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신보다 못하다 여겨지는 친구를 놀리거나 괴롭히는 일이 늘어난다고 한다.

차라리 우리 아들처럼 친구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중증의 발달장애인이 그런 면에선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경증의 발달장애인은 친구들이 내뱉는 가슴 아픈 소리, 잔인한 소리를 온전히 다 흡수해 버린다. 그대로 다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집에 돌아가 부모에게 묻는다. 내가 정말 장애인이냐고.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냐고 소리치고 절규한다. 부모는 할 말이 없다.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은 부모의 죄도 아니고 자식의 죄도 아닌데.

그렇다고 특수학급에 가서 장애인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다. 특수학급에 있는 친구들은 또 수준이 맞지 않는다. 자신은 곱셈 공부를 하는데 옆 친구는 스케치북에 선 긋기를 하고 있다. 자신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옆 친구는 아직도 말할 줄 아는 단어가 10개도 안 된다. 특수학급 안에 여러 명과 함께 있어도 혼자 겉돈다.

보통의 아이들 안에도 속할 수 없고, 장애 아이들 안에도 속할 수 없다.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모든 말과 수군거림을 다 이해는 하는데 학습적인 부분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과 똑같아지기가 힘들다.

손을 뻗어 닿고 싶은 무리에서는 자신을 밀어내고, 내가 속할 수 있는 무리에서는 나 혼자만 붕 뜬 외딴 섬 같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외톨이가 되어간다.

중증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면서 이 아이가 엄마인 나의 노력으로 경증의 기능 좋은 발달장애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경증의 발달장애인만 되면 게임 끝난 것이라 생각했다. 마음 놓고 눈 감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사회에서 장애인은 장애인이었다. 기능이 좋아도 그뿐이었다. 기능 좋은 장애인은 또 그 나름대로 감내해야 하는 아픔이 있었다.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보이지 않는 벽은 쉽게 허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아이의 장애가 경증이든 중증이든 이 모든 슬픔을 더 이상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선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이 벽을 허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바다.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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