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같은 청년이 있었다. 스물다섯 살. 뭐든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나이에도 그는 모든 일을 버거워했다. 억압적인 분위기의 가정환경이 원인이었을지 모른다. 감정표현을 닫아버린 그가 유일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은 예술이었다. 6개월의 상담 후 그에게 숙제가 하나 던져졌다. “루브르 박물관에 60일간 출근도장을 찍어라” 숙제의 성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청년이 3개월간 파리에 살며 실제로 그 일을 시도했고, 한국에 돌아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것이다. “형, 이제 욕심을 내도 될 것 같아요.” 다시 만났을 때 청년이 꺼낸 그 첫마디가 너무나 커서 안시준(29·사진) 한국갭이어 대표는 오늘도 꿈을 찾고 있다.
| 우리는 꿈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196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갭이어(Gapyear)는 학업을 병행 또는 잠시 중단하고 진로를 탐색하는 시간으로 이 기간 동안 인턴, 봉사, 교육, 여행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경험하게 된다. 유럽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개념이며 갭이어를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행정지원을 하는 학교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안 대표가 3년 전 사회적기업인 한국갭이어를 창업하면서 처음 이 개념을 도입했다.
한국갭이어를 통해 갭이어를 준비하고자 하는 사람은 컨설팅을 통해 기존 프로그램과 신규 프로그램, 컨설턴트 개별 미션 중 각자의 상황과 적성에 맞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안 대표 역시 멘토로서 지원자들의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 자장면을 주문했던 일 기억나세요? 전화기를 들고 주문할 음식과 배달받을 주소를 말하는 일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처음엔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주문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자장면을 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폭력, 훈계, 회유... 하지만 결국 주문에 익숙해지는데 필요한 것은 시간이에요. 자장면 주문에 익숙해지는 시간, 딱 그만큼의 시간을 두고 친구들과 만났습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도 넘게 이야기를 했어요”
컨설팅 과정 없이 홈페이지(https://www.koreagapyear.com)를 통해 기존에 구성된 프로그램을 직접 신청할 수도 있다. 선택이 끝나면 국내외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기본 교육을 수료하고 해당 국가에서 본격적인 인턴•봉사•교육 활동에 나선다. 도중에 한국갭이어에서 제공하는 개별 미션을 수행하기도 한다. 귀국 후에는 현지 활동을 바탕으로 한 이력서•직업 컨설팅이 이어진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약 2500명의 사람들이 한국갭이어를 거쳐갔다. 참가자들의 나이와 사회적 경험치도 제각각이다. 짧게는 1주에서 길게는 1년까지 소요되는 프로그램 특성상 대학생이 60% 이상이지만, 고등학생과 이직•퇴사를 고민 중 인2~40대 또는 시니어 층도 꾸준히 모여들고 있다. 이들은 왜 자신의 꿈을 찾는 과정으로 한국갭이어를 선택했을까. 이유를 묻는 질문에 안 대표는 ‘시간과 비용이 한정돼 있을 때,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오늘 오후 5시까지 100만원 어치의 옷을 사야한다고 가정해 볼까요. 몸에 잘 맞고 어울리는 옷을 사려면 많은 가게를 돌아봐야 할 겁니다. 여유시간을 활용해 수십 벌의 옷을 입고 벗어야겠죠. 직업이 옷이라면 갭이어는 가게를 돌아보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제도권 교육에 대한 실망감, 사회 진출의 막연함, 진로에 대한 트라우마, 은퇴의 불안함 등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꿈을 고르고 결정하는 데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갭이어는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에게 맞는 옷을 고를 수 있는 정보를 갖는 시간인 것이지요.”
| “생사 오갔던 나의 세계일주 갭이어”
고교시절 대학가 근처에 살았던 그는 옥상에 서서 많은 인간 군상을 지켜봤다. 백팩을 맨 고시생, 만취한 대학생, 노숙자, 회사원.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안 대표에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심어줬다.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그가 내린 풀이법은 세상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 어른들이 ‘시준아 넌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물으면 대답을 못했어요. 제가 보기에 멋있는 직업이라도 남들이 듣기에 어쭙잖은 것을 말했다가는 상처를 입거든요. 그런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분들이 저 뿐만은 아닐 거예요.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선뜻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도 있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잖아요. 다만 ‘세상을 잘 알면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할지도 알 수 있겠지’라는 느낌은 있었어요.”
‘세상을 알고 싶었다’는 안 대표는 긴 시간 많은 곳을 다녔다. 국내 무전여행만 다섯 번이고 삿포로에서 가고시마까지 일본을 횡단하는 무전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여정에 걸맞은 산전수전도 겪었다. 세계일주 중 페루에서 에콰도르로 이동하다가 납치를 당한 적도 있고 칠레에서 대지진을 겪으며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아찔한 순간만큼 깨달음도 많았다. 안 대표는 자유와 삶을 누리는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며 우리나라 청년들의 현 주소를 떠올렸고 이 과정에서 '갭이어'를 알게 됐다.
“외국 청년들이 꿈을 찾는 방식이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던 중 갭이어라는 개념을 우리 청년들에게도 문화적으로 전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회적기업의 형태로 그 일을 실천하게 된 거죠. 그 때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이 여행이 저의 갭이어였던 것 같네요.”
| 갭이어, 아시아의 '꿈의 탄환' 되는 그 날까지
꿈과 진로, 삶에 대한 고민과 이를 풀어가기 위한 방법. 요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만한 아이템이다. 그리고 안 대표는 이 사업을 민간 영리 부문이 아닌 사회적 경제의 영역에서 실천하고 있다. 한국갭이어가 사회적 기업으로서 영리가 아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기왕이면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마음’이라고 답했다.
“같은 호빵이라도 기왕이면 속이 더 알차고 다양한 맛이 나는 것을 먹고 싶지 않나요? 사회적 기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그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을 하니까 당연히 좀 더 맛있는 호빵인거죠. 제가 고등학생 때 대안기업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는데 어린 마음에도 ‘기업을 통해 세상을 경영한다’는 그 개념이 무척 멋있어 보였어요. 뛰어든 시기는 제 예상보다 빨랐지만, 사회적 기업은 꼭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습니다.”
아직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개념, 특별한 곳에서 보내는 특별한 시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혹자는 “갭이어 역시 취업을 위한 ‘스펙(spec)’쌓기의 일환 아니냐”는 눈총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안 대표는 ‘주얼리 스쿨에 다닌 경험이 대기업에 입사를 위한 스펙은 아니다’라고 단칼에 잘라 말했다.
“물론 갭이어의 프로그램들이 희한할 정도로 특색있기는 합니다. 분야의 장인, 실무자를 만나고 배울 수 있으니 전문성도 갖춰져 있고요. 하지만 남의 집에서 살아보고, 피렌체 가죽 공방에 다닌 일이 대기업에 입사할 때 얼마나 대단한 스펙이 될 수 있겠습니까. ”
지난 3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해온 갭이어의 미래는 무엇일까. 청년들의 더 나은 미래, 꿈을 찾는 회사, 차세대 리더들의 필수 코스. 다양한 훗날을 그려보는 가운데 그가 내놓은 대답은 ‘디톡스(Detox)’였다. 낯선 영단어가 불과 2~3년 사이에 먹고 마시고 입는 삶의 영역에 ‘해독’이라는 테마로 자리 잡은 것처럼, 갭이어 역시 우리 삶에 ‘꿈을 찾는 기간’으로 스며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한국과 아시아 지역에서 좀 더 많은 영향을 펼치는 사회적 기업이 되고 싶어요. 빠르게 흐르던 물이 보에 막히면 여러 길로 갈라지듯, 아시아 국가가 성장과 정체를 겪으면서 꿈이라는 콘텐츠도 계속 생겨날겁니다. 이 과정에서 갭이어가 단순한 진로 찾기 이상의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봉사가 꿈인 친구들이 자연스레 손길이 필요한 곳을 돕게 되고, IT개발이 꿈인 친구들이 새로운 노동시장을 구축하게 되는 것처럼요. 발사된 탄환이 회전하면서 주변을 잡아먹듯 갭이어를 통해 뻗어나간 한 사람의 꿈이 세상에 긍정적인 파급력을 갖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사진/허미영 작가 so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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