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겪고 지나가라. 너의 슬픔을.
모두 겪고 지나가라. 너의 슬픔을.
2018.03.14 18:06 by 류승연

 

자식을 대함에 있어 편애 없는 동등한 사랑과 관심은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과제다. 그런데 여기에 변수마저 등장한다. 자식이 둘 있는데 한 명은 장애가 있고 한 명은 장애가 없다.

장애가 있는 자식은 ‘어쩔 수 없이’ 부모의 손길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장애가 있는 자식을 더 사랑하고 비장애인 자식을 덜 사랑해서가 아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일상에서 수시로 발생한다.

장애가 있는 쌍둥이 남동생이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 딸은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차라리 장애인이었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나는 놀라고 슬프고 죄책감이 든다.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우리의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그러면서 딸은 달라졌다.

더 이상 자신도 장애인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동생도 더 아끼고 사랑한다. 아빠와 놀고 엄마와 대화하는 시간도 늘었다. 이렇게 커 나가면 되겠거니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열지 말았어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딸의 비밀노트를 몰래 봐 버린 것이다.

딸의 비밀노트는 ‘생각 노트’로 불린다. 작년, 갈수록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만들어줬다. 아무리 부모가 ‘자각’을 하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장애인 동생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부모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없을 리는 없다. 그 뿐인가! 학교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집 안에서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 노트’를 건네며 말을 했다.

“이건 ‘생각 노트’야. 수인이의 모든 생각을 다 쓸 수 있어. 선생님한테 내는 일기장과는 또 달라. 이건 수인이만 볼 수 있어. 화가 날 땐 화가 나는 마음을 마음껏 쓰면 돼. 단지 쓰는 것만으로도 화는 어느 정도 풀리거든. 기쁜 일이 있거나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생기면 그에 대한 얘기를 써도 돼. 왜냐면 이건 수인이만 볼 거니까. 수인이의 모든 것을 여기에 다 쓰면서 마음을 풀어가도록 해”

딸은 아무 말이나 써도 되냐고 묻는다. 당연하지. 수인이만 볼 거니까. 그림을 그려도 되냐고 한다. 당연하지. 수인이만 볼 거니까. 자신만의 공간이 생긴 딸은 신나라 하며 방으로 간다.

그 뒤로 종종 딸은 나에게 부탁을 하곤 했다.

“엄마~ 나 지금 ‘생각 노트’ 쓸 거니까 내 방에 들어오지 마~”

그렇게 ‘생각 노트’를 건네는 한편 나는 학교의 담임선생님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상담교실인 Wee-Class에 신청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문제 있는 아이라서가 아니다. ‘특별한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받는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를 상담을 통해 풀어주고 싶었다.

심리상담의 긍정적 효과를 잘 알고 있는 나는 딸도 마음이 아플 땐 상담을 받는 게 자연스러운 어른으로 커 나가길 바란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을 찾듯, 마음의 감기에 걸리면 거리낌 없이 정신의학과를 찾거나 심리 상담실의 문을 두드리길 바란다. 마음 근육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받을 수 있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어른으로 커 가길 바란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만들어진 게 ‘생각 노트’였다. 이건 딸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생각 노트’가 만들어진 초기에 한 번 들여다본 적이 있는데 거친 말투로 담임선생님 흉을 본 것을 보고 나선 그대로 덮었다. 앞으론 보지 말아야지. 보면 개입하고 싶어질 거야.

그러다 며칠 전 정말 생각 없이 ‘생각 노트’를 열어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림이 하나 있었다. 나와 딸의 그림이었다. 엄마는 칼처럼 둥그렇게 휘어진 회초리를 들고 있었고 그 앞의 딸은 울고 있었다. 충격이 온다. 찌잉~ 하고.

나는 가끔, 정말 가끔 딸에게 회초리를 든다. 몇 달에 한 번꼴이다. 효자손이 회초리다. 혼나야 될 일이라고 판단을 할 때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대. 효자손으로 손바닥을 때린다.

아프지도 않다. 손바닥 위 10cm 위에서 큰 힘을 주지 않고 찰싹 때리는 게 얼마나 아프겠나. 하지만 그 때마다 딸은 무서워하며 엉엉 운다. 울면서 “살려주세요~”라고 한다. 그 정도로 무서운 것이다. 혼낼 때의 엄마 분위기가. 화가 났을 때의 난 내가 봐도 무서울 정도니 그 공포심이 이해는 된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이 그림이 언제 그려졌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긴 겨울방학의 어느 날 일어난 일이었을 게다. 손바닥을 맞은 어느 날 아이는 글을 쓰는 대신 그림을 그렸겠지.

이 그림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 몇 개 있다. 회초리는 효자손인데 그림엔 칼처럼 그려져 있다. 그 정도로 날카롭고 두려운 무기로 느껴졌다는 뜻이다.

딸의 모습도 흥미롭다. 온몸에 꾸질꾸질 때가 타 있는 모습이다. 딸과 내가 종종 보는 신데렐라 이야기 속 신데렐라 같은 모습이다. 자신을 신데렐라처럼 그려 놓았다. 신데렐라가 누구던가! 의붓 언니만 편애하는 의붓 엄마한테 구박받는 비련의 주인공 아니던가!

자신이 흘린 눈물이 촛불을 끄고 있다. 우리 집에서 촛불은 소원의 상징이다. 이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엄마한테 혼나면서 자신의 바람이, 소원이 무산되기라도 했나?

그림을 처음 봤을 땐 충격에 휩싸였다. 주변에 알리니 주변에서도 충격을 받는다. 큰일이라도 벌어진 것만 같다. 내가 나쁜 엄마인 것만 같고, 아이를 데리고 당장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의 충격이 가라앉으면서 생각이 바뀐다. 나는 이 일에 호들갑을 떨지 않기로 한다. 그대로 놔두기로 한다. ‘생각 노트’ 역시 못 본척하기로 한다.

이 그림의 출처가 ‘생각 노트’란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장 힘들고 가장 슬픈 순간에 아무도 볼 수 없는 자신만의 공간에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고스란히 쏟아낸 것이다. 감정은 증폭될 수밖에 없고, 자신만의 연못 안에서 아이는 둥둥 떠다니며 헤엄을 치고 있다.

평상시의 딸은 가족의 그림을 그릴 때 이렇게 그리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Wee-Class 상담에서도 딸은 가족에 대해 그리거나 설명을 할 때 긍정적이다. 비록 엄마 아빠가 화낼 땐 무섭긴 해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잘 알고 있고, 자신 역시 가족을 사랑한다.

그런데 ‘비밀 노트’에 그려진 그림 하나를 봤다고 무언가 특별한 조치를 취하는 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다. 한때 스쳐 간 감정이었더라도 내가 크게 받아들이면 딸도 크게 받아들여야 할 당위성을 느낄 것만 같다. 가끔은 무던하게 지나치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딸이 지금도 느끼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느끼게 될 비장애 형제자매의 슬픔, 애환. 이런 것들을 고스란히 모두 느끼고 지나가길 바란다.

매정한 엄마 아니냐고? 그런 것들을 느끼지 않도록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주고 아이를 다독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글쎄…. 정말 그럴까?

엄마인 내가 발버둥 치고 아빠인 남편이 노력해도 우리 가정의 ‘특별한 환경’은 바뀌지 않는다.

바뀌지 않는 환경이라면 그 환경에 적응해 살아나가는 법을 익혀야 한다. 장애인 자식을 키우는 것은 엄마인 나의 운명이고 슬픔이다. 마찬가지로 장애인 형제가 있는 가정의 비장애 형제로 자라야 하는 건 딸이 감내해야 할 운명이고 슬픔이다.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많은 순간에 엄마인 내가 동생을 돌보느라 딸에게 눈길을 주지 못하는 순간은 많이 찾아올 것이다. 슬플 것이고, 샘도 날 것이고, 화도 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느껴라. 겪어라. 그러고 나서 이겨내라. 너만의 방식으로 엄마를, 가족들을 이해하라. 너만의 해법을 찾아내라. 이것은 네 인생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그렇다고 엄마인 내가 손을 놓고 있겠다는 건 아니다. 효자손이 칼처럼 그려진 것은 내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이제 열 살도 되었겠다. 체벌은 안 하기로 한다. 비록 전날 ‘화유기’를 몰아서 보느라 가방도 안 싸놓고 숙제도 안 해 놓은 걸 등교시간에 알게 되었다 해도 효자손 가져오라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세심히 관찰하면서 ‘보이지 않는’ 지원을 아낌없이 하기로 한다. 아, 가끔은 보이는 지원도 할 것이다. 아직은 아이니까 눈에 보여야 또 받아들이기도 하니까.

장애인 가족으로 산다는 건 그렇다. 마음 아픈 일이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그 아픔이 무겁고 슬프다 해서 회피하고 싶지는 않다. 아프면 아픈 대로 온전히 다 느끼고, 그러고 나서 이겨내고 싶다. 내가 그러할 것이니, 딸도 그리했음 한다.

그래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가족이 장애인이라는 현실을. 그러고 나야 현실에 발을 딛고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사진: 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자본과 인력, 인지도 부족으로 애를 먹는 스타트업에게 기업공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단숨에 대규모 자본과 주목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파트너와 고객은 물론, 내부 이...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현시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트업 30개 사는 어디일까?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