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 IEP를 위한 제안
특수학교 IEP를 위한 제안
2018.03.22 17:24 by 류승연

 

3월은 엄마들에게 스트레스가 많은 달이다. 이전 같으면 잔뜩 긴장하고 정신없이 보냈을 3월이지만 이번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하다.

학교를 신뢰해도 되냐고, 그러면 학교도 신뢰로 보답해 줄 것이냐고 처절히 외쳤던 지난달과도 사뭇 다른 모습. 변화의 비밀은 그날 그 사건에 있었다. 시계를 40일 전으로 돌려본다. 아들의 2학년 종업식 날이다.

담임선생님에게 감사의 편지라도 써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고 이대로 2학년을 마치면 안 될 것 같아 아들을 스쿨버스에 태워 보내고 학교로 향했다. 아이들 등교 전 빈 교실, 담임선생님 홀로 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라는 말을 하러 간 자리였는데 우리 두 사람의 음성은 점점 높아져 간다. 2학년 말미에 있었던 아들의 귓불 멍 사건 때문이다.

담임선생님과 이 문제에 대해 상의하기 전, 개인 SNS에 학교 측을 가해자로 심증을 굳혀 쓴 대목이 문제가 됐다. 많은 비난 댓글이 달렸고 담임선생님은 졸지에 알지도 못하는 다수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됐다. 선생님은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처음엔 나도 발끈해서 맞섰다. 개인 공간도 사찰당하는 거냐고 따졌다. 이런 식이면 모든 학부모의 SNS에 다 문제를 걸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두 여자의 고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싶을 때 나는 울음이 왈칵 터져 버렸다.

지금 이 순간 교실에서 언성을 높이고 있는 이 상황은 내가 담임을, 학교를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다. 귓불의 멍이 문제가 아니다. 학교를 신뢰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 문제다.

학교를 믿지 못해 늘 노심초사해야 하는 나도 불쌍하고, 그런 부모를 상대해야 하는 담임도 불쌍하고, 무엇보다 이 모든 소동의 중심에 있는 장애인으로 태어난 아들이 가장 불쌍하다.

왜 이러고 살아야 할까. 나는, 우리는…. 눈물을 흘리는 내 손을 잡고 담임이 말을 건넨다.

“이전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이젠 다 내려놓으세요. 그러면, 계속 이렇게 학교를 믿지 못하면 어머니만 더 힘들어져요.”

이제 다 내려놓아도 된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마음이 풀어지는 걸 느낀다. 불안감을 내려놔 보기로 한다. 학교를, 교사를 믿어보기로 한다.

“동환이는 너무나 예뻤는데 어머니 때문에 힘들었어요”라는 담임의 고백 역시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맞이한 3월, 새 학년이다. 개학식 날 일부러 스쿨버스를 태워 보내지 않고 직접 아들을 데리고 등교를 했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저런 당부 사항을 늘어놓고 왔을 테지만 이번엔 다르다. 학교를, 교사를 믿어보기로 한 덕일까? ‘아들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선생님이 알아서 잘 대처하시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간단히 인사만 한 뒤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도 마음이 평안하다.

그렇게 3월이 흘러가면서 ‘IEP(individualized education plan)’, 즉 개별화 교육 회의를 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IEP란 쉽게 설명하면, 담임선생님과의 학부모 상담을 떠올리면 된다. 다만 장애 아이들은 교사와 부모가 ‘구체적인 계획안’을 통해 한 학기 동안의 학습목표를 정하고, 교사는 그에 따라 해당아이의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장애 아이들은 저마다의 개별성이 천차만별이라 이렇게 개별 목표와 개별 과제를 정해야만 ‘공교육’이라는 것이 의미를 갖는 탓이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22조에 따르면 개별화교육 회의의 주최자는 각급 학교의 장이며, 사실상 아이를 둘러싼 모든 어른이 회의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교사와 부모만 만나 이런 회의를 하는 게 아니라, 교장, 일반학급 담임, 특수교사, 실무사, 공익요원, 각 치료실 선생님, 활동보조 선생님, 부모 등 장애 아이를 둘러싼 모든 인력이 한자리에 앉아 아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공통된 과제를 설정하며, 아이를 위한 학교 안팎의 지원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가 잘 돼 있는 외국에서는 이미 이렇게 진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학부모 상담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수준. 때문에 앞서 행동하는 일부 부모는 대규모 인력이 함께 참여한 개별화회의를 갖는 등 서서히 변화의 바람을 주도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지난해 특수학교로 전학 온 뒤 당당히 요구하는 부모가 되자는 다짐 아래 나는 담임선생님에게 모두가 함께 참여한 IEP를 요구했다. 하지만 대규모 회의는 이뤄지지 못했고 대신 교무부장 선생님에게 직접 ‘현실적 어려움’을 전해 들었다.

이미 지난해 요구해 본 경험이 있다. 올해 한 번 더 강하게 요구한다면 가능할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한다. 이번엔, 이번 학기엔 학교와 담임선생님이 주도권을 갖고 아이를 교육할 수 있도록 온전히 믿어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과의 IEP는 무사히 잘 끝났다. 두 시간 동안 아들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목표 과제를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그러던 중 한 장애 아이의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IEP에 대한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그 학교에서는 교장도 참여한 IEP를 학년 별 단체미팅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대신 아이 개별에 관한 IEP는 집에 보낸 공문(부모의 요구를 서류로 써 보냄)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나는 두 가지를 접목시켜 보기로 한다. 아이 개별에 대한 담임과의 상담은 일단 지금처럼 이뤄지면 좋겠다. 서면으로 요구사항이 오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얼굴을 보고 얘기를 해야 아이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때는 담임이 수용할 경우 치료사 등 아이 주변의 다른 어른들도 함께 시간을 맞추면 좋겠다.

문제는 학교장과의 만남이다. 교장의 몸은 하나인데 학생 수는 수백명에 이르는 특수학교의 교장. 그래서 특수학교에서는 사실상 제대로 된 IEP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데, 학년별로 교장과의 단체 미팅을 따로 잡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장애 아이의 수가 6명, 12명에 불과한 일반학교와 달리 특수학교에선 모든 IEP마다 교장이 모두 참석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학년 별로 단체를 이뤄 미팅을 가지면 교장은 12번의 회의만 참석을 하면 된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리되면 학교 입장에선 학년별 부모들의 요구사항을 보다 가까이에서 전해 들을 수 있고, 행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부분과 그럴 수 없는 부분을 부모들에게 이해시킬 수도 있을뿐더러, 학교 예산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보다 현실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을 터였다.

담임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 아이들을 위한 교구 하나가 절실한데도 쉽게 결재가 나지 않는 현실에서 부모들이 직접 나서 학교에 요구한다면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 입장에서는 보다 편하게 교육환경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터였다.

이런 의견을 얘기했더니 일반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아빠 한명이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친다. 그러더니 며칠 뒤 학교에 요구해 교장과의 단체 미팅을 잡았다는 얘기를 한다.

가능한 것이다. 학교장 입장에서도 모든 아이들의 부모와 개별적으로 만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이렇게 소규모 단체 미팅을 요구했을 땐 거절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정리해 본다. 나는 올해 교장과 교감, 담임과 치료사, 나와 활동보조 선생님 등이 모두 참여한 IEP를 요구할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작년 담임선생님과의 그 일이 있은 후 우선 학교를 믿기로 하고 학교에 주도권을 주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신뢰하는 것과 요구하지 않는 게 같은 개념은 아니니까.

다만 이 과정에서 요구를 하더라도 나는 이제 개별적으로 요구하지는 않기로 한다. 개별적으로 요구해 그 요구가 받아들여져 내 아이만 특혜(?)를 받게 된다면 그 또한 내가 바라는 방향은 아니다.

나는 학부모회에 이 안건을 정식 건의하기로 한다. 마침 지난주 학부모총회가 있어서 당당히 벼르고 갔건만 그날은 임원진을 뽑는 선거 날이라 이런 얘기를 할 기회가 없었다. 어차피 이번 학기 IEP는 끝난 상태니 다음번 학부모총회를 노리기로 한다. 그래서 2학기부터라도 이런 방향으로 특수학교의 IEP가 보다 충실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현재 상황에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학교에 각을 세우지 않으면서도 학교의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학교를 믿으면서도 학교에 정당한 방법으로 요구할 수 있는. 현 상황에서 최선이라 생각하는 방법론이다. 더 좋은 방안이 생각나면 그 때는 생각이 또 바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거면 된다. 나는 이렇게 하나씩 배워가면서 하나씩 실행해 가려고 한다. 학교에 보낸 건 아이인데, 배움은 엄마인 내가 얻어가고 있다. 장애를 가진 자식이 엄마를 키우고 있다. 고맙다. 아들.

 

/사진: 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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