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말투를 바꿔봅니다. 지난 시간을 찬찬히 돌아보고 정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2016년 11월부터 ‘더퍼스트미디어’에 ‘동네 바보 형’이란 이름으로 연재하던 이 스토리가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제가 가는 이 길은 맞는 방향일까요? 오늘 저는 ‘동네 바보 형’과 함께한 지난 시간, 보고 느끼고 깨달은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고자 합니다.
아시겠지만 장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닙니다. 모든 육아가 다 어렵고 힘들고 부모의 희생을 필요로 하지만 장애 아이는 더더욱 그러하지요.
아이가 어려 장애 진단을 처음 받았을 때는 모든 것이 엉망이었어요. 부부 사이도 엉망, 가족 관계도 엉망, 내 자신의 정신건강도 엉망. 모든 것이 엉망인 저는 그저 치료에만 매달렸어요.
‘내 희생으로 내 아이를 대한민국 최초의 지적장애인 출신 서울대학교 박사가 되게 하리라’는 꿈을 꾸었더랍니다. 내 인생을 바치면 아이의 발달장애가 완치될 거라 생각했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도 성장을 하지요. 장애는 치료해서 낫는 병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내 아들이 가진 지적장애는 평생 동안 내 아들과 함께 할 ‘특성’임을 알게 돼요.
그러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말도 못하고 착석도 못하는 아이가 학교생활을 어찌할까?’
불안감은 극으로 치닫고 저는 ‘고개 숙인 엄마’가 됩니다. 모두에게 고개를 숙여요. “미안해요. 죄송해요”라는 사과에는 내 아이가 장애인이라서 미안하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어요. 장애인이라서, 비장애인인 당신들의 자녀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마음이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날 깜짝 놀랄 얘기를 듣게 됩니다. 아들의 손톱 할퀴기 때문에 일부 학부모가 아들의 퇴학을 위한 교육부 진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지요.
저는요. 너무 놀라고, 너무 슬프고,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복수의 화신’이 되어 분노에 떨다가도 한 순간 모든 것을 놓고 싶어져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 이상 이렇게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매일 ‘죽음’만 생각합니다.
마침 그 즈음 아들이 탈장 수술을 하게 됩니다. 수술 날 아침, 저는 마취에 취해 있는 아들을 보며 말을 건네요. 이제 깨어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대로 눈을 감아도 엄마는 괜찮다고. 이런 세상에 더는 살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가 많이 사랑하니까 이제 그만 가도 된다는 말을 아들에게 건넵니다.
하지만 아들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깨어나죠. 그렇게 다시 삶은,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 되어버려요. 아마 그 때부터인 것 같아요. 제가 고개를 그만 숙이기로 결심한 것은.
장애 아이를 낳은 후 저는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이라는 게 나에게도 차가울 수 있다는 것을요. 딱히 부족함 없는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내고 ‘기자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직장생활도 했지요. 나는 세상 속에 잘 스며들어 있었고, 세상은 언제나 관대했어요. 세상은 나를 포근히 감싸는 울타리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랬던 세상이 일순 차가워져요.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도 아니고, 내가 변해서도 아닙니다. 그저 내 아이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세상이 얼마나 냉정하고 차가운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변심한 세상과 마주하게 됩니다.
고개 숙이고 울면서 아들과 함께 세상을 등질 궁리만 했던 나는 이제 그만 울기로 합니다. 고개를 들기로 합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죄송하다고 말하고 고개를 숙이고 다녀도 바뀌는 건 없구나. 결국 내게 돌아오는 건 자식을 데리고 죽는 것뿐이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제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죄송하다고 말하지도 않겠다. 이제는 내가 아닌 세상, 바로 당신들이 바뀔 차례다.
그러면서 ‘동네 바보 형’을 연재하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내 아들에게 갖는 고정관념과 편견은 발달장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걸 알거든요. 저 역시 몰랐으니까요. 내 자식이 장애인이 되기 전까진. 하지만 알고만 나면, 단지 아는 것만으로도 풀릴 수 있는 오해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저는 알리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연재를 시작하고 3개월 정도 지나자 반응이 와요. 6개월이 넘어가자 이제 여기저기서 연락이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제법 유명해진 것도 같아요. 연예인 병 초기 증상에 걸릴 뻔도 해요. 집 앞 슈퍼에 나가는 길에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봐 입술을 바르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이런 제 자신의 오만이 꺾이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느 한 에피소드가 오해를 불러 일으켜 특정 공간에서 저는 순식간에 만인의 적이 되고 맙니다. 저를 공격하는 익명의 무차별적인 댓글을 보고 공포감이 엄습합니다. 비로소 알게 돼요.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어쩌자고 나는 내 신상을, 내 가족의 신상을 모두 공개하면서 이런 글을 썼던 걸까? 내 가족이, 내 새끼가 공개된다는 건 이렇게나 무서운 일인데….”
아픈 경험이었지만 그 경험은 제게 큰 교훈이 되었어요. 장애 아이를 키운다고 다 같은 마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누구의 삶도 정답은 없다는 것. 백이면 백 다른 삶의 모습으로 살지만 그 모두가 정답인 삶이라는 것도 비로소 깨닫게 되었거든요.
저는 연예인병을 버리고 오만도 버리기로 합니다. 다시 초심을 찾기로 합니다. 애초에 발달장애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을 위해 쓰기 시작했다는 걸 잊지 않기로 해요.
하지만 이 부분은 여전히 과제이긴 해요. 가끔은 이야기의 주제가 장애 관련 내부를 향해야 될 때도 있거든요. 얼마 전 올린 IEP(개인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경우도 그렇지요.
어쨌든 그렇게 롤러코스터를 타고 ‘동네 바보 형’과 함께한 시간이 벌써 1년 5개월에 이르고 있습니다. 장애와 관련 없이 사는 일반인들에게 ‘동네 바보 형’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리고 이제 책이 나오면 이 책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 걸까요?
장애 아이를 멋지게 잘 키워낸 감동적인 성공 수기? 설마요. 저는 여전히 시행착오 중에 있으며 아직도 배워야 할 게 산더미입니다. 장애 아이 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한 눈물 찔찔 에세이? 설마요. 더 이상 울지 않기 위해 저는 걷기 시작했는걸요. ‘장애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교본? 설마요. 저는 저와 제 아들과 제 주변의 이야기만 합니다. 저 역시 누군가 가르치려 들면 반대로 나가고픈 청개구리 심보가 있거든요.
많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장애 아이 부모님들도 연락을 해 오셨지만 특수교육 관련 종사자는 물론 장애와 관련 없이 사는 일반인들의 연락도 많이 받았어요.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벌교에 사는 한 여고생이었습니다.
우연히 ‘동네 바보 형’을 읽게 된 후 특수교사가 될 꿈을 품게 되었답니다.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을 위해 인터뷰를 해줄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은 거예요.
제가 가 본 적 없는 도시, 벌교입니다. 한참 엑소 오빠들 좋아할 나이의 여고생입니다. 그런 여고생이 ‘동네 바보 형’을 읽고 발달장애에 관심을 갖게 되고 특수교사까지 꿈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1년 5개월 간 저질러 온 일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고맙습니다. 아주 많이 고마워요. 눈물이 날만큼.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는 분도 계시고, 쳐다보는 눈빛이 바뀌게 되었다는 분도 계십니다. 이제 거리에서 발달장애 아이를 볼 때면 제 아들이 생각나면서 미소가 지어진다는 분도 있었지요. 저,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지요? 계속 걸어가도 되는 거겠지요?
이제 인터넷 환경을 벗어나 책으로 나오게 되면 더 많은 분들에게 제 아들의 이야기가, 저와 제 가족이 사는 이야기가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 내 아이의 장애를 공개하고, 신상이 공개된 가족으로 산다는 건 그만큼 무섭기도 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장애’가 있는 자식을 데리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기로 한 만큼 일단은 걸어가 보려 합니다.
‘세상’ 속에서 잘 살아내던 한 여자가 장애 아이를 낳고 ‘세상’의 벽에 부딪힌 후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걷는 이야기. 이 이야기가 세상 속에 얼마나 스며들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일단은 GO입니다. 여러 번 얘기했듯 저는 엄마니까 직진밖에 할 수 없거든요. 그러니 일단은 GO입니다.
그동안 ‘동네 바보 형’을 아껴주시고 저희 아들을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행복했고, 아팠고, 많이 깨달았습니다.
아, 오늘이 마지막이냐고요? 아닙니다. ‘동네 바보 형’은 계속됩니다. 저는 100화까진 연재를 이어가고픈 개인적 소망이 있답니다. 그러니 다음 주엔 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만나 뵐게요. 감사합니다.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