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가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 잡을 때
나체가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 잡을 때
2018.04.02 11:31 by 이지섭

 

친구 B는 매년 봄, 새 옷을 사러 백화점을 찾는다. 정작 사는 옷은 작년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이는 비단 B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행하는 스타일이 다양해지고 유행주기는 짧아졌다.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은 시시각각 다채롭게 변한다. 패션업계는 이에 맞춰 패스트푸드 같은 옷을 만들기 시작한다. 바로 ‘패스트 패션’의 시작이다.

가장 대표적인 패스트패션은 디자인 기획부터 생산, 유통까지 한 회사가 도맡는 SPA브랜드다. (사진: Lauren Roberts/unsplash.com)

패스트패션의 대표격인 SPA브랜드들은 상품 회전 속도를 길게는 3개월, 짧게는 4주까지 줄여가며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한국의 SPA 시장규모는 2008년 5000억원에서 2014년 3조 4000억원으로 거의 7배 가까이 성장했다. 패션시장이 전반적으로 불황인 것을 감안하면, 가히 폭발적 성장세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바로 ‘의류 폐기물’이다. 옷을 많이 만들고 빨리 바꾸는 만큼, 많이 버려진다. 한국에선 SPA 시장규모가 7배 성장하는 동안 의류폐기물 배출량은 32.4%가 증가했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환경보호국에 따르면 의류폐기물은 다른 폐기물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로, 1960년 180만 톤(t)정도였던 의류 폐기물의 양이 지난 2008년엔 1240만 톤(t)으로 늘었다고 한다.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지는가? 별로 와 닿지 않는다고? 그럼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자.

 

| ‘만들고 버리고’ 무한궤도 속에서 지구는 죽어갑니다

의류제품은 생애주기 전 과정에서 환경오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소비자 수요에 발맞춘다는 명목하에 패션업계는 매일 같이 제작공장을 풀가동한다. 그런데 이때 사용되는 섬유의 대부분이 값싼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다. 천연섬유와 비교해 탄소를 세 배 이상 배출시키는 녀석이다.

더군다나 합성섬유는 유지비(?)도 많이 든다. ‘마이크로 플라스틱’이라는 아주 작은 섬유 가닥 때문인데, 옷을 세탁할 때마다 약 70만개 가량 방출돼 해양을 오염시킨다.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해양 플라스틱 오염의 15~31%가 미세 플라스틱 오염 때문인데, 이중 35% 정도가 합성섬유 제품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추산한다. 이 연맹은 “(합성섬유 세탁으로)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만 한 사람이 매주 54개의 비닐봉지에 해당하는 양의 미세 플라스틱을 바다에 버리고 있는 셈”이라고 경고한다.

현재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모든 섬유의 약 60%가 폴리에스테르다.

비단 합성섬유 문제를 빼더라도, 의류 제작공정에선 일일이 거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오염 요소가 많다. 천을 짜서 염료를 빼낸 뒤 나오는 화학물질의 10~15%가 폐수로 하천에 흘러들고, 티셔츠의 주재료가 되는 면화 재배에는 전 세계 농약의 10%가 사용된다.

자, 이렇게 환경을 버리고 ‘멋짐’을 택했다고 치자.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너무 빨리 버려진다. 매립지에 묻힌 옷들은 썩으면서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유독 물질을 공기 중에 내뿜는다. 탈색과 염색, 프린팅, 각종 화학물질로 인공처리된 의류폐기물들을 매립하게 되면 화학물질이 지하수로 스며들고, 소각할 경우에는 독성물질이 대기로 들어간다. 미국환경보호국(EPA)은 “독성이 높은 섬유 폐기물들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자동차 730만 대 배출량과 맞먹는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대량생산에 따른 막대한 합성원료의 사용과 과도한 에너지 소비, 다량으로 버려지는 오폐수까지… 현재의 의류제작 시스템은 말 그대로 지구의 대기와 하천을 멍들게 하는 주범이다. 최근엔 재활용을 통해 가치를 높이는 ‘업사이클링’ 등이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이 또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실제로 2012년 한 해 미국에서 버려진 옷 10벌 중 8벌 이상은 그대로 매립되거나 소각됐다. 입는 것보다 버리는 게 많아진 시대. 우리는 옷으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

 

| 옷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얻어지는 것들

여기까지 읽고 “그래서 뭘 어쩌자고? 다 벗고 다니기라도 하잔 얘기야?”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눈썰미를 칭찬하고 싶다. 바로 그러하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며, 의복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지내는, ‘나체’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국가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FKK(Frei-Körper-Kultu, 직역하자면 ‘자유로운 몸의 문화’)라고 불리는 독일의 나체주의는 자연상태 그대로의 신체로 몸과 마음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을 추구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인간이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먼저 실리적인 측면에서 보자. 나체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일조량’을 보장해준다. 꽁꽁 싸매고, 햇빛을 받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비타민 D의 결핍이 일상적이다. 우울증에 걸리기도 쉽다. 실제로 한국은 비타민D 부족국가로 우울함과 소화 장애를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

또한 나체는 해방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독일의 FKK는 히피정신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는데 권위주의와 체제적 모순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며 ‘모든 것으로부터의 탈권위와 자유’를 외쳤던 바로 그 정신이다. 권위로부터의 해방. 이는 최근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인 페미니즘과도 물론 연관이 있다. 사회적으로 부여된 이미지에 따라 억압된 여성의 신체, 그리고 이에 대한 해방. 이는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Free the nipple’ 운동과도 궤를 같이한다. 나체를 통한 모든 것의 자유화. 지금의 우리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Free the Nipple> 포스터(사진: imdb.com/title/tt2298394)

나체주의가 근간으로 삼고 있는 ‘심층생태주의’도 눈여겨봐야 한다. 자연을 이용할 수단이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바라보자는 입장이다. 심층생태주의자들은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 생존하고, 번성할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했다. 이른바 ‘생명평등주의(biospherical egalitarianism)’다. 자연을 공생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그래서 환경의 파국을 맞고 있는 지금 시기에 깊게 새겨야 할 이야기다.

지구라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나체의 생활양식을 깊게 고민해봐야 한다. 나체가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게 되는 그 때, 우리는 단순히 나체 그 자체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나체를 하나의 패션으로 승화시키는 단계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마치 고대 그리스처럼 말이다.

 

| “나체가 더 낫다”던 플라톤, 옳다 옳아!

‘나체패션’이 꽃피운 시대, 고대 그리스에서는 나체가 외양을 미학화하는 일종의 패션이었다. 당시는 나체 상태로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그리스어에서 체조, 체육을 의미하는 gymnastic 또는 gymnasium이라는 말의 어원은 ‘벌거벗은 상태의’이라는 형용사 ‘gymnos’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운동을 통해 자신의 몸을 가꾸는 게 일상이었고, 그 때 입은 스포츠웨어가 바로 ‘나체’였던 것이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나체관습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옷을 입는 것보다 나체가 더 낫다는 것이 경험에 의해 밝혀지고, 이성에 의해 최선의 것으로 드러난 만큼, 나체가 더 이상 꼴불견이나 창피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Plato 1998, 451c).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에로스에 올바르게 도달하려면 젊은 날 스스로 아름다운 육체에 헌신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아름다운 육체들을 사랑하게 되면, 육체적 아름다움보다 영혼들의 아름다움이 더 가치 있다고 느끼고, 그다음엔 아름다운 행위들, 법률들을 그리고 지혜의 아름다움을…(중략)” (Plato 2010, 210a – 211d).

플라톤, 당신은 도대체 …

쉽게 말해 몸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사랑해야 영혼의 아름다움도 알 수 있단 얘기다. 이렇듯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한바탕 육체미의 향연을 벌이던 시기, 이들은 나체를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했고 자연과 어울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인위적인 것들로 치장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몸’의 가치를 높이는 것. 인간이 태초부터 지니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드러내며 만족감을 기르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자연과 어울리는 방식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문득 내 몸을 보게 된다. 그리고 친구B에게 넌지시 묻는다.

“너는… 운동은 좀 하냐?”

“야, 무슨 운동이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옷이나 좀 더 보자.”

 

필자소개
이지섭

배우며 쓰고 쓰면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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