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경비원이 아니었을
예전에는 경비원이 아니었을
2018.05.03 13:45 by 모자

 

남색 경비원복을 입은 그는 파지와 페트병, 플라스틱이 담긴 자루 옆에 앉아 담뱃불을 붙였다. 허연 담배 연기가 그와 잠시 섞였다가 흩어졌다.

예전에는 귀찮게 분리수거를 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야. 하긴, 그때는 종량제봉투 같은 거 없이 그냥 쓰레기를 버렸던 것 같기도 하고.

그는 혼잣말을 하며 상의에 달린 포켓을 뒤집어 손으로 털었다. 잔일을 하는 동안 구겨진 담뱃갑에서 담배 가루가 쏟아져 나와 엉망이었다. 거친 손가락에는 담배 가루가 달라붙지 않았다.

예전에는 바지 주머니에 손만 넣어도 담배 가루가 온통 달라붙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그때는 손가락이 제법 통통하고 기름기도 있었으니까.

그가 한 달에 보름을 근무하는 오피스텔은 비교적 커다랗고 평범한 건물이었다. 일층의 경비실은 그 모양새가 차라리 안내 데스크에 더 가까웠다. 경비실 앞으로 까맣거나 하얗거나 누런 외국인들과 피곤에 절어 있는 직장인들이, 혼자 사는 노인과 택배 기사가, 배달 음식을 든 배달원이, 키가 크거나 조금 작은 사람들이, 끝없이 그를 지나쳤다.

 

예전에는 점심을 거를 만큼 바빴었는데 말이야. 거래처 사람을 만나서 회의도 해야 하고 급하게 처리할 일도 많았는데. 그러고 보면 그땐 나도 바로 옆에 누가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았지.

표정 없이 사람들을 관찰하던 그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택배 보관 확인 서류에 날짜, 이름, 호수, 수량을 기계적으로 기입했다. 한 시간 후면 건물 내 순찰을 돌아야 하니까 빨리 서류를 정리하는 게 이로웠다. 또박또박 정자로 글씨를 쓰느라 종이와 맞닿은 손날이 매끈해졌다. 손바닥 끝에 생긴 굳은살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해 보니, 회사에 가면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아들도 같은 위치에 굳은살이 있었다. 늦게까지 일하고 있을 아들을 떠올리자 담배 생각이 절로 났다. 건물 내 금연. 빨간 동그라미와 작대기가 그려진 스티커만 없었어도 사는 게 조금 편했을 텐데. 그는 담배를 물고 서류 작성하는 상상을 하며 부지런히 펜을 놀렸다.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들은 그를 잘 쳐다보지 않았다. 낯이 좀 익은 이들은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만 어색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간혹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말을 걸어 주는 경우도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 역시 눈을 피했다. 전화를 받는 척 하며, 급한 일이 생긴 척 하며.

예전에는 그래도 내게 인사를 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말이야. 젊어서 회사를 다닐 때였으니까 시간이 꽤 흐르긴 했지.

사람들이 지나쳐갈 때 그는 주로 정문 밖 풍경을 구경하는 척 했다. 같은 자리에 앉아 매일 보는 풍경이 새로울 리 없었지만 괜히 사소한 시비로 입주민과 얽혀 곤란해지기 싫었다. 그는 초점을 흐려 아무것도 응시하지 않은 상태로 사람들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면, 그는 또다시 정문 밖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초점 없는 눈으로 매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그게 그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였다. 그는 순찰을 나서기 전까지 멍하니 한곳을 응시했다. 등 뒤에 걸린 벽시계의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자꾸만 들려왔다.

예전에는 웃는 얼굴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요새는 통 웃을 일이 없으니 내가 봐도 좀 무뚝뚝해 보이네. 뭐, 경비원이 실실 웃고 다니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이 부쩍 낯설었다. 본디 가장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자신의 얼굴이라지만, 근래 들어 더 딱딱한 인상으로 바뀐 느낌이었다. 한번 패인 주름은 매일 더 깊어졌다. 그는 문에 비친 자신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바지 속으로 넣은 상의 끝단이 허리 부근에 뭉쳐 갑갑하게 느껴졌다. 꼭대기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그는 느리게 복도를 걸으며 문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하나씩 떼어냈다. 철문과 시멘트 벽이 전부인 기다란 공간에서 그가 할 일이라곤 걷고, 떼어내는 것뿐이었다.

그는 비상계단을 좋아했다. 순찰을 돌 때는 꼭대기 층에서부터 비상계단을 통해 한 층씩 내려가는 방법을 고수했다. 비상계단 철문을 열고 어두운 공간에 들어서면 조금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퀴퀴한 먼지와 오래된 쇠 냄새. 입주민들이 버린 담배꽁초에 묻은 적막. 그리고 적막.

예전에는 혼자 있으면 외로웠는데 말이야. 하긴, 그때는 나를 반기는 사람들도 몇 있었으니까.

그는 그를 똑바로 봐주지 않는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무생물 대하듯 스쳐가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들에겐 하루에 한 번이지만 그에겐 수백 수천 번이었다. 경비원이 지켜야 할 것은 어쩌면 집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마음을 지키려고 경비 일을 한다니 말이 안 되지. 상처받는 일을 하면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딱딱해진다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야. 그런데 내가 경비원이 되고 싶었던가. 하긴, 예전에 다니던 회사도 그냥 다녀야 하니까 다녔지. 그땐 다들 그랬으니까. 그래도 예전에는 사는 게 그럭저럭 재밌을 때도 많았던 것 같은데.

언젠가 편의점에 다녀오던 나는 그에게 작은 음료 하나를 내밀었다. 그와 비슷한 얼굴로 말없이. 그는 잘 마실게요,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경비원 일을 그만두었다. 아마 고향으로 내려갔을 것이다. 예전의 그가 아직 남아 있는 곳으로.

 

*원문 출처: 모자 지음, 『숨』, 첫눈출판사, 2018.

 

필자소개
모자

세상을 마음으로 관찰하는 작가. 필명 모자의 의미는 작가의 말로 대신한다. ‘모자를 좋아합니다. 모자라서 그런가 봅니다.’ 지은 책으로는 『방구석 라디오』와 『숨』이 있다. 섬세한 관찰력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꾸밈없이 담백하게 쓴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평범하게만 느꼈던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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