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밤을 더 푸르게 만드는 곳, 마틸다
제주의 밤을 더 푸르게 만드는 곳, 마틸다
2018.09.28 14:52 by 전호현

 

아침저녁으로 쌀쌀해 이불 속에서 벗어나기 힘든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휴가철도 슬슬 끝이 보였다. 덕분에 비행기 표가 넉넉해진 터라 여유롭게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부모님 집을 방문함과 동시에 근처 LP BAR에 대한 소문도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지방 LP BAR 순회 첫 방문이 제주도가 될 줄이야.

제주 애월읍의 LP BAR 마틸다

기차, 버스 등 대부분 탈 것에 멀미가 없는데도 신기하게 비행기만 타면 온몸에 진이 빠진다. 제주도가 고향인 덕에 수백 번 타온 비행기임에도 익숙해지기는커녕 매번 더 힘이 든다. 이코노미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도 한몫하지만.

착륙할 때쯤 멀리 푸른 제주가 보인다. 그러나 위에서 보이는 상황과는 다르게 요새 제주는 이런저런 일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적정 인원을 넘어선 방문객 때문에 오폐수 처리가 힘들다. 더구나 여기저기 난립한 건물들이 제주 풍경을 해치는 와중에 난민 문제까지 골치를 썩이고 있다. 한때 지역주민이었던 나로서는 인생의 3분의 1을 지내는 동안 정겨운 추억이 많았던 곳이 제주다. 그래서 특색 없이 들어서는 건물들 때문에 본연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것이 마음 아프다.

최근 제주도는 이런저런 일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사진: Charlie Waradee/Shutterstock.com)

그래도 집 방문은 언제나 기쁜 일이고, 제주 LP BAR에 대한 기대는 한껏 높았다. 해가 지기도 전에 콜택시를 타고 오늘의 목적지 ‘마틸다’를 방문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주차장에는 차가 많았고 안으로 들어서자 테이블 곳곳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천장이 높은 단층 구조. 이층 높이의 건물을 한 층으로 쓰고 있었다. 바닷가를 향한 좁고 기다란 창문을 제외하고는 밖이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그 조그만 창문만으로도 저 멀리 오징어잡이 배들이 빛을 내며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놀라웠다.

마틸다의 벽을 가득채운 LP(왼쪽)와 창밖으로 보이는 제주 밤바다

사장님은 잠실-신천 쪽에서 마틸다라는 이름으로 10여년 LP BAR를 운영했다고 한다. BAR 너머 가득 찬 만 여장의 LP들이 그 세월을 증명하고 있었다. 2014년 문득 제주도로 내려와 같은 이름으로 이곳에 LP BAR를 차리고 4년 가까이 섬 생활을 즐기고 있는 중이라고. 서울과 어떤 점이 다른지 물었더니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40-60대 손님이 회식 위주로 방문했다면 이곳은 관광객 반, 현지인 반 정도의 20-30대 손님들이 주를 이룬다고.

외딴곳에 위치한 이곳을 찾아와 줄까? 걱정과는 달리 어느새 주차장은 만석이 되었고 가게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일반적인 LP BAR와 다르게 BAR가 아닌 테이블에 먼저 손님이 차는 것도 이색적인 광경이었다. 사장님의 바람은 손님들이 LP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근처 LP BAR를 자주 찾는 것이라고 했다. 스쳐 지나가는 말 속에서 단순한 가게 운영이 아닌 LP의 저변 확대까지 생각하는 마음이 깊게 와닿았다.

마틸다의 벽을 장식한 액자와 LP들

가게의 천장을 높이고, 창문을 좁게 낸 것은 소리를 위한 배려라고. 전에 가게에서 쓰던 알텍 랜싱(ALTEC LANSING)의 A-5모델 혼(horn)이 높은 천장과 잘 어울려 소리를 구석구석 잘 퍼트리고 있었다. '알텍(ALTEC)'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로 511 우퍼와 288 유닛이 결합된 중형 시어터 스피커답게 고음역이 강조된 모델이 진공관 앰프와 만나 높낮이 없이 풍부한 음역대를 들려주고 있었다. 앞서 썼던 ‘레너드’에서도 느꼈지만 역시 어디서나 사랑받는 모델.

ALTEC LANSING A-5

오는 손님들이 젊어져 새로 나온 음악을 오히려 배운다는 자세로 최신 LP도 꾸준히 구입한다고 했다. 벽을 가득 메운 액자와 LP들은 사장님의 젊은 감각을 잘 드러내고 있었고, 오토바이로 출퇴근하는 모습에서도 왠지 모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과 다르게 처음 2년 정도는 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연고도 없이 외딴 섬에 내려와 건물부터 인테리어까지 직접 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물론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 정도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제주도여서 가능하다고 했다. 도심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일부러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손님들이 올린 SNS를 통해 소문이 나면서 요새는 제법 여유도 생겼다며 웃었다.

제철 맞은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여유롭게 놓인 테이블, 그리고 창가 너머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음악을 듣고 있자니 마치 외부와 단절된 특별한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으레 LP BAR라면 막힌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곳은 닫혀있으면서도 밖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신비한 공간이었다. 역시 제주라서 가능한 일일까.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물고기잡이 배들이 보이는 창문은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어떤 곳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었다. 아마도 뒤로 들리는 LP의 풍부한 음악도 한몫했겠지만.

사실 제주도에 내려올 때 이런저런 상황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밤풍경을 벗 삼아 음악을 들으니 제주도가 다른 어느 곳보다 아름답고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지금까지의 제주 여행이 어딘가 모르게 아쉬웠던 독자라면, 이 색다른 LP BAR에 들러 순수하고 아름다운 제주를 다시 느껴보길 바란다.

덧1- 창문 쪽으로는 3-4테이블이 있다. 선점하도록.

덧2- 교통이 편한 동네는 아니니 차를 가져가거나 택시가 편하다. 대리운전을 이용하도록.

덧3- 아이돌 음악은 지양하시는 편이니 신청할 때 참고 하는 게 좋을 듯.

덧4- 사장님의 추천 곡 Climax Blues Band - Summer Rain

 

FOR 아직 아름다운 제주 밤바다를 느끼고 싶다면.

BAD 흥이라는 게 폭발하는 당신.

 

/사진: 전호현

필자소개
전호현

건설쟁이. 앨범 공연 사진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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