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창궐'로 본 전염병의 공포
영화 '창궐'로 본 전염병의 공포
2018.11.19 15:00 by 이지섭

때는 조선 후기.
어둠 속에서 나타난 야귀(夜鬼)들이
사람을 물어 해치고

물린 이들은 야귀가 되어 또 다른 사람을 공격합니다. 나라 전체가 두려움에 휩싸이고, 조정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공포의 가장 큰 원인은 이 야귀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못된 세력이나 전염병 따위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현상을 뜻하는 ‘창궐’. 영화의 제목은 원인 모를 전염병의 무시무시한 파급력을 암시합니다.

영화 ‘창궐’ 포스터.(사진: 영화 ‘창궐’ 공식사이트)

영화 '창궐(Rampant, 2018)'

어릴적 청나라로 간 왕자 이청(현빈 분)은 자신의 형인 세자의 부고를 듣고 조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병조판서 김자준(장동건 분)은 이청을 제거하기 위해 자객들을 보냈고, 귀국길에 이들을 마주친 이청 일행은 한바탕 싸움을 벌이죠.

이때 영화의 주인공(?)인 야귀들이 처음 등장합니다. 서양의 좀비들과 형체는 유사하지만 훨씬 더 빠르고 지능이 높아 보입니다. 다만 야귀들은 해가 진 어둠 속에서만 나타나며, 빛에 약한 것이 특징입니다.

궁으로 들어간 이청은 부친인 왕에게 야귀 소탕을 이유로 군사를 청하지만, 김자준의 반대에 막히게 됩니다. 사실 알고 보니 야귀의 존재는 역모를 계획 중인 김자준이 남몰래 사육하고 있었던 사병같은 것이었죠.

김자준의 계략대로 많은 이들이 야귀로 변해갔고, 급기야는 왕도 감염된 후 죽임을 당합니다. 하지만 왕좌를 거의 손에 넣은 김자준 역시 야귀에 물린 뒤 허무하게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후 이청과 야귀떼 간의 엄청난 혈투를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정체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귀들.(사진: 영화 ‘창궐’)
정체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귀들.(사진: 영화 ‘창궐’ 공식사이트)

인류와 함께한 전염병의 역사

‘창궐’에 등장하는 야귀나 서양 영화에 나오는 좀비나 원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입니다. 그것도 높은 전염성을 가진, 주로 신체 접촉을 통해 감염되고 치사율이 높으며 해독이나 진압이 쉽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죠.

실제로 과거 전염병은 인류의 적이라 할 만큼 많은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1392년 건국 이래 500년 동안, 전염병이 창궐한 시기는 도합 160년에 달합니다. 평균으로 나누면 10년에 최소 3번 이상은 전염병이 유행한 셈이죠.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807년 750만명이 넘었던 조선 인구가 30년도 안 돼 660만명으로 줄었는데, 이게 다 역병의 영향입니다.

역병이 돌면 수십만 명이 죽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사진: SBS ‘뿌리깊은나무’)
역병이 돌면 수십만 명이 죽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사진: SBS ‘뿌리깊은나무’)

특히 조선이 역병에 취약했던 이유는 전염병의 원인을 기상 이변이나 음양의 부조화, 심하게는 귀신의 소행으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의학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탓에 심리적 두려움만 커질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이를 잘 나타내주는 것이 ‘호환과 마마’의 그 ‘마마’입니다. 지금은 쉽게 치료하는 천연두가 당시에는 엄청나게 무서운 전염병이었고, 조선인들은 왕족에게나 붙이는 ‘마마’라는 호칭을 천연두에게 붙인 것이죠.

서양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4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발원한 페스트(흑사병)는 빠른 속도로 유럽 전역에 확산됐고, 무려 2600만명이라는 사망자를 기록했습니다. 전 유럽 인구의 1/4 가량이 같은 병으로 목숨을 잃었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럽 역시 조선과 크게 다른 수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사진: thoughtco.com)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사진: thoughtco.com)

20세기를 전후해 미생물학과 세균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전염병은 과거보다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많은 바이러스와 병원균들은 현대 의학에 의해 사라지거나, 잔존하더라도 쉽게 치유될 수 있을 만큼 위력이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요? 인류가 전염병의 공포에서 완전히 해방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2000년대 이후만 보더라도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와 조류 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등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시간이 지나면 백신 등 치료제가 개발되곤 합니다. 하지만 내성이 생겨 더 위력이 큰 바이러스가 된다거나, 아니면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로 진화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비해 힘을 잃은 ‘재래식’ 바이러스들도 지진이나 쓰나미 등으로 피해를 입은 곳이나 위생 및 환경이 좋지 못한 후진국을 중심으로 호시탐탐 ‘창궐’을 노리고 있습니다. 의약품 보급이 수월하지 못한 곳에서는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죠.

 

전염병과 바이러스를 다룬 영화들
전염병과 바이러스를 다룬 영화들(사진: 영화 ‘부산행’, ‘감기’, ‘28일 후’ 공식사이트)

다른 영화가 더 궁금하다면

전염병과 바이러스를 다룬 영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척 많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많이 제작될 것입니다. 시기적으로 가장 가까운 작품은 재작년 국내 극장가를 휩쓸었던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TRAIN TO BUSAN, 2016)’입니다. 한국형 좀비 영화의 대표작으로, 감염의 발생과 전염을 통해 파괴돼 가는 사회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김성수 감독의 ‘감기(The Flu, 2013)’ 역시 감염속도 초당 3.4명, 치사율 100%의 유례없는 최악의 바이러스를 다룹니다. 바이러스 때문에 국가 재난사태가 발령되고 도시가 폐쇄되는 재앙 속에 사람들은 절망합니다.

영국 출신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28 Days Later, 2002)’ 역시 바이러스로 인한 디스토피아를 훌륭하게 표현한 수작으로 꼽힙니다. 유인원들을 강제 수용해 연구를 진행하던 중 발생한 ‘분노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어떻게 전염되고 파멸로 이끄는지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본 콘텐츠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공식블로그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필자소개
이지섭

배우며 쓰고 쓰면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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