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무기, 삶과 죽음의 공존 ‘체르노빌’
문명과 무기, 삶과 죽음의 공존 ‘체르노빌’
2018.11.28 16:26 by 싸나

지금으로부터 32년 전,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노빌에서 대규모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방사능물질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고, 피해자 수는 늘어만 갔다. 많은 이들이 생활터전을 잃었고, 환경은 황폐하게 변했다. 다시 25년이 지났을 때, 사고 현장 주변을 직접 방문해 볼 수 있는 투어가 시작되었다. 그저 죽은 도시를 둘러보는 것은 아니다. 원자력 사고의 심각성과 인간이 만들어낸 참사를 인지하는 것, 그리고 깊은 애도다.

 

32년 전 판도라가 열린 곳, 체르노빌.
32년 전 판도라가 열린 곳, 체르노빌.

음의 도시, 삶을 향한 작은 희망을 엿보다

1986426일 오전 123. 소비에트 연방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발견되었다. 실험과정에서 잘못 설계된 제어봉과 조작 실수였다. 급기야 불로 번졌고, 진화되기까지 10일 간 방사성 물질이 계속 퍼져나갔다. 그리고 사고는 며칠이 지나서야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에 세워진 가장 큰 원전, 체르노빌의 참사였다.

몇 십 년이 지난 후, 체르노빌을 둘러보는 투어가 마련되었다. 물론 방사능 허용범위 안에서만 이뤄지고, 우크라이나 정부 허가를 받은 일부 여행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방사능 지역을 여행한다니, 불안한 마음도 든다. 위험하지 않을까? 참고로 일상적인 대기 중에 노출된 방사능의 양은 약 0.3μsv(마이크로 시버트) 정도다. 체르노빌 지역의 방사능 수치는 1.0~30μsv. 유럽행 왕복 비행기를 한번 탔을 때 체내에 쌓이는 방사능의 양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체르노빌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방사능 물질로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우크라이나 당국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2016년 3월, 체르노빌의 방사능 수치 (사진:Eight Photo/shutterstock.com)
2016년 3월, 체르노빌의 방사능 수치 (사진:Eight Photo/shutterstock.com)

체르노빌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자리한다. 검문소(여기서 서약서에 서명을 한다)를 통과하면, 조성된 공원과 마을, 원자력 발전소 근처까지 접근할 수 있다. ‘쑥의 별 공원소방관 기념탑등이 인상적이다. 사고로 희생한 사람과 도시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쑥의 별 공원은 사고 25주년 기념식에 맞춰 조성되었고, 소방관 기념탑은 사고 직후 순직한 소방관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세계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바친다라는 문구가 뭉클하다.

 

멀리서 본 체르노빌의 모습
멀리서 본 체르노빌의 모습

인적이 없는 마을도 둘러볼 수 있다. 코피치 마을 안의 유치원은 사고 당시의 처참한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인형과 책들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스산한 건물 안팎은 고통의 시간이 남아있다.

 

체르노빌의 유령도시라 불리는 프리피야트의 모습.
체르노빌의 유령도시라 불리는 프리피야트의 모습.

이 죽음의 도시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자발적 귀향자라 불리는 사마셜들이다. 그들은 방사능이 뒤덮인 고향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삶을 꾸렸다. 그들은 직접 먹을 것을 키우며 묵묵히 지내고 있다. 마을엔 여전히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고, 동물의 움직임도 관찰할 수 있다. 죽음이 짙게 깔려있지만 여전히 삶의 희망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 1~4호기가 늘어선 산업지구도 투어를 통해 둘러볼 수 있다. , 방사능 허용 범위 내에서, 그 주변으로만 말이다. 사고가 났던 4호기는 엄청난 양의 방사성물질을 두꺼운 석관이 덮고 있다.

 

보호장비를 갖춘 검사원이 체르노빌의 방사능 수치를 분석하고 있다.
보호장비를 갖춘 검사원이 체르노빌의 방사능 수치를 분석하고 있다.

┃기억하는 공간, 키예프 체르노빌 박물관

수도 키예프에서도 체르노빌과 관련된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체르노빌 박물관은 노란색 건물로 교회나 성당 같은 모양새다. 반면 내부는 어두침침하다. 사고가 일어나게 된 과정, 그 후의 모습 등 여러 자료가 있다. 무엇보다 무거운 분위기 속 처참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희생된 사람들의 모습들, 애도의 마음이 잘 드러난 공간이다.

 

국립 체르노빌 박물관 내부 전경 (사진:Anton_Ivanov/Shutterstock.com)
국립 체르노빌 박물관 내부 전경 (사진:Anton_Ivanov/Shutterstock.com)

1992년에 문을 연 박물관은 대담한 전시로 사고의 기억을 또렷하게 남겨두고 있다. 사고 당시 순직한 소방관을 기리기 위한 작은 사진 전시로 시작된 게 박물관으로 이어진 것.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전까지 체르노빌 사고는 완전히 드러나기 어려웠다. 안나 콜로레브스카 체르노빌박물관 부관장은 수많은 희생자를 통해 원자력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기 위한 전시로,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란 걸 강조한다.

체르노빌 참사는 핵 발전의 위험성을 알린 최악의 사고였다. 하지만 원전 사고는 계속되었다. 2011311일 일본 도호쿠 지방에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는 인류의 많은 부분을 앗아갔다. 우리나라는 현재 24기의 원자로를 가동 중이다. 원전 의존도 세계 2, 전력 생산력의 약 28.43%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 역시 탈 원전에 합류했다. 2017619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고리에 있는 고리 원전 1호기는 가동을 멈췄다.

인간은 서둘러 더 나은 문명을 만들고 있지만, 그와 함께 더 큰 위험성이 있는 무기가 공존한다. 무시무시한 참사를 만들어냈던 체르노빌은 그런 인간들에 대한 묵직한 경고다.

 

프리피야트 마을의 기념비, 체르노빌은 인간에 대한 경고다.(사진: Oleg Totskyi / Shutterstock.com)
프리피야트 마을의 기념비, 체르노빌은 인간에 대한 경고다.(사진: Oleg Totskyi / Shutterstock.com)

 

*본 콘텐츠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공식블로그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필자소개
싸나

시시詩詩한 글을 쓰고 싶은 새벽형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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