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섬, 규슈. 규슈 북서쪽에 위치한 나가사키 현은 16세기 중반부터 무역이 활발했던 덕분에 일찍이 항구도시로 발달했다. 인천에서 비행기로 1시간 20분이면 닿는 가까운 도시이기도 하다.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마을 전체에 유황 냄새가 짙게 나는 운젠 마을, 일본 3대 야경으로 꼽히는 이나사야마에 전망대, 네덜란드 왕궁과 거리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은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 등이 가볼만하다. 1945년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희생자를 기리는 박물관과 공원까지 둘러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곳, 관광지로 호황을 떨치고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하시마 섬, 속칭 군함도다.
나가사키 항에서 배를 타고 40분 정도 가면 닿는 하시마 섬. 일본 사람들은 모양을 본 따 ‘군칸지마’(군함도라는 뜻)라 부른다지만, 우린 다른 이름도 알고 있다. ‘지옥섬’, ‘감옥섬’ 같은 것들이다. 2012년에 나온 <사망 기록을 통해 본 하시마 탄광 강제 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 실태 기초 조사>를 살펴보면, 1943부터 1945년 사이에 약 800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이 섬에 징용되어 강제노동을 했다고 전한다.
2017년에 개봉했던 영화 <군함도>보다 더 처절했던 현실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자랑, 산업화를 이룬 위대한 유산. 하지만…
나가사키 항에서 18㎞ 정도 떨어진 하시마섬은 원래 작은 돌섬이었다. 하지만 질 좋은 석탄이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1890년 미쯔비시 광업 주식회사는 이 섬을 매입했고, 여러 번의 매립을 통해 면적을 3배가량 넓혔다. 잦은 태풍의 피해를 줄이고자 섬 둘레로 높은 담을 쌓아 올렸고, 그렇게 섬은 천연의 요새가 되었다. 날아다니는 새조차 나오지 못한다는 감옥이자, 지옥의 섬이 된 것이다.
야구장 2개 크기 만한 섬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석탄을 채굴해 돈을 벌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모이자 집이나 학교 같은 생활 시설도 마련됐다. 1916년에 세워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7층짜리 고층아파트는 비좁은 섬에서 존재감을 뽐내는 꽤 실용적인 건축물이었으리라. 현재도 그 모습이 남아있는데, 일본인에게는 큰 자랑으로 여겨진다. 각종 유흥 시설도 하나하나 채워지기 시작했다. 영화관, 오락실, 수영장 같은 그 당시의 호화시설을 포함해서 말이다.
무인도였던 그 땅은 얼마 가지 않아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를 가진 곳이 되었다. 1헥타르 당 835명이 살 정도였단다. ‘일본열도보다 몇 배가 넘는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모두가 그 섬에 가고자 했다. 일본판 ‘골드러시(Gold Rush, 19세기 미국에서 금광이 발견된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든 현상)’였던 셈이다.
┃공포 속에서 보내야만 했던 하루하루
일본인에겐 ‘신세계’였을 그곳, 하지만 한국인이나 중국인 등에겐 그야말로 공포의 섬이었다. 해저 탄광인 하시마 섬에서의 채굴 작업은 해수면 아래 1㎞ 쯤에서 이뤄졌다. 급경사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는 지형. 기온 30도, 습도 95% 이상의 환경. 쉴 새 없이 새어나오는 가스. 이런 위험 요소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로 석탄을 캐야 했다. 가스가 폭발하거나 갱도가 무너져 죽기도 했다. 하루 노동시간은 최소 12시간. 노동의 대가로 받는 돈은 숙소, 식사 등의 비용으로 빼앗겼다.
20세 이하의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은 더욱 안타깝다. 비좁은 갱도를 들어가야 하니 몸집이 왜소한 청년들이 타깃이 되었으리라. 높은 임금을 주겠다고 회유하며 데리고 온 곳이 다름 아닌, 지옥의 섬이었던 것이다.
┃그 섬은 일본인의 자랑스러운 관광지가 됐다
오늘날 나가사키 항에서 출발하여 군함도에 들어갈 수 있는 투어상품을 운영 중인 여행사는 총 5곳이다. 당일엔 들어갈 수도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이 섬은 1974년 폐허가 되었고 한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는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마치 옛날 석탄이 발견됐던 그 때처럼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유네스코는 인류의 문화유산 중 뛰어난 가치를 지닌 문화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그 의미를 되새기고 소중히 기억하자는 뜻이다. 지난 2015년 유네스코는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서구의 산업화가 비서구권으로 성공적으로 옮겨간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반발이 일자, 일본 측은 이 섬에 강제노역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밝히고 나가사키에 조선인 희생자를 기리는 센터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17년 유네스코는 일본에 약속을 이행하도록 촉구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일본은 유네스코에 최대 분담금을 내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바라보는 군함도는 산업혁명의 역사적 장소다. 하지만 불미스런 과거는 철저히 숨기고 있다. 1850~1910년의 역사만 내세울 뿐, 강제징용이 이뤄졌던 1916년 이후의 시간은 감추며, 반 토막 역사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것이다. 공동묘지 관리를 소홀히 하고, 돌아가신 분들의 위패를 불태우며 “조선인은 자원자가 많았고, 그들은 사고에 의해 사망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군함도 투어상품을 통해서는 섬의 십분의 일 정도만 접할 수 있다. 조선인들이 일했던 처절한 환경의 탄광과 숙소는 볼 수 없다. 그곳은 철저히 감춰져 있다. 그 속에서 무참히 짓밟혔던 인권의 역사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