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청년들, ‘소비’로 ‘존재’를 증명하다?
대륙의 청년들, ‘소비’로 ‘존재’를 증명하다?
2019.03.15 15:12 by 제인린(Jane lin)

오로지 저축만이 미덕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소비가 낭비와 비슷하게 받아들여지던 그 때는 돈이 생기는 족족, 은행 잔고에 차곡차곡 쌓이기 바빴죠. 하지만 경제 전반적으로 보면, 소비가 미덕인 경우도 존재합니다. 최근에는 아예 ‘욜로(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나 ‘포미(FOR ME)’족처럼 자신의 행복을 위해 과감히 투자하는 것을 권장하는 트렌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은 어떨까요?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 무대책 소비를 하는 경향 말입니다. 최근 중국에 등장한 신조어 ‘자살식 소비’가 바로 이런 것이죠. 

 

(사진: 웨이보)
(사진: 웨이보)

他们说, 그들의 시선

중국 베이징 차오양취(朝阳区)에 거주하는 단 씨(29세, 여). 그녀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외국어 회화 전문 강사다.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정도 기업 강단에 서는 것이 그녀의 주요 수입원. 종종 알음알음 소개 받은 이들에게 일대일 과외도 하는데, 해외 대학교 입학시험을 앞둔 학생들과 자국 내 국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주요 대상이다.

단 씨는 이렇게 일하면서,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을 많이 갖는 편이다. 그때마다 가까운 도심 외곽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친구들과 음주를 곁들인 식사를 즐기고, 주말이면 두 마리의 대형 반려견과 함께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 등 자유분방한 ‘싱글 라이프’를 만끽하고 있다.

 

프리랜서 단 씨는 자유분방한 싱글 라이프를 즐긴다.(사진: 웨이보)
프리랜서 단 씨는 자유분방한 싱글 라이프를 즐긴다.(사진: 웨이보)

단 씨의 가정은 원래 풍족한 편이었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업가 부모님으로부터도 얼마간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다보니 소비에 소극적이지 않다. 단 씨의 평균 지출은 그녀의 평균 수입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녀는 “현재까지 번 돈 중 남은 것은 한 푼도 없다”면서 “부모님께서 내 명의로 구입해 준 아파트가 있고, 그게 매년 큰 폭으로 뛰고 있는 게 재테크라면 재테크”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 아파트는 현재 본인이 살고 있는 집이다. 결론적으로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여유 자금은 전무한 셈이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자신의 반려견의 생일에 친구들을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고, 일 년에 두 세 차례는 고가의 해외여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단 씨의 씀씀이는 오늘날 중국에서 살아가는 상당수의 젊은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다. 소비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고, 오늘만 사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중국 청년들이 점점 늘고 있다.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중국 청년들이 점점 늘고 있다.

她说, 그녀의 시선

최근 중국에 등장한 신조어들 중에는 ‘90後(90년대 출생자)’를 겨냥한 것들이 참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은형빈곤인구(隐形贫困人口)’, ‘화패식청년(花呗式青年)’, ’무산중산계급(无产中产阶级)’ 등이 꼽힌다. 이들 신조어는 모두 공통된 의미를 가졌다. ‘겉으로 보기엔 호화롭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일컫는 것으로, 매달 벌어들이는 수입의 대부분을 지출하는 중국의 청년들의 소비 성향을 담은 말이다. 

그런데 최근 버는 수입을 그대로 지출하는 젊은이들의 모습과 관련, 중국의 유명 블로거가 조사한 내용이 화제다. 중국의 대표적인 sns인 웨이보(微博)는 무려 4만 여명의 90년대 출생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재무 상황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는데, 전체 응답자의 약 70%가 금융권 대출을 받은 적이 있어 매달 원금과 이자를 갚고 있다고 답했으며, 이중 사금융을 이용한 경우는 47.25%에 달한다. 또한 답변자의 20%는 매달 벌어들이는 수익을 모두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축 같은 것과 거리가 먼 삶이다. 실제로 “적은 돈이지만,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저축해오고 있다”고 답한 청년은 답변자의 10% 정도에 불과했다. 

비슷한 조사는 또 있다. 알리바바 그룹의 금융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Ant Financial, 蚂蚁金服)이 실시한 ‘중국양로전망조사보고(中国养老前景调查报告)’에 따르면, 35세 이하의 중국인 가운데 약 56%가 매달 벌어들이는 수익을 전부 소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90년대생 중 정기적으로 저축을 하는 사람은 10명 중 한 명 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웨이보)
중국 90년대생 중 정기적으로 저축을 하는 사람은 10명 중 한 명 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웨이보)

이런 현상에 대해 앞서 소개한 보고서들은 이렇게 진단한다. 

“90년대 출생자들의 경우 다양한 영역에서의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가 팽배하다. 이 때문에 대출을 받아서라도 물건을 구입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등의 소비 패턴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자연스레 저축률을 떨어뜨린다”

경제관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청년들의 대출 이용 문화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보고서가 지적하는 대표적인 부작용은 사금융 업체의 불법 추심 사례다. 이는 특히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출 업체 직원들로부터 불법 동영상 촬영을 강요받는 등 막무가내식 추심 행위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고 답변한 여대생의 수가 무려 5만 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와 추가 조사 등에 대한 발표는 없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안게 되는 부채 부담도 문제다. 후이펑은행(汇丰银行)은 자사 연구 조사보고를 통해 90년대 출생자들이 그들의 평균 수익 대비 무려 1850% 이상 규모의 개인 부채를 가지고 있다고 추산했다. 90년대 출생자들의 평균 수입은 약 9000위안(한화 151만원)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각종 대출기관과 신용카드 발행 서비스 등을 통해 쌓아 올린 1인당 평균 부채 규모는 무려 12만 위안(한화 약 2018만원) 수준에 달한다. 

 

중국 90년대 출생자들의 빚은 버는 돈의 10배가 훌쩍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90년대 출생자들의 빚은 버는 돈의 10배가 훌쩍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보고서가 밝히고 있는 중국 청년들의 소비 습관 중 가장 눈에 띄는 경향은 ‘게으른 문화로 비롯된 소비’와 ‘장려식 소비’다. 예컨대 스마트 폰을 활용해 ‘띠띠(滴滴)’라고 불리는 콜택시를 애용하거나, 집에서 요리를 하거는 것을 꺼리고 배달 음식을 주문해 먹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 즉 게으른 문화가 소비를 부추기고, 생일과 기념일에 들어가는 선물비용을 아끼지 않은 장려식 소비문화가 팽배하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청년들 스스로 찾은 자구책도 흥미롭다. 이들은 직장인의 월급 수준으로는 자신이 처한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판단, 창업 또는 투잡, 주식 투자 등의 방식으로 수익을 증가시키는 방안을 찾아 나서고 있다. 스스로 ‘사장’이 되어 수익을 창출하거나, 퇴근 후 또는 주말 시간을 활용해 복수의 직업을 갖는 이들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에서 수 년 째 부동산 판매 영업직 사원으로 일했던 판 씨 역시 복수의 직업을 가진 대표적인 사례자다. 그는 평일에는 부동산을 매매 혹은 경매하는 일을 하는 영업팀 팀장이지만, 퇴근 이후에는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나 출산 전후를 사진으로 남기는 중국 여성들의 수요가 늘며, 매주 분주한 주말을 보내고 있다. 그와 함께 일하고 있는 정 씨 역시 평일에는 부동산 매매업에 종사하지만, 퇴근 후에는 거주지 인근의 대형 헬스장에서 잘나가는 트레이너로 변신한다. 

현재 3개의 직업을 가진 정 씨는 “90호우로 대표되는 중국의 청년들은 소비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만큼이나 소득 창출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서 “보다 적극적인 노력으로 스스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대해 막무가내로 비판만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정씨는 이어 “젊은이들의 지출은 쇼핑, 여행 등이 대부분인데, 이것들은 결국 인생의 즐거움과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 중의 하나일 것이며,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의 모습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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