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의 손길 강원도로 총집결…산불 현장 구호활동 어떻게 이뤄지나
구호의 손길 강원도로 총집결…산불 현장 구호활동 어떻게 이뤄지나
2019.04.13 16:44 by 이창희

전 국민을 안타깝게 만들었던 강원 지역 산불이 수습기에 접어들었다. 이번 사고는 수백 채의 주택과 1700헥타르(ha)가 넘는 지역을 불바다로 만들며 700명이 넘는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피해 복구에 나설 시점. 전문가들은 “온전히 복구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과 자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아무리 길고 고되더라도 꼭 가야할 길이다. 화마(火麻)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의 상처를 보듬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번 화재 피해 지역인 강원도 고성 용촌리의 한 가옥.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모습이다
이번 화재 피해 지역인 강원도 고성 용촌리의 한 가옥.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모습이다

| 주거지로 변한 학교 강당, 움직이는 샤워실‧세탁기도 등장 

강원도를 휩쓴 불길이 모두 진압된 지 이틀 만인 지난 8일, 이재민들의 임시 거처가 있는 강원도 고성의 아야진 초등학교를 찾았다. 이 학교에는 현재 60여명의 이재민이 머무르는 대피소가 마련돼 있다. 재해대책과 이재민 구호를 목적으로 조직된 민간구호단체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가 산불 발발 직후 고성에 마련한 대피소 중 한 곳이다. 

초등학교 강당 안으로 들어서니, 옹기종기 모여 있는 텐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밝은 노란색의 빛을 띤 텐트는 모두 20여동. 이재민들의 임시 거처가 되어 줄 보금자리다. 강당 한 편에 마련된 대형 TV에서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사고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재민의 모습도 보였다. 이 강당 안에서는 간단한 의료 서비스와 심리상담 서비스도 제공되고 있다. 

 

아야진 초등학교 강당에 마련된 임시 거주시설. 현재 60여명이 생활 중이다
아야진 초등학교 강당에 마련된 임시 거주시설. 현재 60여명이 생활 중이다

“자, 이쪽으로! 아니 조금만 더! 천천히!

별안간 밖이 소란스러워 나가보니 8톤 트럭과 지게차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건물 뒤편 공터에 이동식 샤워실을 설치하는 중이었다.

트럭에 실린 샤워실을 지면에 내려 앉히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지게차가 수차례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하고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설치를 진두지휘한 배천직 희망브리지 구호사업팀장은 “흔들리지 않도록 평형을 맞추는 것은 기본이고, 전기와 수도를 연결할 거리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라며 연신 땀을 훔쳤다. 배 팀장은 “무엇보다 시설을 직접 이용할 이재민들의 동선과 편의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설치된 이동식 샤워실은 희망브리지가 지난해 자체개발해 제작한 것이다. 재난 현장에서 이재민들의 위생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해 생기는 2차, 3차 피해를 막기 위한 것으로, 실전에 투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녀 각각 10개의 샤워기와 1개의 세면대가 설치돼 있고, 상시 온수 사용이 가능하다. 계속되는 텐트 생활로 위생에 취약할 수 있는 이재민들이 개운하게 씻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이동식 샤워실 설치 모습(왼쪽)과 샤워실 내부
이동식 샤워실 설치 모습(왼쪽)과 샤워실 내부

샤워실 설치가 마무리될 무렵, 육중한 트럭 한 대가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희망브리지와 현대자동차그룹의 합작으로 마련된 세탁구호 차량이었다.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가 각각 3대씩 설치돼 있어 이불 등의 대용량 빨래가 가능하며, 하루 800세대가 사용할 수 있다. 이재민들의 식사를 돕기 위한 ‘사랑의 밥차’도 등장했다. 제천시와 전주시의 자원봉사센터를 비롯한 각급 단체에서는 각종 식자재와 함께 봉사 인력을 함께 파견해, 이재민들의 식사를 도울 수 있도록 지원했다. 

 

하루 800세대가 이용 가능한 세탁구호 차량.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를 각각 3대씩 장착하고 있다
하루 800세대가 이용 가능한 세탁구호 차량.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를 각각 3대씩 장착하고 있다

| 초등생의 저금통부터 익명의 돈다발까지… 전국의 마음이 강원도로 향한다

전국 곳곳에서 위로의 마음을 담아 보낸 물품들도 속속 도착했다. 고성·속초·동해·인제 지역의 임시 거주시설에는 희망브리지 응급구호키트 850세트가 보급됐다. 여기에는 새 침구류와 의류를 비롯해 이재민들에게 당장 필요한 각종 생필품이 꼼꼼하게 담겼다. 

개성공단기업협회에서는 입주기업들이 만든 안전화와 양말·셔츠 등을 보내왔고, 동아쏘시오와 광동제약은 긴급 구호 의약품을 전달했다. 생활가전 기업 쿠쿠에서 전기압력밥솥 200대, 농심켈로그에서 2만 명분의 시리얼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많은 기업들이 저마다 자사에서 생산하는 물품 중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추려 구호현장으로 실어 보냈다. 실의를 달래길 바라며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보내온 다양한 먹거리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 임시거주 시설에서 만난 한 이재민은 “전국에서 보내주는 많은 물품들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보내주시는 손길도 물론 감사하지만, 그보다 이렇게 마음을 써주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희망브리지 응급구호키트. 각종 생필품부터 간단한 공구와 파스 같은 의약품까지 빼곡 담겨 있다
희망브리지 응급구호키트. 각종 생필품부터 간단한 공구와 파스 같은 의약품까지 빼곡 담겨 있다

산불 피해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보내오는 성금 행렬도 끊이질 않는다. 사고 발생 일주일 만에 이미 200억원을 돌파했을 정도. 정치권·재계·문화계·체육계·지자체 등 각계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성금을 쾌척했고, 사고 소식을 안타까워하는 국민들도 저마다 주머니를 열었다. 

9일 서울 신수동에 위치한 희망브리지 본사에는 경기도 광명의 한 초등학생이 보낸 돼지 저금통이 도착하기도 했다. 저금통에는 17만원 가량의 성금과 함께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짧은 편지가 동봉됐다. 같은 날 천진 초등학교(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 마련된 희망브리지 성금 모금센터에는 한 40대 남성이 찾아와 현금 1억원을 전달해 화제가 됐다. 이 남성은 “자신을 사업가라고 밝힌 분이 익명으로 해 달라며 성금 배달을 부탁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성금 모금을 총괄하는 최재봉 희망브리지 모금마케팅팀장은 “모금 현장에 있으면 이재민들을 걱정하는 시민들의 뜨거운 마음이 여실히 느껴진다”면서 “이재민들의 빠른 일상 복귀와 신속한 피해 복구를 위해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천진 초등학교에서 운영 중인 성금 접수처
천진 초등학교에서 운영 중인 성금 접수처

 

/사진: 더퍼스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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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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