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의 요람이 된 비운의 고택, ‘임청각’을 가다
3·1운동 100주년 특집⓵
독립운동의 요람이 된 비운의 고택, ‘임청각’을 가다
2019.04.17 14:21 by 싸나

네 이놈! 왜놈들아! 너희가 아무리 독립의 기운을 막고자 철로를 놓고 임청각을 쳐부순다 한들 우리의 독립의지가 꺾일 것 같으냐? 이 머리는 자를 수 있지만 너희에게 무릎 꿇는 종은 되지 않을 것이다

석주(石洲) 이상룡 선생의 말이다. 이상룡 선생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민족의 지도자였다. 국무령은 지금의 대통령이나 다름없다. 그의 뜻과 의지가 담겨있는 곳, 현재의 지도자들도 찾아가 도리와 신념, 선비정신을 되새기는 곳. 이곳이 바로 오늘 소개할 임청각(臨淸閣)’이다.

 

앞으론 낙동강, 뒤로는 영남산. 전형적인 배산임수 명당에 위치한 ‘임청각’
앞으론 낙동강, 뒤로는 영남산. 전형적인 배산임수 명당에 위치한 ‘임청각’

| 우리는 지키려하고, 그들은 끊으려 했던 민족의 정기

임청각(경북 안동시 법흥동 20-3)은 정신문화의 수도이자 선비의 고장으로 유명한 안동의 숨은 명소(보물 제182), ‘하회마을과는 다른 멋스러움을 뽐낸다. 안동 기차역에서 출발, 월영교와 법흥교를 잇는 호젓한 호반나들이길을 따라 20분쯤 걸으면 만날 수 있다.

 

안동의 대표 랜드마크인 ‘월영교’, 이곳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임청각에 닿을 수 있다.
안동의 대표 랜드마크인 ‘월영교’, 이곳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임청각에 닿을 수 있다.

임청각은 앞서 소개한 석주(石洲) 이상룡의 생가다. 하지만 이곳이 가진 사연은 그보다 훨씬 두텁다. 본래 이상룡의 선조였던 형조좌랑 이명이 중종 4(1519) 벼슬을 버리고 안동으로 내려와 지은 집이다. 그런데 집이 가진 기운이 심상찮다. 석주 이상룡 선생을 포함해 4대에 걸쳐, 9명의 독립운동가가 이 집에서 배출됐다. 이상룡의 처가와 사돈까지 합치면 그 수는 40명을 넘어선다. 자주 독립을 향한 민족정신의 요람인 셈이다.

 

임청각의 이모저모.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대문과 고택의 내부, 별당인 ‘군자정’과 군자정 앞의 연못
임청각의 이모저모.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대문과 고택의 내부, 별당인 ‘군자정’과 군자정 앞의 연못

공간이 담고 있는 영험한 기운에 비해 집은 단출한 편. 몇 채의 집을 슥 훑어보는 데 십 분 정도면 충분하다. 경사진 비탈면에 지어 올린 저택은 어느 방이나 따뜻한 볕이 든다. 군자정에 가만히 앉아 풍경을 바라보니, 집 바로 앞에 놓인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기차소리도 규칙적으로 들린다. 그 소리는 이 집이 가진 아픔과 상처의 소리다.

임청각이 독립운동가의 상징이자 요람으로 알려지다 보니, 일본에게는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임진왜란 때부터 임청각을 없애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이르자, 이 집의 기와 맥을 끊기 위해 집 전체를 철거하려고 했지만,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었다.

결국 일본은 다른 수를 냈다. 고택 중앙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놓은 것이다. 바로 안동과 영주를 잇는 철로였다. 이 철로는 민족의 정기를 끊겠다며 보란 듯이 임청각 중간을 관통했고, 그 과정에서 집은 반 토막 났다. 너른 마당은 사라졌고, 99칸의 대저택 중 30여 칸이 파괴되었다. 직선이 원칙인 철로의 속성도 무시한 채 두 번이나 꺾어 우회하고, 다리와 터널까지 뚫어 철로를 10km 이상 늘이면서까지 무리하게 진행한 것을 보면, 일본이 이 집을 얼마나 신경쓰고 부담스러워 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임청각의 현판은 퇴계 이황 선생의 친필이다.
임청각의 현판은 퇴계 이황 선생의 친필이다.

|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우뚝 서다

이 고택은 1910년 이후로 주인을 잃었다. 종손이었던 이상룡 선생은 나라가 없어졌는데, 조상만 지킬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조상의 위패를 모두 뒷산에 파묻었다. 그리고는 노비문서를 불태우는 등 모든 가산을 처분한 후, 남아있는 식솔 50여 가구를 이끌고 만주로 건너가 여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의로움과 생명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없을 때는 의로움을 택하라고 했던 그의 말을 온 몸으로 실천한 삶이다.

고결한 정신의 상징과도 같았던 임청각은 오늘날 많은 지도자들과 대중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특히 지난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임청각을 꼽으면서 단숨에 그 의미가 널리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청각에서 사색하며 대통령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청각에서 사색하며 대통령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지난 22일에는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3·1운동 10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임청각을 찾기도 했다. 정 청장은 임청각의 뜻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은 독립운동에 생을 바친 분들의 뜻을 받드는 것이라며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를 독립운동의 원년으로 삼아, 이곳을 상징적인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도록 노력할 것이라 말했다. 실제로 올해부터 7년간(2019~2025) 임청각 일대를 일제 강점기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정비하는 임청각 복원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 박산하

 

*본 콘텐츠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공식블로그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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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나

시시詩詩한 글을 쓰고 싶은 새벽형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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