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정근 민주당 서초갑 지역위원장 "서초 진보는 '홍길동?'... 이제는 변화할 때"
[인터뷰] 이정근 민주당 서초갑 지역위원장 "서초 진보는 '홍길동?'... 이제는 변화할 때"
2019.06.07 15:37 by 유선이
사진=이정근 더불어민주당 서초갑 지역위원장

 

"지난 2012년에 서초구에서 선거운동을 할 때 일이었어요. 당시 당의 상징색이었던 노란색 머플러를 하고 선거 독려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에 몇몇 분들이 주변 눈치를 보며 찾아와 귓속말로 '저도 그쪽을 지지해요', '저도 문재인을 좋아해요'라고 하고 가셨어요.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왜 서초구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나 선호를 앞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인지. 정말 이곳에서는 민주당이 '호부호형(呼父呼兄)' 못하는 홍길동이구나 싶었죠"

 

서초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야당 구청장이 선출된 곳이다. 작년 지방선거 당시 이른바 '대세'에 가까웠던 민주당의 정당지지도에도 불구하고 서초만큼은 굳건했다. 서울 보수의 메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압도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치 지도를 바꾸기 위해 발벗고 뛰는 사람이 있다. 이정근 더불어민주당 서초갑 지역위원장이 그 주인공. 지난 총선 출마를 시작으로 지난해 지방선거까지 도전만 2회차다. 진보를 향한 냉랭한 지역민심 속에서 끊임없이 계란을 바위에 던지고 있는 이 위원장을 만나봤다.

 

◆"방송작가에서 정계로... DJ와의 인연"

이 위원장의 이력을 보면 언뜻 특이한 구석이 있다. 그의 프로필 초반부에는 방송작가가 걸려있다. 물론 언론과 정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 방송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됐는지 물어봤다.

"97년도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출마했을 당시였는데, 한 선배가 캠프에서 일좀 도와줄 수 없느냐고 물었어요. 평소에 선생님처럼 생각하던 분이었고, 별다른 사심 없이 돕겠다고 했어요. 방송작가 출신이다보니 주로 연설문 보조 역할을 맡았죠"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상대후보는 이회창 전 총리. 이 위원장은 연설문을 기획하며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떤 부분을 강조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때 군대에서 병사 사망사고가 발생해 큰 논란이 일었었어요. 방송작가의 감이 발휘됐는데 이거다 싶었죠. 당사자 어머니를 무조건 찾아가서 김 전 대통령 후보 지지연설을 해달라고 설득했어요.  다행히 승낙해주셨는데, 내용은 이랬어요. '군대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 아들 잃은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런 요지의 연설을 했죠. 반응이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이 연설을 통해 대통령 당선에 건물 벽돌 한 장 정도는 기여를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자부심이 좀 있네요"

◆"정치는 내 운명"

이 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치에 입문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서였다고 했다.

"2011년에 처음 문 대통령을 만났어요. 글쎄 어떤 점이 좋았다라고 하기가 아직도 어려워요. 그냥 사람 자체가 좋았거든요.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캠프에 합류하게 됐어요"

앞서 김 전 대통령 캠프에 몸담았던 일이 봉사자의 입장이었다면 문 대통령의 캠프는 달랐다. 이 위원장이 주도해서 일을 벌였다.

"시민캠프 쪽 일을 주로 했어요. 여성가족을 총괄하는 쪽의 대표를 맡았는데, 문 대통령이 임산부들과 만나 육아정책이나 출산정책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기획을 주로 진행했어요. 이때 경험이 후에 출마하는데 참 많이 도움이 됐죠"

선배따라 정치에 발을 들였는데, 이제는 캠프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까지 올라오게 된 것. 이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으나, 이 위원장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치가 참 운명적인 부분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후에 전략공천으로 우여곡절 끝에 출마를 하게 됐는데, 정말 순진하게 접근했어요. 서초의 얼어붙은 민심이 안타까웠고, 누구가 됐든 민주당을 지지하는 서초주민이라면 그런 말을 눈치 보면서 하지 않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제가 그런 분들의 대변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서초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그는 순수했던만큼 열정적으로 뛰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만큼 따라오지 않았다. 첫 출마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셨고, 이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분전했으나 석패했다.

"12년 대선 때 봉사자로 선거운동하면서 투명인간 취급받았던 이후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그저 민주당을 지지한다 말 할 수 있는 대변인이 돼야겠다고 생각하며 벌인 일이었거든요. 당연히 마음은 아팠고,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기분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저보고 떠나지 말고 지역에 남아달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지역에서 지역위원장이 선거 이후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경우가 별로 없거든요"

이 위원장은 서초가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지난 지방선거때 제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에요. 서울에서 유일하게 진보가 당선되지 않은 지자체가 여기뿐이었으니까요. 제가 41.06%로 2위를 차지했는데 당선자가 52.38%로 10%남짓한 차이가 났어요. 그러나 저는 계속 공격하는 입장이었거든요. 한번도 유리하게 시작해 본 적이 없어요. 첫 총선때 무참히 패배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는 선거였다고 생각해요"

변화의 물결은 작은 부분에서부터 찾아온다. 이 위원장은 지난 2016년부터 서초를 떠나지 않고 주민들의 삶으로 스며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는 인터뷰 당일 아침, 어르신들을 위한 배식 봉사를 마치고 인터뷰에 응했다.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 선거를 두번이나 치르면서 저는 서초의 가능성을 봤다고 생각해요. 다른 부분보다도 저를 알아봐주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면서 먼저 인사를 건네는 분들이 늘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기획의 여왕"

요새 이 위원장이 신경써서 준비하는 정책이 하나 있다. 청년들을 위한 정책 제언 플랫폼 '다찍GoUp'이 바로 그것이다. SNS에 익숙한 청년세대들을 위한 앱으로 서초구에 대한 제언이나 의견 찬반 토론 등을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론칭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안정화가 되고 나면 누구나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배포할 계획이라고 이 위원장은 설명했다.

"청년들을 위해 현수막을 걸고, 청년들에게 접근하기 좋게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자기의 목소리, 불만, 의견 등을 올리고 서로 소통하게끔 하는 것이죠. 면대면 커뮤니케이션보다는 SNS 소통방식에 익숙한 청년들을 위해서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이에요"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플랫폼 개발이라는 것이 사실 간단한 부분이 아니다. 기자가 좋은 기획인 것 같다고 말하자 이 위원장은 "다른 것은 몰라도 기획 하나는 제가 자신있다"고 받았다.

"하나 자랑하자면, 처음으로 지역위원장 된 후에 제가 기획했던 것 중에 '파라솔 당사'라는 것이 있어요. 처음부터 제 기획은 아니지만, 골목당사라고 다른 분이 한 것을 제가 좀 변형해서 만들었어요. 골목이 서초랑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파라솔로 고쳤는데요. 파라솔은 비바람으로부터 가려주는 기능도 있고, 또 어감이 예뻐서요. 추미애 의원이 이것을 좋게 봐서 당 전체로 확대시키기도 했어요"

◆"지키지 못할 약속 이제 그만... 진짜 서초 살리기 고민해봐야"

이 위원장은 지역 이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해야하기에, 확실해진 부분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

"지역 숙원 사업이 있다면 경부고속도로 지화화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요. 쉽게 얘기하면 안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들 선거에 임하시는 분들은 이것을 하겠다고 말씀하세요. 단순히 지역구 의원이나 지자체 차원의 주장만으로 진행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저는 이런 문제에 대해 쉽게 말하는 것이야말로 주민들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해요"

◆"이데올로기를 넘어 지역민을 향해"

이 위원장은 이제 정치 지형도가 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좌냐 우냐는 사실 크게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는 진형을 넘어 진실로 지역민들을 위해 일해줄 수 있고 이익이 되는 사람을 지역민들이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념이나 환경 등은 어느 정도 세습되는 부분이 있기는 해요. 가정에서 받은 교육이나 자란 환경 등이 당연히 정치적 성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요. 그러나 이것을 뛰어넘는 것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진정 지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일해줄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것을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일어서는 찰나 이 위원장에게 주민 한 분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혹시 저번에 구청장 나오셨던..."

"네 안녕하세요. 이정근입니다"

이 위원장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조금씩 서초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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