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의 설리번 선생님, 발음교정 서비스 ‘바름’을 만들다. ②
청각장애인의 설리번 선생님, 발음교정 서비스 ‘바름’을 만들다. ②
2019.08.20 16:34 by 이기창

※ 전편 요약

불의의 질환으로 청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 전성국 대표. 부단한 노력으로 소통을 회복하려 했지만, 면접 도중 ‘발음’의 중요성을 깨닫고,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한 발음 교정 서비스를 도모하게 되는데…

2018년의 봄, 잘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둘 정도로 새로운 음성인식 기술에 대한 갈증이 컸던  전성국 대표는 이후 나름의 개발진을 꾸리고 수개월의 연구 끝에 음성인식엔진 ‘바름’을 자체 개발했다. 바름은 기존의 엔진과 조금 다르다. 기존의 것은 다소 어눌한 발음으로 말해도 AI가 인지하기만 하면, 이를 잘 발음한 것으로 인식하여 대답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어떤 발음이 틀렸는지는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름 서비스는 틀린 발음을 교정 없이 그대로를 화면에 띄워 보여주고, 이어 모범 답안도 함께 제시해준다. 사용자는 자신의 말이 정확하고 올바른 발음과 어떻게 틀렸는지를 확인하고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서 자신의 말하기를 개선해 나갈 수 있다.

 

'바름'의 서비스 화면
'바름'의 앱 내 화면. 자신의 발음을 눈으로 볼 수 있다.

│테스트가 남긴 희망, 그리고 남은 과제
정식 서비스를 출시하기 한 달 전, 전성국 대표는 청각장애인 30명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아무런 연습 없이 진행된 1차 검사 결과 청각장애인들의 평균적인 발음 정확도는 20% 정도였다.

테스트를 통해 확인된 문제는 청각장애인들이 단어나 문장의 정확한 발음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한 글자의 발음은 정해져 있어서 연습할 수 있지만,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면서 발음이 바뀌는 한글의 특성을 생각하면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먹’의 발음이 ‘먹다[먹따]’에서는 [먹]으로 ‘먹어[머거]’에서는 [머]로 ‘먹니[멍니]’에서는 [멍]으로 바뀌는 데, 이를 제대로 듣지 못했던 청각장애인들은 이런 변화를 익히기가 어려웠다. 

“한 글자만 발음할 때는 완벽해요. 근데 문장이 되어버리는 순간 연음법칙에 의해서 글로 적은 문장과 다르게 돼버려요. 대부분은 들리는 대로 말을 하잖아요? 청각장애인은 안 들리기 때문에 올바른 발음이 뭔지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청각장애인은 보이는 대로 말을 해요. 예를 들면 ‘밥’, ‘맛’, ‘있’, ‘게’, ‘먹’, ‘었’, ‘어’ 같이. 이걸 글자 하나씩 빨리 말하다 보니 호흡이 딸리고 발음이 부정확해지는 거죠.”(전성국 대표)

 

조합에 따라 발음이 바뀌는 한글의 묘미
조합에 따라 발음이 바뀌는 한글의 묘미

그래서 제대로 된 발음을 보여주고 나서 2차 검사를 진행했다. 예를 들면 ‘밥 맛있게 먹었어?’와 함께 ‘[밤 마시께 머거써?]’를 보여준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발음 정확도는 50%로 뛰었고 ‘바름’을 통해 반복학습한 뒤 진행한 3차 검사 결과, 80%가 넘는 발음 정확도를 기록할 수 있었다.

놀라운 성과였다. 하지만 바름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청각장애인들 각자가 발음에 있어서 세부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전 대표는 오프라인 언어치료 시장에도 진출하려 한다. 온‧오프라인 시장에서 얻은 데이터를 통해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언어치료사가 사용할 수 있는 발음 분석 관리자를 만들 계획이다.

“오래된 습관 때문에 구강구조가 굳어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라’를 발음할 때는 혓바닥이 잘 휘어져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되는 사람은 ‘라’발음이 힘들죠. 목젖을 닫고 여는 운동이 잘 안되시는 분들은 ‘가’, ‘카’발음을 못하고요. 이런 분들을 위해서 오프라인 언어치료 쪽으로도 진출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전성국 대표)

│장애인도 자립할 수 있는 바른 세상을 꿈꾸다.
‘바름’을 통해 전 대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는 이 서비스를 만든 이유와 최종 꿈을 ‘성장’과 ‘도전’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전 대표는 “지금까지 출시된 장애 관련 서비스는 단순히 그들을 돕는 것이었지만, 이 서비스는 본인이 발전하게끔 하여 훨씬 더 많이 도전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름'은 전 대표가 꿈꾸는 세상을 위한 첫 걸음이다.
'바름'은 전 대표가 꿈꾸는 세상을 위한 첫 걸음이다. (사진: 디캠프)

장애인의 자립을 위해서 나아가겠다는 그는 ‘바름’ 서비스뿐만 아니라 무료강연을 통해서도 장애인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에너지를 공유할 생각이다. 추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사를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장애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문제에는 100% 해결책이 있지만, 사실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제게 청각장애는 문제가 아닌 사실이에요. 근데 이 문제와 사실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작은 문제부터 해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이 용기를 가지고 작은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시면 좋겠어요. 저도 계속 무료강연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습니다.”(전성국 대표)

그의 마지막 말에서 “당신의 약점을 직면하고 인정하라. 하지만 그것이 당신을 지배하게 하지말라”라는 헬렌 켈러의 말이 떠올랐다. 바름을 통해 청각장애인들도 성장하고 발전하는 삶을 살기를 희망하는 전성국 대표. 그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또렷한 발음으로 널리 퍼지길 기대해본다.

 

/사진: 딕션

필자소개
이기창

비즈니스 전문 블로그 Wiz&biz를 운영중이며, 스타트업 소식 및 칼럼을 전문으로 하는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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