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이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달인 114’
정직한 이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달인 114’
2019.09.19 13:34 by 이창희

관성은 두 얼굴을 가졌다. 무언가가 늘 일정하다는 것은 안정을 뜻하지만, 동시에 고루하고 고착화됐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대체로 후자 쪽의 부정적인 의미가 강한데,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들이 그러하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토목·건축 분야다. 과거의 낡은 방식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여전히 비리와 부실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로 인한 피해가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직접 흙과 벽돌을 나르고 건물을 짓거나 철거하는 이들이 제때에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일이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토건 분야를 오랜 시간 지배해 온 관성의 힘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스타트업의 등장은 그래서 반갑다. 그 주인공은 중장비 중개 플랫폼 ‘달인 114’다.

 

권오명 달인114 대표.
권오명 달인114 대표.

 

┃장난감 아닌 ‘진짜 포크레인’ 타고 놀던 아이

포크레인(굴삭기)과 크레인, 지게차, 덤프트럭… 공사 현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들이다. 그런데 이 중장비들이 모두 건설회사 소속일까? 아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중장비를 보유한 개인사업자가 현장 업체와 계약을 맺고 움직이는 구조다. 중장비가 필요한 현장에 그 때 그 때 나타나 일을 수행하는 것으로, 일종의 프리랜서로 봐도 무방하다.

‘달인 114’는 현장과 중장비를 연결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스타트업이다. 이 플랫폼을 운영하는 CEO는 올해 스물다섯의 권오명 대표. 그는 어떻게 약관의 나이에 토건 현장을 무대삼아 비즈니스를 펼치게 됐을까.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난 권 대표는 어려서부터 중장비들과 친숙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갖가지 중장비를 다루는 아버지 덕분이었다. 어린 그의 눈에는 커다란 고철 덩어리를 조종해 흙을 파고 나르는 아버지가 퍽 멋져보였다. 멋모르고 따라다니며 덤프트럭 뒤 칸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포크레인을 타고 놀며 유년기를 보냈다.

 

중장비가 있는 현장은 어릴 적 권 대표의 놀이터였다.
중장비가 있는 현장은 어릴 적 권 대표의 놀이터였다.

아버지를 동경한 그였지만, 정작 아버지는 그가 운동을 하길 원했다. 그래서 권 대표는 중학교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제대회에서 입상까지 하면서 꽤 전도유망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한 번에 수백만 원이 들어가는 대회와 시합은 어느 샌가부터 경제적으로 집안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의 힘든 상황을 모르지 않았던 그는 고교 2학년 때 태권도부를 그만두고 학교도 옮겼다.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그는 미련 없이 태권도를 포기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 대학 입시까지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서울 소재의 대학을 목표로 삼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이었다.

‘운동이든 공부든, 어차피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한 것 아닌가?’

고민 끝에 얻은 결론. 운동을 포기할 때처럼 미련 없이 입시 준비를 접었다. 그리고 곧바로 비즈니스를 찾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온라인 콘텐츠 제작이었다. 2011년 당시 가장 ‘핫’하게 떠오르던 SNS인 페이스북을 주목했다. 게임, 얼짱, 맛집, 소개팅 등을 주제로 페이지를 개설하고 콘텐츠를 만들었다. 남는 건 시간이었기에 디자인부터 독학으로 배우면서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연구했다.

당시만 해도 볼만한 ‘거리’가 많지 않았던 페이스북에서 그가 만든 다양한 콘텐츠들은 금세 인기를 끌었다. ‘좋아요’와 ‘팔로워’가 날개 돋친 듯 빠르게 늘어갔고, 그가 관리하는 페이지는 어느새 13개까지 늘어났다. 광고와 홍보를 목적으로 한 클라이언트들이 접근해왔고, 페이지 거래 제안도 받았다. 돈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해 겨울 학교를 자퇴했다.

 

페이스북에서 그의 콘텐츠는 큰 인기를 끌었다.
페이스북에서 그의 콘텐츠는 큰 인기를 끌었다.

┃업체와 중장비가 만나는 광장을 만들다

또래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 권 대표는 꽤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아버지께 덤프트럭을 새로 사드릴 수 있었고, 오랜 꿈이었던 가족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페이스북을 둘러싼 SNS 환경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트렌드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했고, 그의 콘텐츠 제작 역시 한계를 드러냈다. 대중들은 유용하고 유익한 콘텐츠보단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것들을 더 선호했다.

회의를 느낀 그는 곧바로 플랫폼을 갈아탔다. 네이버 블로그로 옮겨가 콘텐츠를 만들었고, 블로그 홍보 대행 업무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떠올린 것이 중장비 대여 홍보였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일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구상했다. 기대감도 크지 않았다.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이미 여러 중개 업체들이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외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블로그에 홍보 글을 올린 직후부터 중장비를 필요로 하는 현장의 문의가 빗발쳤다. 중개 업체를 거치지 않고 중장비 사업자와 직접 거래하고자 하는 수요가 존재했던 것. 그가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찾아냈던 순간이다.

‘업체와 중장비 사업자들이 온라인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광장을 만들면 효율적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권 대표는 다시금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해 4월부터 6개월 동안 전국을 누비며 시장조사를 벌였다. 업체와 중장비 사업자들을 두루 만났고,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올해 초 ‘달인 114’을 세상에 선보였다.

시스템은 간단하다. 건설이나 철거 현장을 맡은 공사 업체는 ‘달인 114’ 어플을 이용해 필요한 중장비를 주문할 수 있다. 그러면 먼저 ‘콜’을 잡은 중장비 사업자가 여기에 매치되고 현장에 투입된다. 회사의 수익은 배차 수수료다. 카카오택시 시스템과 매우 흡사하다.

가장 큰 호응은 현장으로부터 나왔다. 기존 중장비 사업자가 1년 동안 소화하는 일감은 평균 170건 정도. 하지만 달인 114를 이용하는 사업자들은 연 300건이 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아직 초반이고 6개월 정도의 통계지만, 분명 유의미한 수치다.

 

달인114 어플리케이션.
달인114 어플리케이션.

┃‘기울어진 공사판’을 되돌리는 그날까지

수많은 매칭이 이뤄지며, 중장비 사업자들은 소위 ‘공치는 날’을 줄일 수 있었다. 이는 분명 권 대표가 바라던 방향. 하지만 공사 업체와 중장비 사업자 간에는 여전히 갑을 관계가 뚜렷했고,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는 문제들이 존재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대금 체불 문제였다. 공사 초반에 중장비를 불러 사용해놓고 대금 지급 기한은 공사를 마친 뒤로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하게는 시공사의 부도 등으로 인해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일감이 간절한 중장비 사업자들은 어쩔 수 없이 불리한 계약을 맺기 일쑤였고, 수수료를 선지불한 상태에서 속 타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권 대표는 달인 114를 통해 배차가 이뤄지면 중장비를 사용한 날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대금 지급을 확약하도록 했다. 여기에 동의해야만 배차가 이뤄지고, 플랫폼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는 대금 지급 이후에 받았다. 중장비 사업자가 대금을 못 받으면 달인 114 역시 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구조다.

 

현장의 플레이어들이 안심하고 작업할 때 안전도는 올라간다.
현장의 플레이어들이 안심하고 작업할 때 안전도는 올라간다.

다행히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체불 사례는 없었다. 잘못된 관행이 바뀌고 있다는 소문이  안 퍼질리 없다. 등록을 원하는 중장비 사업자들이 크게 늘면서 올해 8월 기준으로 전국 7000명을 돌파했다.

권 대표의 향후 목표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그저 더 많은 이들이 달인 114를 이용하게끔 하는 것이다. 더 많은 이들이 이용한다는 건, 더 많은 중장비 사업자들이 크고 작은 경제적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현장에서 직접 뛰는 ‘플레이어’들은 대금 지급 걱정 없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원활하고 안전한 공사가 가능하니까요. 사실 다 떠나서, 정당한 대가를 제때 받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요?”(권오명 대표)

 

/사진: 달인114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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