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 혹은 탄식…대기업과 손잡은 스타트업의 운명
탄력 혹은 탄식…대기업과 손잡은 스타트업의 운명
2019.10.22 21:26 by 이창희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콜라보레이션’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이다. 대기업에게는 사업 확장이나 신산업 개발에 있어 스타트업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적잖은 활용가치가 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초기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할 투자를 유치할 수 있고, 이를 성장 동력으로 삼아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경제 생태계의 새로운 ‘윈윈’ 모델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모든 협력 관계가 매끄럽고 아름답게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예상했던 시너지 효과가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 이하거나, 양측의 동상이몽, 한 쪽의 변심이나 잘못된 행위 등으로 인해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윈윈’의 가능성만큼 ‘실패’의 위험도 큰 것이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업.
‘윈윈’의 가능성만큼 ‘실패’의 위험도 큰 것이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업.

┃투자·육성·협력…‘We go together’

주류업체 하이트진로는 최근 국내 영리기업 최초로 법인형 엔젤투자자로 선정됐다. 기업에 선 투자 후 엔젤투자매칭펀드를 신청하면 한국엔젤투자협회 및 한국벤처투자의 심의를 거쳐 투자 금액의 1~2배수의 추가 투자금을 기업이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창업 초기 기업은 추가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투자자는 엔젤투자매칭펀드 투자 지분의 일부를 인수할 수 있는 콜옵션을 부여 받게 된다.

이를 위해 하이트진로는 여러 기관들과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한편 자체적인 발굴 프로그램도 개발 중이다. 초기 투자 이후에도 모니터링을 통해 육성에 필요한 지원과 후속 투자 노력도 지속할 계획이다.

하이트진로는 꾸준히 스타트업 육성 및 지원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지난해 창투사인 더벤처스와 투자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서초동 본사에 공유오피스를 마련해 다양한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SKT는 22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혁신기술을 보유한 11개 스타트업과 함께 ‘임팩트업스(Impactups)’를 출범했다. 긍정적 사회변화를 뜻하는 ‘소셜임팩트’를 추구한다는 목적이다.

여기에 함께 하는 스타트업은 임팩트 투자자 및 벤처캐피탈(VC) 투자유치 지원, MWC 스타트업 기술홍보관 전시, SK 관계사와 비즈니스 협업 기회 등을 부여받게 된다. SKT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기술 혁신성과 사회문제 해결 잠재력을 가진 임팩트업스 기업들을 발굴하고 협력할 계획이다.

 

‘LG 스타트업 테크페어 2019’(사진: LG사이언스파크)
‘LG 스타트업 테크페어 2019’(사진: LG사이언스파크)

LG는 지난달 서울 마곡 싸이언스파크에서 글로벌 유망 스타트업 40개사가 참여하는 ‘LG 스타트업 테크페어 2019’를 개최했다.

국내외 스타트업이 한 자리에 모여 AI/빅데이터, AR/VR, 자율주행, 로봇, 소재/부품, 바이오/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시연했다. LG는 참가 업체 중 협업 가능한 업체를 대상으로 공동 연구·개발과 사업화 지원, LG사이언스파크 내 연구 공간 ‘오픈랩(Open Lab)’ 입주, 글로벌 홍보 등을 지원한다.

이처럼 대기업과의 만남은 스타트업에게 흔하지 않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강재상 알렉스넷 대표는 "엑시트 방법 하나가 추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옵션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라며 "대기업이 가진 인프라와 노하우를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는 점도 전략적 측면에서 기대 요소"라고 진단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쓰러지는 스타트업들

지난해 한 스타트업은 소비자와 제조업체를 연결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출시했다. 대기업이 주관하는 데모데이에 참가해 입상했고, 그 대기업의 자회사로부터 투자를 약속받았다. 이들은 크게 고무된 나머지 그간 오가던 투자자들과의 협상을 모두 중단했다. 이 투자 한 건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투자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끝내 결렬되고 말았다. 꼼꼼하게 따져보니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대기업의 최종 판단이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핵심 기술과 영업 자료가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NDA(기밀유지협약서) 작성이 필수였지만 이들은 쉽사리 요구하지 못했다. 상대는 대기업이었으니까. 대기업 역시 ‘갑’의 입장에서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결국 철썩 같이 믿었던 투자가 무산되면서 이 스타트업은 폐업했다.

 

전부나 다름없는 기술을 뺏긴 스타트업은 생존을 고민하게 된다.
전부나 다름없는 기술을 뺏긴 스타트업은 생존을 고민하게 된다.

또 다른 스타트업은 행사를 기획하는 서비스를 무기로 시장에 진출했다. 소비자들의 호응이 있었고, 초기 엔젤투자를 받아 견실하게 성장 중이었다.

그러던 중 대기업 담당자가 찾아와 사업 제휴를 제안해 미팅을 갖게 됐다. 행사 주관과 협찬 등을 놓고 몇 차례 조율을 진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제휴는 없던 일이 됐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스타트업이 계획하고 있던 행사와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똑같은 행사가 개최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대기업이 협상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악용해 자체 행사를 기획한 것이다. 이들은 고심 끝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에 돌입했지만 패소했다.

 

┃지원만큼 중요한 건 ‘보호’ 그리고 ‘안전장치’

위와 같은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앞으로는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외치면서 뒤로는 기술 탈취와 갑질을 일삼는 대기업들은 상당히 많다. 물론 악성 스타트업이 부풀린 아이디어와 허위 실적으로 투자를 유치해 대기업이 투자금을 날리는 사례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드문 경우다.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스타트업 스스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근 대기업과 투자 협상을 진행 중인 한 스타트업 대표는 “NDA를 꺼리는 대기업이 종종 있다”며 “투자를 포기할 각오를 하더라도 꼭 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허법인 인벤싱크의 홍지훈 변리사는 “힘이 없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자체 기술을 지킬 수 있는 건 사실상 특허 뿐”이라며 “특허권과 상표권은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윗의 용기를 기대하기 전에, 골리앗과 맞설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게 정의다.
다윗의 용기를 기대하기 전에, 골리앗과 맞설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게 정의다.

그러나 대기업과 비교해 기본적인 ‘체급’에서 밀리는 스타트업의 ‘셀프 방어’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본질적인 제도와 정책이 보완되지 않으면 위와 같은 피해는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만난 한 스타트업 대표는 “대기업과 각을 세운다는 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며 “기술 유출에 대한 사전 방지와 피해 구제를 정부 차원에서 고민하고 입법화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고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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