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동행, ‘학교법인일송학원’의 48년史_③
까맣게 타들어간 마음까지 치료해주고 싶기에…
나눔과 동행, ‘학교법인일송학원’의 48년史_③
2020.01.02 17:50 by 이지섭

“생지옥 같은 화상 치료를 누군가는 해야만 했다. 아무도 안 하니까. 우리라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윤대원 학교법인일송학원 이사장)

의료계에서 화상 환자는 소위 ‘3D(Dirty·Difficult·Dangerous)’로 불린다. 화상은 치사율도 높은 데다 치료하기 어렵고 까다롭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 때문에 화상은 종합병원에서도 기피하는 병종 중 하나로 꼽힌다. 지금은 명실상부 중증 화상 치료의 메카로 자리 잡은 한강성심병원이지만, 그 과정에는 모두가 외면해왔던 분야에 매진해왔던 ‘학교법인일송학원’의 철학이 담겨 있다.

 

한강성심병원 화상치료센터.
한강성심병원 화상치료센터.

| 국내 최초 화상치료센터 개설

한강성심병원은 지난 1986년 3월 화상치료센터를 개원하며 국내 최초 화상 전문 치료기관으로 발돋움했다. 센터는 피부은행, 치료실, 중환자실, 미생물실, 재활의학실, 격리실 등을 갖추며 화상 환자를 위한 시설을 마련했다. 실리콘 베드, 워터 탱크, 특수 냉장고 등 첨단 의료 장비도 함께 마련했다. 화상 환자들을 위한 과감한 투자였다.

화상치료센터의 설립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었다. 한강성심병원은 설립 초기부터 외과 산하에 화상치료실을 설치해 운영해왔던 경험이 있었다. 이 화상치료실에서 쌓아온 15년간의 경험이 화상치료센터의 주춧돌이 됐다.

화상치료센터는 설립된 지 한 달 여 만에 세간의 큰 관심을 끌게 됐다. 시위 도중 분신자살을 시도했던 대학생 2명의 치료를 맡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병원 앞에는 다수의 경찰과 학생 시위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일촉즉발의 긴장된 상황도 연출됐다. 경찰이 실시했던 출입통제 탓에 외래 환자는 물론이고 입원 환자까지 줄어들었다. 불경기로 인해 병원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기에 병원의 타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은 계속됐다. ‘의술(醫術)’보다는 ‘인술(仁術)’, ‘명의(名醫)’보다는 ‘덕의(德醫)’라는 한강성심병원의 문화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강성심병원은 화상 치료에 유명한 병원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KAL기 801편의 추락 사고로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된 화상환자.
KAL기 801편의 추락 사고로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된 화상환자.

| ‘화상치료는 한강성심병원!’ 공식으로 자리 잡은 명성

한강성심병원 화상센터는 1990년대에 들어서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다수의 언론을 통해 알려진 화상 치료 전문 병원의 명성 덕에 전국에서 밀려오는 화상 환자들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갈 곳을 잃었던 화상환자들에게 화상센터는 ‘최후의 보루’였다. 공장에서 폭발 사고를 당한 노동자, 분신자살을 기도해 55%의 중화상을 입은 여학생을 비롯해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들이 화상센터로 몰려왔다.

한 번은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종손녀가 화상치료를 위해 화상센터를 방문한 적도 있었다. 현대그룹이 당시 서울중앙병원(현 서울아산병원)을 운영하고 있었음에도 화상치료를 위해 한강성심병원을 찾은 것은, 한강성심병원이 화상치료만큼은 타 병원에서 따라올 수 없는 시설과 경험을 보유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강성심병원은 몰려드는 환자들을 위해 1997년 7월 중환자 병상을 두 배로 확충하는 등 시설 개편에 몰두했다. 또 죽은 사람의 피부를 특수 처리한 ‘알로덤’과 인조합성 피부인 ‘인테그라’ 등을 중증화상환자에 이식하는 수술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낌없는 투자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한강성심병원 화상센터는 국내 최고의 생존율을 자랑하는 의료기관으로 자리 잡게 됐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재활 의지를 북돋는 화상환자모임 한울회.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재활 의지를 북돋는 화상환자모임 한울회.

| 상처 입은 마음까지 보듬고…화상환자 후원 총력

한강성심병원의 화상치료는 비단 신체적 손상의 치유에 그치지 않았다. 화상환자들의 상담 치료와 더불어 퇴원 이후의 사회 복귀를 위한 지원도 함께 이어졌다. 화상 환자들에게 마음 속 깊숙이 남은 화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노력이었다.

‘한울회’는 이를 위해 결성된 화상환자들의 자조 모임이다. 1994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한울회’는 매달 한 차례씩 화상환자들끼리 모임을 갖고 상담 활동과 정보 교환을 진행하며 서로를 응원했다. 한강성심병원은 ‘한울회’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화상환자들의 사회 재기를 기도했다.

또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받은 화상 절단 환자들로 이뤄진 재활 모임 ‘디딤돌’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의 화상환자들을 돕기 위한 후원 행사를 진행했다. 화상치료는 치료가 매우 까다로운 만큼 치료비 역시 엄청나게 소요된다. 경제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화상환자의 경우 치료비를 이유로 치료나 재활을 포기하는 경우도 상당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강성심병원과 ‘디딤돌’은 ‘화상환자 후원의 밤’을 매년 개최하고, 모인 후원금을 통해 환자들의 재활을 지원해왔다. 이후 한강성심병원은 2003년 11월 비영리단체인 ‘화상환자후원회’를 설립하는 등 지속적인 후원활동을 펼쳐왔다.

 

2011년 인도네시아 빤띠라삐병원에서 화상환자를 치료 중인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의료진.
2011년 인도네시아 빤띠라삐병원에서 화상환자를 치료 중인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의료진.

| 화상환자 찾아 지구 3바퀴… 세계로 나간 ‘한림화상재단’

‘화상환자후원회’의 화상환자 지원 사업과 활동이 탄력을 받으면서 2008년 5월, 독립된 사회복지법인 ‘한림화상재단’이 출범하게 됐다. 재단의 초대 이사장은 학교법인일송학원의 윤대원 이사장이 맡았다. 한강성심병원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화상환자후원회’가 더욱 체계적이고 발전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재단을 통해 모인 후원금은 중증 화상으로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재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쓰이게 됐다. “어린이 환자들에게 새 희망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어린이 환자들을 위한 활발한 지원 활동이 이어졌다.

‘한림화상재단’의 활동은 국내에 그치지 않고 세계로 무대를 넓혀갔다. 후원회 시절에 물꼬를 텄던 국제 교류는 재단을 통해 꽃을 피웠다. ‘2008 아시아 화상캠프’ 참가를 시작으로 다수의 국제 화상캠프와 교류하며 어린이 환자들의 꿈을 키워나갔다.

2009년부터는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현지에 의료진을 파견하는 의료지원 사업도 활발하게 전개됐다. 현지 의료 기술의 한계와 장비 낙후로 인해 치료 기회를 얻지 못하는 저소득층 아동 화상환자를 위한 일이었다. 또 ‘한림화상재단’은 해외의 일부 중증 화상환자들을 국내로 초청해 무료 수술을 진행하고, 현지 의료진을 초청해 연수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현재 ‘한림화상재단’을 통해 무료진료를 받은 해외 화상환자 수는 1100명을 돌파했다.  화상 의료진들이 의료지원을 위해 세계를 넘나들었던 이동거리는 약 12만8603km로 지구 3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다.

“의료 지원 활동은 물질로 생각하면 못합니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뚜렷해야 지속할 수 있죠. 앞으로도 훨씬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모두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해나갈 계획입니다."(윤대원 이사장)

 

/사진: 학교법인일송학원

 

필자소개
이지섭

배우며 쓰고 쓰면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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