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업농가의 깊은 시름, 하지만 ‘로봇’이 출동한다면 어떨까?
산양산삼 로봇파종기 자체개발한 ‘심바이오틱’
임업농가의 깊은 시름, 하지만 ‘로봇’이 출동한다면 어떨까?
2020.04.15 13:07 by 최태욱

한국임업진흥원은 중기부 예비창업패키지 특화분야 주관기관으로 지난해 처음으로 ‘스마트포레스트’ 분야 예비창업자 인큐베이팅 지원에 나섰다. 이를 통해 스마트팜부터 자동 방제 드론, 목재 유통플랫폼, 인공지능 로봇파종기까지 다양한 ‘스마트포레스트’ 창업기업이 탄생했다. 본 시리즈는 산림과 4차 산업혁명을 결합해 창업에 성공한 혁신가들의 이야기다.

 “산양산삼(장뇌삼)을 재배하는 농가의 평균 경작면적이 축구장 3개 반 정도 되요. 보통 4인 1조로 씨를 뿌리는데, 이 정도 면적이면 100일은 족히 걸리죠. 그야말로 고난의 100일이에요. 산비탈에서 구르고 넘어지고, 산불이나 산짐승 같은 위해요소에도 무방비로 노출되죠. 그나마 요새는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요. 이 모든 걸… 로봇이 해낸다고 생각해보세요.”

김보영(35) 심바이오틱 대표의 한 마디는 이 회사의 모든 비전을 압축하고 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한 땀 한 땀 준비한 세월이 어느덧 7년. 오붓한 신혼생활이나 내 집 마련의 꿈같은 평범한 행복을 모두 녹여 넣어가며 버텨 온 7년이다. 그리고 이제 모든 채비가 끝났다. ‘농업회사법인 심바이오틱 주식회사’(이하 심바이오틱)이 국내 농업 테크 분야에 야심찬 출사표를 던진다.

 

ICT와 IoT 기반의 산양산삼 및 산나물 인공지능 로봇파종기 개발로 임농업의 혁신을 꾀하는 심바이오틱
ICT와 IoT 기반의 산양산삼 및 산나물 인공지능 로봇파종기 개발로 임농업의 혁신을 꾀하는 심바이오틱

| ‘발명가’의 후손들, 농업 혁신에 신혼을 바치다  
지난 2012년, 국제결혼을 통해 이탈리아 농가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한 김보영 대표는 이탈리아의 농업 환경을 직접 겪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 잘 짜인 시스템 하에서, 마을 전체가 다 함께 협력하며 즐겁게 영농활동을 영위해 가는 모습이 우리네 현실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김 대표에게 우리 농촌은 노인들에게 덩그러니 남겨진 청춘 불모지이자 효율성, 생산성, 삶의 질이 모두 떨어지는 비운의 땅이었다. 그런 안타까움은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가 바꿔보자”는 의욕으로 변했다. 배우자이자 이탈리아에서 농축산테크놀로지 및 농기계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토스케티 지안 마리아(29)씨(이하 토스케티, 현 심바이오틱 CTO)는 가장 든든한 동료이자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두 사람은 특이한 공통점이 있었다. 김 대표의 할아버지는 대전 지역에서 유명한 발명가였고, 외삼촌 역시 녹즙기를 직접 개발해 판매했을 정도로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데 조예가 깊었다. 토스케티 CTO 역시 비슷한 가정환경. 건축학과 교수였던 아버지가 가진 기계 관련 특허만 수십 개에 달한다. 김보영 대표가 “이탈리아 시댁을 방문해보니, 지하실 전체가 온갖 공구와 설비가 가득한 공장으로 꾸며져 있더라”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발명가의 피를 물려받은 두 사람이 역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영역이 바로 ‘로보틱스(Robotics, 로봇을 설계‧제조‧응용하는 일)’였다. 농업에 로봇을 접목해보자는 방향성이 세워지자 적용 분야도 한껏 좁혀졌다. 가장 필요했고 그만큼 도전 정신이 불타는 곳. ‘임산업’ 분야였다.

“국내에 약 8만 농가가 임업에 종사하는데 평균 연령이 67세에요. 우리나라 산촌 466개 중 78.1%가 인구 소멸 고위험 지역이란 통계도 있죠. 생산성을 극대화시켜주는 로봇이라면 가장 필요한 곳은 이쪽이라고 생각했어요. 경사진 산을 무대로 하는 임업에서 통한다면 농업도 통할거란 확신도 있었고요.”(김보영 대표)

 

심바이오틱의 김보영 대표(右)와 토스케티 지안 마리아 CTO
심바이오틱의 김보영 대표(右)와 토스케티 지안 마리아 CTO

| 농민으로 프리랜서로, 잠룡(潛龍)의 7년 세월
2014년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두 사람은 곧장 강원도 평창으로 귀농을 감행했다. 이는 일종의 진지 구축이었다. 농가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 작물재배의 경험과 농가가 가진 고충과 니즈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실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2년 후다. 2헥타르(약 2만m²) 정도의 밭을 구입해 감자도 심고 대파도 심었다. 구상 중인 로봇이 활약해야 하는 산림 지대의 산양산삼 재배도 조금씩 늘려가며 경험을 축적했다.

꿈은 원대했지만, 두 사람이 손에 쥔 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개략적인 아이디어와 의지가 고작. 자본도 자원도 인력도 부족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버티기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외부 도움 없이 우리 힘으로 차근차근 구현해보고 싶었으니까요. 사실 벤치마킹할 회사조차 마땅치않았던 시기이기도 했죠.”(김보영 대표)

역시 돈이 가장 큰 문제였다. 로봇을 연구‧개발‧제작한다는 건 개인의 힘만으론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가장 단순하게 생각했다. 닥치는 대로 벌어들이자는 것. 김 대표가 “로봇 이외의 것은 모두 포기한 삶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두 사람 다 공인영어강사자격증(TESOL)이 있었던 덕분에 프리랜서 영어강사가 주축이 됐고, 여기에 야간‧주말 할 것 없이 온갖 아르바이트가 더해졌다. 재주 많은 토스케티 CTO는 지게차 운전, 코딩교육, 산불진화대원으로도 활동했다. 2016년부터는 직접 짓는 농사를 통해서도 수익이 창출됐다.

이렇게 모은 자금은 오롯이 로봇 연구‧개발에 투입됐다. 강원도 원주에 연구제작실을 차려 설비와 공구를 채우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개발이 이어졌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두 사람이 직접 수행했다. 토스케티 CTO는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 디자인, 생산 등 최소 5~6업체가 함께 작업해야 하는 분량을 두 사람이 모두 소화하다보니 늘 벅차고 오래 걸렸다”면서 “조금은 더디지만 덕분에 우리의 비전을 명확히 지키는 발걸음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밭 작업을 하고 있는 김보영 대표
밭 작업을 하고 있는 김보영 대표

수많은 농가를 만나며, 자신들의 구상을 알리고 필요성을 설득하는 과정도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농가들과 돈독한 인적 네트워크를 쌓은 것은 최고의 수확이다. 어느덧 농업기술센터나 농업협동중앙회 같은 전문기관에서도 예의주시하는 기대주로 꼽힌다. 김 대표는 “주변 농가의 지인들에게서 ‘제발 빨리 좀 만들어달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면서 “내심 기분이 좋으면서도 제법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 72조 로봇 농기계 시장의 ‘기린아’를 꿈꾸며… 
한국임업진흥원의 예비창업패키지 ‘스마트포레스트’는 이 발명가 부부가 처음 문을 두드린 창업지원프로그램이다. “우리 힘으로 해보겠다”고 공언했던 두 사람이 도움의 손길을 찾았다는 것은 기술적인 준비가 모두 끝났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토스케티 CTO는 “구체적인 성과가 나왔을 때 정부지원사업을 받아 사업화를 완성한다는 계획은 이미 정해놓은 로드맵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9월부터 참여하게 된 스마트포레스트는 이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를 하나의 ‘사업’으로 완성시켜주는 마지막 퍼즐이었다. 시제품의 필드 테스트와 수익모델 구체화는 물론 특허, 인사, 노무, 세무 등 사업을 위해 중요한 요소들이 조금씩 채워지고 다듬어졌다. 김보영 대표는 “스타트업은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든 조직”이라며 “스마트포레스트의 교육과 컨설팅 등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우리가 몰랐던 기회를 포착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뒤늦게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고, 벤처기업 인증까지 받은 것은 그런 지원의 물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성과다.

 

곧 제작될 산양산삼 로봇 파종기를 단순화시킨 심바이오틱의 로고. 실제 로봇의 도면이나 모습은 기업특허 전략상 아직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곧 제작될 산양산삼 로봇 파종기를 단순화시킨 심바이오틱의 로고. 실제 로봇의 도면이나 모습은 기업특허 전략상 아직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눈물 젖은 빵도 마다하지 않았던 심바이오틱의 열정과 끈기. 그리고 이를 자양분 삼아 완성될 산양산삼 로봇 파종기. 우린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 그동안 개발했던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설계와 시장성 등의 검증을 마친 심바이오틱은 이미 제품 제작에 들어간 상태다. D-day는 5월 말일. 오는 6월 1일부터는 농장과 밭을 날래게 걸어 다니며 씨를 뿌리는 로봇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애기다.

로봇이 출시되면, 심바이오틱이 소유한 자가 농장에서 약 1년 반 정도의 필드 테스트를 거치며 오류 및 유지보수 점검, 데이터 축적의 기간을 갖게 될 예정. 김보영 대표는 “본격적인 영농철인 6월부터 현장에 투입될 수 있을 것”이라며 “원하는 농가에 한 해선, 로봇의 필드 테스트와 재배 지원서비스를 경험할 기회도 제공할 계획이며 리스나 렌탈 등의 형식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떼었던 이들의 발걸음에 이제 조금씩 속도가 붙고 있다. 임업 현장에서 효율성과 생산성을 인정받았을 때의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심바이오틱의 가장 큰 강점이다. 로봇의 각 파트 및 아이템의 확장을 통해 농업 분야 전반은 물론, 환경이나 재난구호 같은 공익 분야나 각국의 농업 특성을 살린 수출모델로서의 활용도 가능하다.

“전 세계의 농기계 시장이 72조원이 넘고, 5년 내에 4배 이상 성장할거란 통계가 있어요. 지금부터 나오는 농기계는 당연히 ICT, IoT, AI, 빅데이터 등이 결합된 형태일 게 자명하죠.사람과 로봇이 땅을 무대로 협업할 수 있는 세상, 그 곳에서 우뚝 서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김보영 대표)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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