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결정이 번복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소명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지만, 맞을때 맞더라도 우리의 억울한 점을 좀 풀고 싶습니다" -NH농협은행 관계자
NH농협은행이 주문형 시리즈펀드로 공모규제를 회피했다는 혐의를 받고있는 가운데 이례적으로 금융당국에 '억울하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정면대응에 나섰다.
지난 3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가 정례회의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펀드를 주문해 판매한 농협은행에 과징금 20억원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이는 금융감독원이 당초 책정한 100억원에 비해 5분의 1 수준이다. 과징금에 대한 최종 제재안은 오는 10일 금융위 정례회의서 확정될 예정이다. 과징금이 확정될 시 농협은행은 해당 케이스의 첫 번째 제재 사례로 남게 된다.
과징금이 줄었지만 농협은행은 증선위 제재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농협은행은 다가오는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은행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소명하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세부적으로 농협은행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파인아시아자산운용과 아람자산운용에 OEM 방식의 펀드를 주문해 이를 투자자 49명 이하인 사모펀드로 쪼개 팔아 공모펀드 규제를 회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OEM 방식의 펀드는 판매사인 증권사와 은행 등이 운용사에 직접 펀드를 주문해 운용에까지 관여하는 펀드로 자본시장법상 불법이다. 펀드투자자가 49명을 초과할 경우는 공모펀드, 펀드투자자가 49명 이하의 경우는 사모펀드다. 자본시장법의 제재를 보다 엄격하게 받는 공모펀드에 비해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는 상대적으로 온건하다.
이런 이유로 엄격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일명 '펀드 쪼개기'와 같은 편법이 활용돼왔다. 공모펀드를 사모펀드의 형태로 나누어 판매하거나 공모펀드임에도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등의 편법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금융당국은 농협은행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시리즈펀드를 출시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2018년 12월 종합검사를 통해 이같은 사례를 지적한 후 계속해서 조사와 심의 등을 펼쳐왔다.
OEM펀드 관련 법의 기초가 된 자본시장법 제119조 제8항에 따르면 '자금조달 계획의 동일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둘 이상의 증권의 발행 또는 매도가 사실상 동일한 증권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하나의 증권으로 보아 발행인이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관련 법령에 따라 금융당국은 농협은행이 시리즈펀드를 판매하면서 펀드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또 농협은행이 자산운용사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OEM 방식을 통해 제작 과정뿐 아니라 운용 과정에 개입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자본시장법상 OEM펀드를 직접 처벌할 근거 조항이 없다. 이에 금감원은 펀드 판매사인 농협은행을 공시 의무 위반에 따른 과징금 제재 대상인 증권발행 주선인의 지위에서 발행사인 운용사와 함께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있다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농협은행은 금융당국의 결정에 이례적으로 정면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해당 법률 적용상 논란의 여지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재가 강행됐다며 억울하다는 것이다.
농협은행에 따르면 관계법이 개정된 시점은 2018년 5월로, NH농협은행이 시리즈펀드를 판매한 이후에 개정되었기에 이는 소급적용이라는 것이다. 또 지난 3월 이 법의 모법 격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증권신고에 대한 기준도 완화된 바 있다.
앞서 SEC는 펀드 등을 연이어 발행할 때 특정 기간을 묶어 그 전체를 하나의 발행으로 묶는 증권공모규제인 '거래통합기준'을 기존 6개월에서 30일로 축소했다. 이에 국내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 외에도 농협은행은 시리즈펀드 투자고객의 손실이 전혀 없었고, 관련 법규 역시 확대해석의 여지가 있어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과거 미래에셋대우의 경우도 법 제정 전에 증권신고서 미제출에 따라 과징금을 낸 선례가 있다. 이 때문에 소급적용 논란이 약화될 여지가 존재한다. 또 SEC의 자금모집 규정 완화 역시 국내법에 바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에 근거로써 부족한 측면이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농협은행이 이번 사태에 대해 반발하고 나선 까닭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과징금 규모가 부담스러워서 이런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일반적으로 금융당국의 결정에 수긍해왔던 전례를 볼 때 이번 케이스는 꽤 이례적이다. 아무래도 OEM펀드 제재의 첫 시범케이스로 남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농협은행 관계자는 "해당 사안이 법률 적용상 여러 논란이 될 여지가 많고, 학계나 다수의 법무법인 등도 역시 증권신고서 미제출을 사유로 판매사를 제재하는 것은 현행 법상 어려움이 있다고 의견을 밝히고 있다"며 "농협은행은 조만간 열릴 금융위원회를 통해 입장을 적극 소명할 예정"이라며 증선위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