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싸우는 착한 패션 기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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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과 싸우는 착한 패션 기업을 만나다
2015.07.23 12:00 by 이예림

치열한 세상이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 물음에 응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누군가는 창업을 했고, 어떤 이는 공방을 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갈 길은 멀다. 제대로 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다.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성동구청과 함께 꾸려가는 사회공헌 창조공간으로,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혁신기업가‧예술가‧비영리기획자 등이 함께한다. 더퍼스트는 이들의 도전이 활짝 꽃피우는 그날을 기대하며 ‘변화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에트리카(ETHRICA) 

부룬디는 아프리카 중심부의 작은 나라다. 나라 전체가 우간다, 르완다, 콩고 공화국, 탄자니아 등으로 둘러 싸여 있어 ‘아프리카의 심장’이라고도 불린다. 부룬디 국민의 90%는 원두와 찻잎 등을 재배하는 농업에 종사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내전이 심한데다 빈부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UN의 <2015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부룬디인의 행복 지수는 세계 최저에 속한다.

 

이 작은 나라에 공예품을 만드는 청년 알버트(25)가 산다. 그는 기테가 예술 고등학교를 다니다 자퇴를 결정했다. 재정적 이유 때문이다. 예술 고등학교의 학비는 1년에 4만 3000원으로, 부룬디 평균 월급의 절반이 넘는다. 알버트는 빈곤 계층이라 그 금액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디자인에 대한 열망까지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그는 디자인에 가까운 공예를 직업으로 택해, 팔찌 등을 만들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그런 알버트에게 요즘 새로운 꿈이 생겼다. 지난 해 여름, 패션 스타트업 에트리카(ETHRICA)가 개최한 아트 워크숍에 참여하면서다. 2박 3일간 진행된 워크숍에서 알버트는 단연 돋보였다. 수업엔 항상 정시에 도착했고 어려운 과제에도 성실히 임했다.

이 모습이 에트리카 공동 대표 안지혜(26)씨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알버트는 에트리카의 장기 디자인 교육생 네 명 중 한 명이 됐다. 그는 현재 온라인 수업으로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꾸준히 노력하면 ‘세계적인 패션 페스티벌 출전’이란 꿈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다고 믿는다.  

에트리카가 개최한 아트워크숍 현장. (사진=blog.naver.com/ethrica)

에트리카의 안지혜 대표는 ‘아프리카의 코코샤넬’을 찾고 싶어 부룬디를 방문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교육생을 지도하지만, 올해엔 이들을 국내로 초청하고 싶다고 했다. “부룬디 청년들은 주변 환경을 보며 디자인에 필요한 영감을 얻어요. 한국에서 다양한 것을 보고 느낀다면 제품 디자인을 할 때도 새로운 시도가 가능할 겁니다.”

공을 들여 아프리카의 코코샤넬을 발굴하려는 이유를 묻자 안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현지인을 돕기 위해 보낸 중고 의류가 오히려 아프리카 의류 시장을 80% 이상 축소시킵니다. 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면, 그들만의 감성을 살리는 것은 물론 아프리카 의류 산업을 성장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거예요. 에트리카 의류 또한 현지인이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그 날을 꿈꿉니다.”

 

에트리카(ETHRICA)란 기업명엔 에스닉한 감성을 녹인다는 의미의 Ethnic과 착한 패션을 추구한다는 의미의Ethical, 아프리카의 진짜 성장을 바란다는 의미의 Africa가 담겨있다. 단어 Ethical에서 알 수 있듯 ‘윤리적 패션’을 추구한다. 윤리적 패션이란 제작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고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트리카의 디자인을 담당하는 김한울 (26)공동 대표는 “공정과정을 모두 못 갖춘 스타트업이 윤리적 패션의 모든 항목을 지키긴 어렵다”면서도 “현실 가능한 항목부터 단계적으로 지켜가겠다”고 했다. 현재 에트리카는 부룬디인을 대상으로 교육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며,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원단을 제공받고 있다. 현지인의 노동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제공하는 단계에서부터 윤리적 의무를 다하고 있다.

에트리카 공동대표 김한울(좌), 안지혜(우)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노력과 함께 상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2014년 6월 처음 캡슐 컬렉션을 출시한 에트리카는 지금까지 두 번의 정식 컬렉션을 발표했다.

2014년 가을‧겨울 컬렉션과2015년 봄‧여름 컬렉션이 그것이다. 2014년 6월 캡슐 컬렉션에서 개성 강한 옷을 선보인 에트리카는 판로 마련이 쉽지 않아 애를 먹었다. 처음 낸 컬렉션은 “독특해서 좋지만 개성이 너무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를 반영해 발표한 2014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선 안감 등에 포인트를 주어 소비자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고자 했다. 판매는 훨씬 많이 이뤄졌지만 에트리카만의 색깔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안 대표와 김 대표는 에트리카의 개성과 소비자 취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자 했다. 지난 시즌, 거의 모든 형태의 팝업 스토어와 프리마켓에 참여한 이유다. 올해 봄‧여름 시즌엔 그렇게 발품을 팔아 공들인 제품들을 발표했다. 에트리카의 색깔은 고수하되 소비자 삶에 자연스레 녹아들고자 했다. 김 대표는 “작년에 국내 반응을 살폈다면 올해부턴 해외에서 다양한 바이어들을 만날 예정”이라면서 “평소 세 배 규모의 원단을 주문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다”고 했다. “이번 시즌이 잘 되면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 범위 또한 넓히고 싶다”고 밝혔다.

‘현지인이 의류 생산의 전 과정을 담당한다’라는 에트리카의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김 대표는 소비자와 에트리카 간의 협력이 해답이란 의견을 내놨다. “지난여름에 아트 워크숍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협력의 소중함을 느꼈어요. 아프리카의 코코샤넬을 발굴한다는 취지로 텀블벅에서 소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거든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목표액 1000만 원을 모두 달성했어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거에요. 저희가 먼저 좋은 기획으로 소비자를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한편으론 해외 브랜드와 거래하면서 경험을 꾸준히 쌓고요. 그렇게 된다면 현지인과 에트리카 모두 만족하는 제품을 내놓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코엑스의 <패션코드>전시회에 참여한 에트리카. (사진=에트리카 페이스북)

마지막으로 에트리카의 소셜 미션을 묻자 두 대표는 모두 기업 슬로건이기도 한 “패션으로 빈곤과 싸운다(Fashionably Fight Poverty)”를 꼽았다. 앞으로도 아프리카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착한 것도 얼마든지 경쟁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인이 생산 과정을 전부 담당하는 기업이란 그들의 비전은 언젠가 현지인만의 감성을 담은 강력한 제품으로 재 탄생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소비자뿐 아니라 현지인의 삶 또한 자연스레 에트리카의 첫 콜렉션 이름처럼 ‘Vivid-Up’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알버트가 디자인한 제품도 보다 많은 이들의 삶을 Vivid-Up 해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