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 숨겨진 가치를 나눕니다, 키플 이성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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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 숨겨진 가치를 나눕니다, 키플 이성영 대표
옷장 속 숨겨진 가치를 나눕니다, 키플 이성영 대표
2015.11.25 18:00 by 황유영

치열한 세상이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 물음에 응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누군가는 창업을 했고, 어떤 이는 공방을 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갈 길은 멀다. 제대로 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다.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성동구청과 함께 꾸려가는 사회공헌 창조공간으로,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혁신기업가‧예술가‧비영리기획자 등이 함께한다. 더퍼스트는 이들의 도전이 활짝 꽃피우는 그날을 기대하며 ‘변화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아동의류 공유기업 '키플'

  주인 ‘앤디’가 대학에 가면서 장난감들은 골방에 갇힌 신세가 된다. 자신들을 잊은 주인을 원망하고 외로운 마음에 새 주인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리곤 또 다른 꼬마주인을 만나 새 삶을 얻는다.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3>의 줄거리다. “입지 않고 묵혀둔 옷들도 저런 심정일까?” 이성영 ‘키플’ 대표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아내와 나눈 대화다. 이 대표의 동화적인 상상은 현실이 됐다. 옷장 속 잠든 가치에 생명을 불어넣는 공유기업 ‘키플(kiple)’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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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책없던 용기로 시작한 공유경제의 마중물

  IT회사에서 기획‧개발 등의 업무를 담당하던 이성영 대표는 3년 전 홀로서기를 선언하고 창업에 나섰다. 마흔 나이에 쉽지 않았던 도전. 그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사내 벤처 등의 경험을 토대로 꾸준히 해외시장을 체크했고, 이 과정에서 ‘공유경제’의 개념을 접하곤 금세 마음을 뺏겼다.

“쓰레드업(thredUP.com ‧ 중고 아동복 등을 거래하는 사이트) 같은 서비스들은 생산과 소비 주체가 나눠져 있지 않아요. 공급자와 수요자 역할을 동시에 하는 개인들이 거래를 하는 방식이죠. 참 매력적이지 않나요?”

미국에서 공유경제 서비스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시장성’을 확신한 이성영 대표는 2012년 1월, 동료 두 명과 함께 키플을 설립 했다. 이 대표는 “많은 고민과 확신 끝에 결정한 일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대책 없는 용기로 이뤄진 일”이라고 회상한다. “중소기업청에서 창업지원과제 사업 공모에 당선돼 받은 지원금과 약간의 자본금을 합쳐 시작했는데 턱없이 부족했어요. 빚을 내오는 게 나의 주된 역할이었죠.”

그럼에도 옷장 속 아이들의 옷을 공유경제의 분야로 끌어내겠다는 의지만은 확고했다.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분명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크면서 작아지는 옷들이 생기죠. 미국은 옷 가격이 상당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중고 옷 거래가 활발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입던 옷을 재활용하기가 힘들어요. 드는 수고에 비해 중고옷의 거래 가격이 상당히 낮기 때문이에요. 그 수고를 대신해줄 수 있다면 거래가 활발해지리라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도서, 장난감의 경우 정부에서도 재활용 채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의류는 개인에게만 맡겨져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 같은 틈새를 공략하고자 했던 게 키플의 초기 전략. 벤치마킹할 사례가 없어 힘들기도 했지만, 반대로 처음이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 키플을 준비하던 시기에는 공유경제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2012년 들어서면서 공유경제에 관심을 가진 미디어와 언론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죠. 덕분에 우리 활동도 많이 알려질 수 있었고요. 그 관심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공유경제의 마중물을 마련하는데 힘썼습니다. 우리 애 옷을 모아오고, 중고 의류를 구매해 올리기도 하면서요.(웃음)”  

변화해야 살아남는다

  이성영 대표는 사업 초창기에 대해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던 시기’라고 말한다. 서비스가 세상에 나오기까진 상상하고 계획하며 행복할 수 있었지만 막상 현실은 차가웠다는 것. 6개월이 지날 때까지 수익이 기대치를 밑돌면서 사업자체가 기로에 섰다. ‘사업을 접느냐, 변화를 시도하느냐’의 갈림길. 키플은 후자를 선택했다.

“사진촬영부터 등록까지 키플이 하고 사용자들은 옷을 보내기만 하는 형태로 바뀌었어요. 현재의 모습이죠. 기존의 키플이 IT플랫폼의 역할을 했다면 유통과 물류까지 담당하게 된 거에요. 투자자는 당연히 싫어했죠. 인건비 부담이 증가하니까요. 하지만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자리 잡지 못하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승부수였던 셈이죠.”

변화한 키플은 판매자와 구매자 간 중재자 역할까지 했다. 제품 가격에 대한 인식차이로 불만사항이 발생한다는 점을 착안, 합리적인 가격 가이드라인이 필요했다. “제품 검수의 큰 원칙은 내가 받았을 때 기분 좋은 옷이에요. 상품을 검수하는 직원 대부분이 아이 키우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원칙하에 빨랫감, 보풀 등등 세부적인 기준으로 (가격을) 판단해요. 이제는 3년여 간 쌓인 데이터가 있어서 기준가 제시가 쉬워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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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씩 성장하고, 함께 나누는 키플의 철학

  현재 키플은 매년 200%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변화와 안정의 단계를 거치면서 이룩한 성과다. 이성영 대표 외에 4명의 직원이 상주하고 있으며 사무실에는 거래되는 옷들이 행거를 가득 채우고 있다. 비록 함께 창업했던 동료들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새로운 투자자가 생겨 그의 꿈을 응원하고 있다.

“업종의 특성상 막대한 수익을 내지는 못해요. 중고 의류의 원가가 워낙 낮기 때문이죠. 그래도 성장세를 잇고 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기술적 효율화 등 아직도 보완해야 할 점들이 많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40세에 창업에 뛰어들고, 공유경제라는 개념이 없던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성영 대표. 그가 꿈꾸는 미래는 무엇일까. 키플의 성장, 수익의 극대화, 벤치마킹한 ‘쓰레드업’처럼 30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하는 거대한 회사, 그 무엇도 될 수 있지만 방향은 조금 다르다.

“현재와 같은 비즈니스라면 분명 공간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생길 거예요. 창고를 운영해야 될지도 모르죠. 그 때가 온다면 서울 근교의 폐교를 사고 싶어요. 교실마다 창고로 쓰고,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필요하면 숙소로도 이용할 수 있는 그런 공유공간이요. 키플이든 또 다른 사업이든, 공유경제에서 역할을 꾸준히 할 수 있단 생각만으로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