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 갇힌 K-스타트업…청년 있되 정년 없는 지원책 절실
집중탐구, 2030에 매몰된 창업지원 풍토
청년에 갇힌 K-스타트업…청년 있되 정년 없는 지원책 절실
2021.03.22 12:28 by 최태욱

때는 바야흐로 2014년 2월. 저 멀리 러시아 소치에서 전 국민을 공분케 하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 강탈 사건’이다. 공공연하게 ‘승부조작’이 거론됐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던 결과. 국제사회는 질타를 쏟아냈고, 국민들은 황망함에 밤잠을 설쳤다. 그때의 결과가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모두가 마지막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연아 선수의 나이는 만 23세. 유연성·순발력·지구력이 생명인 피겨 스케이팅의 최전성기는 십대 후반까지다. 

약관의 시기에 가장 영롱한 빛을 내는 분야는 스포츠 말고도 많다.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이 요구되는 바둑 기사들은 20대가 꺾이면 지는 해가 되고, 피아노나 바이올린 연주자들도 20대부터는 기량 발전이 아닌 기량 유지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모든 일에 때가 있다 치면, 체력과 지력이 필수인 일에는 해당 역량이 최고조에 달하는 그 시기가 바로 적당한 ‘때’일 터다. 

그렇다면 창업은 어떨까? 정부에서 생각하는 적당한 때는 ‘2030’으로 뵌다. 적어도 정부의 주요 창업 지원사업들을 톺아보면 그렇다.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만 39세 커트라인. 벌써 10년 넘게 이어져온 기조다. 창업 앞에 붙은 ‘청년’이란 수식어가 마치 한 몸인 듯 자연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현장의 시선은 곱지 않다. 실효성을 되묻고 행정 편의를 지적한다. 이를 증명하듯 매년 예산대비 효용을 따지는 기사가 되풀이된다.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더퍼스트미디어에서 스타트업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봤다.

 

2030세대에게 특화된 창업지원 정책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2030세대에게 특화된 창업지원 정책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 나가서 싸우고 승리하라는데… 손에 쥔 무기는 열정과 에너지?
창업을 독려하는 정부의 의지는 명징하다. 지난 2019년 관련 예산 1조원 시대가 열렸고, 올해는 중앙부처와 광역지자체를 합쳐 32개 기관, 194개 사업에 1조5179억원이나 투입된다. 침체된 경제 상황 속에서 스타트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는 것이 글로벌 트렌드임을 감안하면 자연스런 행보다. 문제는 지원 대상의 편향성이다. 20~30대에만 시선이 머물고 있는 ‘청년바라기’ 정책 일변도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 입문코스로 통하는 ‘예비창업패키지’가 지난해 만 39세 연령 제한을 폐지하며 문호를 개방하나 싶었지만 올해 다시 청년 비중을 70% 이상 확대한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청년 넷 중 한 명은 실업자이며, 대기업 넷 중 세 곳은 신규 채용을 못하는 상황에서, 청년 창업 활성화를 향한 정부의 기대와 바람이 엿보이는 행보다. 

 

연령 제한이 존재하는 2021년 주요 창업 지원사업
연령 제한이 존재하는 2021년 주요 창업 지원사업

문제는 실효성이다. 청년 창업의 성공률이 지극히 떨어지다 보니, 한정된 자원을 맹목적으로 쏟아 붓는 것에 대한 회의감만 쌓여간다. 엑셀러레이팅 현장에서 직접 창업팀을 육성하는 이원주(가명) 매니저는 “나이로 줄 세우는 인위적인 기준 탓에 함량 미달의 청년 아이템이 선정되고 사업화되지만 이들은 결국 생존하지 못하고 취업이나 재창업을 노리는 악순환을 반복한다”면서 “스타트업 정신에도, 시대적인 흐름에도 맞지 않는 행정 편의적 발상으로 사회적 비용이 낭비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중소기업벤처부의 ‘창업기업실태조사’를 보면, 설립 1년 차에 33.3%의 비중을 차지했던 20~30대 대표자의 창업기업은 3년차 23.9%, 5년차 21.2%, 7년차 14.4%로 극감한다. 31.8%로 시작한 40대 대표자의 창업기업이 7년차에 28.2% 비중을 유지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수치. 경영컨설팅그룹 패스파인더넷의 강재상 공동대표는 “청년들은 사업화의 포인트가 모호한 경우가 많아 외부 교육과 멘토링의 효과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면서 “청년 특유의 열정과 에너지로만 버티기엔 너무 복잡하고 전문적인 게 바로 기업 경영”이라고 덧붙였다. 제조분야의 스타트업 창업자 김민선(가명)씨는 “우리 같은 제조·유통 플랫폼은 초기 자본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그만큼 리스크도 막대한데, 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창업자의 경험, 노하우, 인맥 등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면서 “이를 갖지 못한 어린 창업자들을 앞뒤 재지 않고 현장에 세우는 건 위험에 노출시키고 위험을 외면하는 행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맹목적인 청년창업 육성책은 청년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위험을 외면하는 행태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맹목적인 청년창업 육성책은 청년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위험을 외면하는 행태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 창업 역량은 익을수록 고개를 듭니다. 
시선이 고정되면 사각지대가 생긴다. 한정된 자원이 청년들에게 집중되다보니, 자연스레 중장년 창업자의 기회 손실로 이어지는 것. 이원주 매니저는 “잠재력과 가능성이 월등한 아이템을 갖고서도 나이 한 두 살 더 많다는 이유로 청년 팀에게 자리를 내주는 경우를 꽤 자주 접한다”고 귀띔한다. 실제 창업 현장에서 나이 많은 설움을 톡톡히 당했던 두 창업자 박명식(가명), 정우일(가명) 대표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3년 전 창업 당시 정확히 만 40세였어요. 정부 창업지원이 대체로 만 39세까지인 것은 알았지만, 내가 받을 수 있는 게 정말 하나도 없을 줄은 몰랐죠. 특히 예비창업패키지 같은 초기 단계 지원이 절실했는데 정작 내 나이로 응시라도 할 수 있는 건 업력이 쌓인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들 뿐이더라고요.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운 걸 처음으로 후회한 순간이었어요. 외부 VC 통해 투자를 받으려 해도 지원사업 실적이 없어서 힘들다고 하고… 결국 지인 돈으로 힘들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박명식 C사 대표)

“대기업에서 기획 업무를 하다가 오십 넘어 창업에 도전했어요. 처음엔 동기랑 사내벤처를 고민했는데. 그것도 나이 제한이 있더라고요.(웃음) ‘노인네들이 무슨 창업?’이란 반응을 보이길래 오기로 퇴사해버렸죠. 사실 정부 지원사업은 꿈도 안 꿨어요. 종잣돈도 부족하나마 마련했고요. 그런데 돈만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여러 교육이나 코칭, 네트워킹 같은 무형의 도움들도 굉장히 절실했어요. 몇 번 도전했지만, 사실 응시 자체도 우리에겐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철저하게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죠.”(정우일 G사 대표)

박 대표가 일군 C사는 벌써 4년째 업계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기며 성장하고 있다. 정 대표의 G사 역시 빠르게 시장에 침투하며 순항 중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절실했던 부분에 약간의 도움만 받았더라면 지금보다 족히 1~2년은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지점에서 중장년의 창업 지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가성비가 높다는 얘기다. 강재상 대표는 “경험과 전문성이 담보된 중장년은 자신의 장단점 파악이 명확하기 때문에 지원‧육성의 포인트가 또렷하게 나타나는 편”이라며 “기본적으로 갖춘 것이 많아 교육‧코칭‧자금 등 어떤 지원이라도 청년보다 적은 금액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들에게 집중되는 창업 지원정책은 자연스레 중장년 창업자의 기회 손실로 이어진다.
청년들에게 집중되는 창업 지원정책은 자연스레 중장년 창업자의 기회 손실로 이어진다.

창업에 대한 중장년의 ‘포텐’은 결과로도 나타난다. 지난 2018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연구에 의하면 “상위 0.1%까지 빠르게 치고 올라간 스타트업 창업자의 평균 나이는 45세이며, 이 나이에 창업자는 20세 창업자에 비해 성공할 확률이 18배나 높다”고 분석했다. 해당 연구에서 창업 성공의 키가 됐던 요소 역시 풍부한 ‘업무 경험’이었다. 실제로 미국에서 엑시트(Exit)에 성공한 스타트업들의 창업자 평균나이는 46.7세다. 

 

| Age는 Gage가 될 수 없다…입체적인 지원책 고려돼야
이 같은 담론이 청년 창업지원의 중요성을 폄하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창업 선진화는 시대의 화두이며, 청년들의 기업가정신 함양과 창업의 저변 확대는 이를 위한 필수과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장년을 홀대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물리적인 시간을 들여 창업 역량을 완비한 그들을 외면하는 건 차라리 낭비에 가깝다. 요즘 시대의 40대가 가진 왕성한 활동력까지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요즘 대학생들은 창업 정보를 비교적 쉽게 얻지만 직장생활만 했던 40~50대는 창업에 대해 오히려 학생들보다 더 무지하다”면서 “몰라서 못하지만 한다면 임팩트를 만들 가능성이 큰 그룹이니만큼, 정부가 나서 물꼬를 터줄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중장년이 가진 경험과 전문성은 창업 분야의 훌륭한 자양분이 된다.
중장년이 가진 경험과 전문성은 창업 활동의 훌륭한 자양분이 된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두 가지 단계의 솔루션을 제안한다. 먼저 철저한 효율성 검증을 통해 청년 창업지원 분야의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강재상 대표는 “현재 청년 창업지원의 규모를 줄이되, 분야를 줄이기보다는 비효율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근시안적인 육성 방향, 구색 맞추기 식 교육 등 청년 대상의 공허한 지원책을 정비하여 성과 위주의 정책으로 짜임새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연령이 아니라 분야와 아이템을 기준 삼는 입체적인 지원책의 수립도 강조했다. 이커머스 분야의 모 스타트업 대표는 “동남아 스타트업의 천국으로 불리는 싱가포르는 창업자가 기본적인 시제품(Prototype)을 갖춰오면 철저히 이를 기준으로 지원 단계와 투자 등이 연계 된다”면서 “나이 같이 비사업적 기준이 아닌 아이템 밀착형으로 지원 기준이 잡혀 있어야 돈이 이상한 데로 새거나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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