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탄 물류 시장, 총알 장전한 물류 스타트업
긴급진단, 물류‧유통 혁신나선 스타트업의 세계
총알 탄 물류 시장, 총알 장전한 물류 스타트업
2021.04.05 20:34 by 최태욱

쿠팡이 쏘아올린 작은 로켓에 유통시장 전체가 들썩인다. 오픈마켓이나 소셜커머스 분야에서 펼쳐지던 온라인 국지전은 어느새 빅테크 기업과 거대 유통기업까지 참전한 신(新)유통대전으로 확대됐다. 국내 이커머스 분야 대장인 네이버가 택배업계 대장인 CJ대한통운과 손잡고, 현대차는 중국‧미국‧스위스의 혁신 물류기업에 투자하며,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선 롯데, 신세계, 홈플러스, SK텔레콤 같은 기업들이 경쟁하는 등 ‘의기투합’을 통한 ‘각자도생’이 난무하는 모양새다. 

작금의 각축전은 차라리 서바이벌 게임에 가깝다. 지난해 국내 유통시장 거래 금액의 절반 정도는 온라인(43%)의 몫. 여기에 전체 유통시장 규모가 5% 늘어날 때 20% 넘게 쑥쑥 커 온 온라인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온라인을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공식이 자명해진다. 때마침 미국에 상장해 몸집을 부풀린 쿠팡의 퍼포먼스는 경쟁자들의 조바심마저 부추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부쩍 핫해진 키워드가 바로 ‘물류’다. ‘총알’, ‘로켓’, ‘새벽’에 맞서자며 ‘바로 배송’까지 등장하는 시대. 제품 및 서비스가 수송·하역·포장·보관 등을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까지 다다르는 물류의 역량이야말로 온라인 유통 시장의 패권을 위한 열쇠다. 미 상장 후 5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확보한 쿠팡이 물류센터부터 확장하겠다고 나선 것도, 네이버‧카카오 등 거대 플랫폼들이 ‘풀필먼트(Fulfillment‧통합 물류관리)’ 비즈니스에 꽂혀 있는 것도 그 열쇠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이다. 

유통‧물류시장에 감도는 전운은 유관 스타트업들에게 천운이 된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는 혁신을 빨아들이는 성미가 있고, 거대 기업들이 맞부딪치는 사이에 생기는 틈새는 그 자체로 시장이 된다. 유통‧물류대전의 시대, 물류 스타트업들의 비전을 들여다봤다. 

 

이커머스의 패권, 물류 인프라에 달렸다.
이커머스의 패권, 물류 인프라에 달렸다.

| 물(物)들어온다 노 저어라…물류 전성시대의 도래

“지난해 거래액만 3조원에 육박해요. 2019년에 1조원을 달성했으니 1년 만에 3배 정도 증가한 셈이죠. 이는 우리 성장 목표를 훨씬 웃도는 수치입니다.”

배달대행 플랫폼을 운영하는 ‘바로고’ 김가현 매니저의 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라이프스타일이 확산‧정착되어 가는 분위기에 힘입은 선전인 셈. 그의 말처럼 배송과 배달 산업은 악재를 호재삼아 급부상했고, 사람과 산업의 오작교인 물류는 미래 산업의 총아로 자리매김했다. 새벽마다 골목골목을 누비는 택배차량, 아침마다 현관문 앞에서 마주하는 택배상자는 이제 너무도 자연스런 일상의 풍경이다. 사용 경험이 부쩍 늘면서 사용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져만 간다. 김가현 매니저는 “고객들의 니즈가 정교해지면서, 더욱 정교한 라스트마일(물건이 마지막 창고에서 고객에게 전달되는 구간) 서비스가 필요해지고 있다”며 “로켓, 새벽 등 속도전을 넘어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시간에 전달하는 서비스도 등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야흐로 물류 전성시대다.
바야흐로 물류 전성시대다.

미래먹거리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그 규모와 업종에 상관없이 “물류가 미래 산업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해외 컨설팅 기관들이 “2030년까지 10배 이상 커질 시장”이라고 호평할 정도다. 독자적인 물류 경쟁력을 통해 압도적인 지위를 획득한 아마존이나 빚더미로 쌓아올린 물류 인프라로 메기효과까지 불러일으킨 쿠팡의 사례가 충분히 보여줬고, 충분한 자극도 줬다.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대세로 떠오른 물류 영역이 스타트업과 매우 밀접하단 점이다. 익일배송 서비스 시대를 연 쿠팡, 새벽배송을 처음 도입한 마켓컬리, ‘B마트’로 퀵커머스를 태동시킨 우아한 형제들, 최초의 무인화 자동배차 시스템을 구축한 메쉬코리아 등에 이르기까지, 스타트업들이 물류 혁신을 ‘하드캐리’해 왔을 뿐만 아니라, 유통‧제조‧ICT 등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며 결합과 적용의 시험대가 되고 있는 물류 4.0에 최적화된 조직 역시 스타트업이다. 

물류 분야 스타트업을 향한 투자가 지속적이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 기인한다. 메쉬코리아, 위킵, 두손컴퍼니, FSS, 아워박스 등에 연이어 투자하는 등 물류 혁신에 공을 쏟는 네이버의 전략은 국내 이커머스 선도기업의 위상을 지켜주는 저력이며, 델레오, 로지스팟 등 물류 스타트업에 대한 카카오의 투자는 향후 카카오 사업 영역 확장의 주춧돌을 놓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지난해 시리즈E 투자 유치를 마친 마켓컬리를 비롯해, 하우저, 마켓보로, 신상마켓, 리턴박스, 셀러노트 등 물류 스타트업으로 연중 내내 투자금이 몰리며 남다른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물류 스타트업을 향한 누적 투자금액은 총 111억 달러(한화 약 12조5000억원)에 달한다. 배송‧배달 분야의 성장성과 물류 산업의 미래가치에 자본시장마저 흠뻑 매료된 것이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눈과 귀가 물류 산업을 향하고 있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눈과 귀가 물류 산업을 향하고 있다.

| 씨줄=물류, 날줄=기술… 씨줄과 날줄 엮는 스타트업의 활약 기대 
물류는 고객과의 최접점까지 닿는 속도와 정확성으로 성패가 좌우된다. 이를 위해서라면 타 업종은 물론, 빅데이터, 인공지능, IoT, 로보틱스, 블록체인 등 온갖 기술을 끌어들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퀵서비스의 기동성과 택배의 안정성을 결합한 ‘4시간 배송 서비스’ 모델로 월 8만 건 이상의 물동량을 소화하고 있는 스타트업 ‘체인로지스’는 결합‧적용의 좋은 예다. 유통‧물류 분야의 19년차 베테랑과 배송 프로그램을 제공하던 개발자가 만나 인프라와 기술의 콜라보를 꾀한 것. 김동현 체인로지스 대표는 “산업 군 내의 크고 작은 결합은 결국 비용을 줄이면서, 고객과 현장 인력의 만족도와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차별점과 특장점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적용해 나가는 것이 우리 같은 스타트업에게 주어진 미션”이라고 덧붙였다. 

2019년 12월 설립된 ‘에코엑스랩’은 상생에 가치를 인공지능(AI)으로 구현한 스타트업이다. 물류 산업이 성장할수록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현장 택배기사의 노동 강도는 거세지고 처우는 열악해진다. ‘빠름’만을 강조하는 작금의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에코엑스랩의 안성찬 대표는 “물류 시장의 실질적인 동력인 현장 기사들의 만족도가 높아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생태계가 구축 된다”면서 “우린 머신러닝과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 최적의 운송 방식과 운임을 매칭해주는 중개 플랫폼 ‘에코엑스’를 통해 현장 기사들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모든 플레이어들이 공정하게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현재 화주 250곳, 차주 3000여명과 함께 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택배 기사의 노동실태는 이 분야의 고질적인 문제다. ‘택배 기사 과로사’라는 제목의 기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 일은 고된데 법‧제도적 규제는 미비하니 불이익과 불공정도 끊이지 않는다. 투잡이나 아르바이트 비중이 높아 인적자원 관리도 마땅찮다. 사람을 대체 혹은 보완하는 첨단 기술의 수요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 할 수 있다’는 목표를 가진 스타트업 ‘코봇랩’이 초점을 맞춘 부분도 바로 그 지점이다. 2018년 12월, 무인지게차 기술을 개발하며 닻을 올린 이 회사는 최근 물류 현장의 자율주행 시스템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기존 물류가 인력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많은 문제점이 생겨요. 국내 로봇이나 자율주행 기술개발 기업들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죠. 우린 물류 현장에서 사람을 보완해 기능할 수 있는 자율주행 시스템을 도입할 기술과 가설을 보유했어요. 지금은 규제가 많아 실증하진 못하지만, 곧 시범 도입의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민중후 코봇랩 대표)

 

체인로지스의 권역별분류작업(왼쪽)과 코봇랩의 물류센터 내 다품종 소량화물 이송 로봇(사진: 각 사)
체인로지스의 권역별분류작업(왼쪽)과 코봇랩의 물류센터 내 다품종 소량화물 이송 로봇(사진: 각 사)

물류로봇을 통합 관제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펼치는 스타트업 ‘모션투에이아이’ 역시 로봇 같은 새로운 운송수단의 도입과 빠르게 변하는 소비 트렌드 예측을 물류 산업 최고의 관심사로 보고 있다. 최용덕 모션투에이아이 대표는 “최근에는 각종 첨단기술을 통해 보다 똑똑하고 안전한 물류 산업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추세”라며 “실외 배달로봇의 경우 시범사업 성격의 프로젝트가 확대 되곤 있지만 실제 서비스가 이뤄지기 위해선 보험‧운영원칙 정비, 다양한 공공정보 데이터 확보 등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류 혁신이 만든 일상의 변화는 드라마틱할 정도다. 기업-기업 간의 물동량 이동 성격이 짙었던 산업의 특징은 점점 개인에게 집중하는 형태로 진화한다. 최근 ‘단건배달’ 경쟁이 붙은 배민과 쿠팡이츠의 사례에서 보듯, 고객의 니즈에 맞춘 ‘마이크로’한 진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물류창고, 운송장비 등의 하드웨어는 최첨단 소프트웨어들과의 만나 진화의 속도를 채찍질한다. 수요 예측이 빠르고, 신기술과 친하며, 융‧복합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타트업은 이 무대의 준비된 주역이다. 물류 스타트업 분야의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이제는 ‘속도전’ 너머의 것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의 추세라면 배송 시간은 시간 단위까지 짧아질 것이며, 그때부턴 속도가 아닌 보다 다채롭고 정교한 라스트마일 서비스가 등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가현 바로고 매니저는 “빠른 것은 기본이요, 원하는 옵션에 맞춰 배달하거나 하루 n번씩 정기배달 하는 서비스도 기대해 볼만한 일”이라며 “고객에게 다양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측면에서, 배달 가능 품목의 영역이 어디까지 허물어질지도 자못 궁금하다”고 했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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