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낮춘 명품, 눈높이 맞춘 스타트업
명품 시장 주목한 스타트업의 전략은?
눈높이 낮춘 명품, 눈높이 맞춘 스타트업
2021.04.13 00:10 by 최태욱

“훨씬 젊고 가벼워졌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문턱이 확 낮아진 느낌이랄까?”

최근 명품 구매를 계획했던 30대 직장인 이청아(가명)씨는 구매과정에서 확 달라진 풍토를 절감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명품을 구입했던 건 6년 전. 유럽 여행을 준비하며 벼르고 벼렸던 가방 하나를 현지에서 ‘득템’했던 경험은 그 자체로 역사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차이는 상품 검색 과정부터 드러났다. 키워드 하나로 수많은 구매 통로와 가격 비교, 언박싱‧시착 영상들이 넘쳐났고, 예전보다 캐주얼해진 제품이나 보다 젊은 감각의 신규 브랜드들도 눈길을 끌었다. 구매를 위해 백화점을 찾았을 땐 명품 매장마다 길게 늘어선 대기 줄에 문화쇼크마저 느꼈다. 그 줄을 점거한 이들의 낮은 연령대도 놀랍기는 마찬가지. 이씨는 “특별하고 비범했던 무언가가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변한 느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단순히 느낌만은 아니다. 실제로 지난해 명품 시장의 큰 손은 20~30대였다. 주요 백화점 명품 매장의 매출 절반가량을 소위 MZ세대가 책임졌다. 20대 소비자의 명품 구매 건수가 2년 새 8배 가까이 많아졌다는 통계도 있다. 현상보다 중요한 건 전망이다. 올해 초 이베이코리아가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올해 가장 지출이 클 것으로 예상하는 쇼핑 품목’을 묻는 질문에 10대의 43%, 20대의 28%가 ‘명품’이라고 답했다. MZ세대의 플렉스 열풍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얘기다. 그 사이 주거래 시장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바람이 불면 돛을 올리는 것이 인지상정. 고객 니즈에 목마른 스타트업들이 MZ세대를 태우고 명품의 세계로 출항한 이유다. 

 

MZ세대의 명품 소비 열기에 힘입어 많은 스타트업들이 명품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MZ세대의 명품 소비 열기에 힘입어 많은 스타트업들이 명품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 ‘하울’에 움직이는 心…명품 시장이 들썩인다
과거 명품 소비는 일종의 ‘상징’이었다. 차별화된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드러내는 도구였던 셈이다. 심미‧기능적 완성도에 과시의 욕구, 그리고 ‘그들처럼’ 소비하고 싶은 일치의 욕구가 더해지며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 명품이 갖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MZ세대가 소비의 주역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김예리 세종사이버대 디지털마케팅학과 교수는 “과거의 명품 소비가 상징적인 면이 컸다면 최근에는 쾌락적인 부분까지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명품 구매가 일종의 놀이로까지 인식되고 있다는 설명. 유명 유튜버의 명품 언박싱이나 하울(Haul‧후기 및 품평) 영상이 수백만 조회 수를 찍고, 명품의상을 입은 아바타가 등장하는 가상현실 게임에 열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플렉스’로 대표되는 과시형 소비에 거리낌이 없다는 MZ세대의 특징도 작금의 명품 열기와 직결된다. 지난 2월 ‘사람인’에서 진행한 ‘플렉스 소비문화’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의 52.1%가 플렉스 소비에 대해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노골적인 돈 자랑이나 과하다싶은 욕구 충족은 그들에게 흉이 아닌 흥이다. 김예리 교수는 “지난해 뜨거웠던 주식시장에서 MZ세대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며 “뚜렷한 주관과 취향에 맞춰, 적극적으로 돈을 쓰는 세대의 욕구가 명품 소비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들의 욕구가 발현되는 사이, 그 욕구를 충족시킬 최적의 무대도 차곡차곡 마련됐다. 하루 평균 스마트폰 스크롤 길이가 90미터 이를 정도로 모바일에 익숙한 MZ세대가 마음껏 활개 칠 곳은 역시 온라인, 모바일, 라이브커머스 등이다. 올해 전체 명품 시장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5% 정도. 지난 2005년 전체 명품 시장의 1%에도 못 미쳤던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이젠 앱이나 영상을 보다가 명품 지갑이나 가방을 구매하는 시대다. 소소하게 마음을 나누던 ‘카카오톡 선물하기’에도 명품 브랜드가 대거 포진한지 오래다. 디지털 전환이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산업의 파격적인 변신. MZ세대가 끌고 코로나19 쇼크가 밀면서 완성한 명품시장의 ‘뉴노멀’이다.  

 

IT와 만난 명품 시장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IT와 만난 명품 시장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 명품의 新소비 격전장, 온라인‧리세일을 잡아라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의 10년 생존율이 4% 정도인데, 그 4%가 생존한 이유는 기술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고객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얘기다. 명품 시장의 소비 트렌드가 바뀌면서 그 트렌드를 정밀 조준한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하며 어느덧 1조5000억원 규모로 성장한 국내 온라인 명품 시장이 그들의 과녁이다.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구매 플랫폼이다. 최근 220억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하며 누적 투자금 400억원을 달성한 ‘트렌비’를 비롯해, ‘머스트잇’, ‘발란’ 등의 명품 거래 스타트업들도 지난해 시리즈A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트렌비의 박경훈 대표는 “온라인 채널의 활성화로 명품 구매의 텀이 과거에 비해 훨씬 짧아졌고 품목도 다양해졌다"면서 “MZ세대의 플렉스 문화로 금액과 연령의 범위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했다. 온라인 플랫폼의 등장이 심리적인 문턱을 낮추면서 명품 구매가 점점 대중화‧일상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 회사가 서비스하는 플랫폼의 실 사용자 수는 해마다 300%가까이 늘고 있다. 

 

트렌비는 오픈마켓으로 운영되는 타 명품 구매 서비스들과 달리 직접 중개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사진: 트렌비)
트렌비는 오픈마켓으로 운영되는 타 명품 구매 서비스들과 달리 직접 중개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사진: 트렌비)

최근 명품 소비 트렌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바로 중고거래다. 연평균 30%씩 성장하며 시장 규모 7조원 수준으로 확대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주, 유럽, 일본 등을 보면 신품 거래 대비 중고거래 규모가 훨씬 가파르게 커지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이 역시 MZ세대의 특성에 기인한다. 이 세대의 명품 구매는 소장보단 사용에 그 목적이 있다. 애초에 자기표현에 방점을 찍은 구매이니 만큼, 입고 찍고 (SNS에) 올리는 것이 미덕이다. 기성세대와 비교해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은데, 유행과 패션 스타일에 맞춰 업데이트가 필요하니 자연스레 ‘중고거래’로 눈길을 돌린다. 

고객의 욕구는 서비스의 탄생을 부추긴다. 중고거래 시장의 고공성장이 이어지자 이를 전문으로 다루는 플랫폼이나 전용 서비스가 하나둘 등장하며 시장의 풍성함을 더했다. 중고 명품 리세일 서비스 ‘엑스클로젯’을 운영하는 ‘세컨핸즈’도 그중 하나다. 윤경민 세컨핸즈 대표는 “법률사무소에서 일할 때 명품 브랜드의 상표법 위반 사례를 무수히 접하면서 문제의식을 키워왔다”며 “이에 공급자 중심의 시장 구조를 구매자 중심으로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중고 명품 커머스 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엑스클로젯에선 사입과 판매위탁 등 2가지 방식으로 제품을 공급하는데, 모든 제품은 내부의 전문 감정사를 통해 철저히 검증하는 등 신뢰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2019년 3월 설립한 바이셀스탠다드는 ‘퍼스트 명품’만을 취급하는 비대면 명품거래 플랫폼 ‘모노리치’를 운영한다. 퍼스트급 명품은 새상품과 사용회수가 극히 적은 극미중고품을 포함한 개념. 이 회사의 신범준 대표는 “단순히 보다 저렴한 값을 원해서 중고를 찾는 수요도 있지만, 매장에서 구할 수 없는 인기 모델을 찾아 중고 시장으로 몰리는 경우도 많다”면서 “모노리치는 이러한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 새상품과 극미중고품에 해당하는 인기 모델 위주로 온라인 판매 서비스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의 또 다른 서비스 ‘피스’ 역시 작금의 명품 열기가 반영된 비즈니스 아이템이다. 명품이라는 현물자산에 투자하는 조각투자 플랫폼으로, 10만 원부터 조각소유가 가능한 만큼 MZ세대에 딱 맞는 새로운 투자처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신범준 대표는 “명품에 관심이 높은 MZ세대에게 소액으로 명품을 소유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면서 성공적인 대체투자의 경험까지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된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지난 3월 31일 첫 선을 보인 피스는 론칭과 동시에 사전 예치금이 펀딩 목표액을 넘어섰고 다음 날 30분 만에 완판되면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피스는 소액투자에 최적화된 명품 자산을 투자군으로 구성한 조각투자 플랫폼이다.(사진: 바이셀스탠다드)
피스는 소액투자에 최적화된 명품 자산을 투자군으로 구성한 조각투자 플랫폼이다.(사진: 바이셀스탠다드)

| 신뢰성은 영원한 난제…‘진짜배기’에 올인
온라인과 중고거래의 쌍두마차가 이끄는 명품 소비의 활황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명품 브랜드들도 젊은 세대를 겨냥한 캐주얼 디자인의 출시와 온라인 마케팅 확대, 디지털 콘텐츠 제작 등으로 트렌드에 발맞춰가고 있다. 

명품 산업의 디지털 전환 이슈는 케케묵은 과제였다. 이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초기에 시장에 진출한 스타트업들이 쌓아놓은 신뢰다. 같은 매장에 몇 번 씩 방문하여 들어보고 입어보고 신어보고도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고관여 상품을, 모바일 화면만 보고 클릭 몇 번으로 사들일 수 있는 것도 그 신뢰의 기반 위이기에 가능하다. 추후 이 시장에 진출할 스타트업들이 가장 신경써야 할 과제 역시 플랫폼과 제품에 대한 신뢰성 구축이다. 

윤경민 세컨핸즈 대표는 “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유통되는 명품의 30~50% 정도는 가품인 걸로 나타나고 있는데, 구조적으로 이를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박경훈 트렌비 대표 역시 “온라인 명품구매가 대중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다양한 플랫폼에서 가품을 판매하는 등의 사기행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그로 인해 온라인 명품 구매에 대한 불신이 생기면 우리는 물론 업계 전체의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품을 다루는 스타트업들이 진품 검증을 통한 신뢰성 구축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엑스클로젯의 제품 검수 장면(사진: 세컨핸즈)
엑스클로젯의 제품 검수 장면(사진: 세컨핸즈)

해당 분야 스타트업들이 전문 채팅상담이나 실시간 문의 같은 온라인 밀착 케어 창구를 마련하고, 저마다의 보상정책을 공고히 하고 있는 것도 신뢰성을 위한 장치들이다. 엑스클로젯에선 3명의 명품 감정사를 직접 운용하며, 가품 사고 발생 시 판매가의 2배를 보상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고객이 보유한 제품에 대한 무료 감정서비스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적극적인 소통을 꾀하기도 한다. 모노리치는 2단계에 걸친 정품 감정을 시행하며, 에스크로를 통한 안심 거래 시스템도 갖췄다. 서울권에 한해선 프리미엄배송을 제공하는 등 비대면 명품거래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피스의 경우, 구매 영수증이 갖춰진 현물을 최우선으로 매입하고 내‧외부 2단계에 걸친 검증을 거치며, 구성 상품 중 가품이 있을 시 조각 소유원금의 200%를 배상하는 보상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트렌비는 전 세계 브랜드의 공식 홈페이지나 오프라인 매장, 국내외 유명 부띠끄 등 공식 루트를 통해 정품만을 소싱하는 것을 원칙으로 가품 유통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박경훈 대표는 “구매 과정부터 꼼꼼히 검수하고 해외배송, 통관, 국내 출고 과정까지의 모든 과정을 직접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소비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만족스러운 쇼핑 경험을 제공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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