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 혹은 신기루…’ 수평적 조직문화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이슈분석, 벤처1세대의 조직문화 논란에 대해
‘신기원 혹은 신기루…’ 수평적 조직문화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21.06.08 01:37 by 최태욱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벤처 1세대 기업들의 조직문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갑질’, ‘왕따’, ‘업무 스트레스’ 같은 불미스런 잡음이 잦아진다싶더니 급기야 안타까운 비보까지 전해지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한번 물꼬가 트자 꾹꾹 눌려왔던 설움이 사방에서 폭발하는 모양새다. 익명 게시판을 통해 ‘무늬만 수평’인 조직문화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업계 내부에서조차 ‘터질 게 터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 일색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현재 뭇매를 맞고 있는 기업들이 국내 IT혁신의 상징이자, 디지털 경제의 국가대표라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후배 스타트업들을 견인‧육성하며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혁신DNA를 심어 왔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업적이다. 불과 3~4년 전만해도 유연함과 자율성에 기반을 둔 ‘수평적 문화’로 추앙받으며 ‘한국의 구글’로까지 불렸던 기업들. 이들의 변심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수평적인 조직문화란 무엇이며, 이를 효과적으로 구축‧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작금의 논란과 관련된 여러 물음들을 해결하기 위해 <더퍼스트미디어>에서 스타트업 생태계 안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봤다. 

 

수평적 조직문화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보자
수평적 조직문화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보자

| 수평적인 조직문화…그게 도대체 뭔데?
조직문화는 조직 내에서 공유하는 신념이나 관행 같은 것으로, 조직 혹은 구성원의 생각과 행동의 방향키 역할을 한다. 이런 문화가 수평적이란 건 결국 방향을 정하는 과정이 상대적으로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이뤄진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명하복 식 군대의 이미지와 정 반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여러모로 바람직한 조직상으로 비춰진다. 실제로 여러 연구를 통해 수평적 의사소통의 힘이 ‘조직에 대한 신뢰’, ‘업무 몰입도’ ‘혁신적 발상’, ‘노사갈등 완화’ 등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밝혀지기도 했다. 특히 구성원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책임이 무겁고,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한 스타트업에겐 지향점으로 통용된다. 

국내에서 수평적 조직문화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다.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산업 경계선이 무너지고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경영자 한 명의 생각이 아니라 다수의 생각과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시대로 전환됐다”면서 “국내 기업에 대거 영입된 외국인 인재들의 요구도 수평적 조직문화의 확산을 키운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여러 연구를 통해 수평적 의사소통이 업무 내‧외적인 부분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연구를 통해 수평적 의사소통이 업무 내‧외적인 부분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인식되는 것 중 하나가 직급 및 호칭 파괴다. 지난 2000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직급 호칭을 버렸던 CJ그룹의 행보 역시 의사소통 활성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고, 이는 곧 타 분야 타 기업으로 확산되며 수평적 조직문화 정착의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단순한 호칭 개혁만으로도 구성원 간의 권력 거리를 줄일 수 있을까?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퓨처플레이’의 공동환 매니저는 “확실히 상대방과 눈높이가 맞춰진다는 느낌이 들더라”고 했다. 퓨처플레이는 사내 별도의 직급 체계가 존재하지만, 소통 시에는 직급을 빼고 한글 이름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호칭 하나로 조직문화가 만들어지진 않겠죠. 다만 그 자체로 수평적인 문화를 위한 회사의 의지와 노력을 보여줄 수는 있다고 봐요. 조직 내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게 소통이고, 호칭은 소통의 출발점이니까요. 남들은 없는 우리 고유의 문화라는 점에선 내부 자긍심을 가질 수도 있죠.”(공동환 퓨처플레이 매니저)

이렇듯 호칭까지 바꿔가며 ‘수평’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것은 결국 수직적인 조직이 갖는 한계 때문이다. 수직의 구조 상 위-아래가 명확해지며, 위쪽에는 권위와 강요가 아래쪽에는 불공정과 무시가 잠재될 가능성이 높다. 혁신이 곧 생존이 되며, ESG 등 사회적 책임이 크게 부각되는 시대상도 수평에 힘을 더 실어준다.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정치 스타트업 ‘옥소폴리틱스’의 유호현 대표는 ‘매슬로의 욕구단계설(Maslow’s hierarchy of needs)’을 차용해 수직적인 조직의 한계를 설명했다. 인간의 욕구는 생리‧안전의 욕구, 애정‧소속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등으로 진화하는데, 자아실현의 시대가 막을 올리면서 수직적 조직문화와 충돌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소속의 욕구 시대에는 내가 어디서 일하느냐 중요했죠. 하지만 자아실현의 욕구가 높아지면 이 회사가 내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가 더 중요한 거예요. 개인은 자아실현을 중요시 여기기 시작했는데, 회사가 이전 시대에 머물러 있으니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죠. ‘회사는 너의 성장을 도울 테니, 너도 회사의 성장을 도와달라’는 접근이 있어야 하고, 이게 바로 ‘수평적인 조직문화’의 본질이라고 봅니다.”(유호현 대표)

 

수직적인 조직문화에 대한 비판은 주로 경영자(혹은 상사)의 강압적 권위와 독선으로부터 나온다.
수직적인 조직문화에 대한 비판은 주로 경영자(혹은 상사)의 강압적 권위와 독선으로부터 나온다.

| 입맛대로 변질되는 수평문화는 비극의 씨앗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최근 조직문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고 언급했던 벤처1세대 기업들 역시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지향해 왔다는 점이다. 그 어떤 조직보다 먼저 직급 체계를 개혁했고, 영어닉네임 등 유연한 호칭을 쓰는데 앞장섰으며, 다양한 회의‧소통 창구를 개발해 수평적인 논의를 시도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네이버‧카카오가 국내를 대표하는 IT플랫폼의 총아로 추앙받았던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수평적인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많은 스타트업의 구인‧구직 과정에서 ‘수평’에 대한 시각차는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구직자는 “수평적이라고 듣고 왔는데 생각보다 위계가 세다”고 하고, 경영자는 “수평 문화를 선호해 왔다면서 일은 공무원처럼 한다”고 끌탕하는 식이다. 구직자는 조직문화와 조직구조를 구분하지 못했고, 경영자는 비전 공유와 방향성 제시에 소홀했기 때문에 발생한 괴리다. 

경영컨설팅그룹 패스파인더넷의 이복연 공동대표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단순히 규율이 느슨하고 근태가 자유분방한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 대표는 “경영자가 직원의 역량을 발굴하고, 아이디어를 존중하며, 책임과 보상을 명확히 하는 과정을 통해 결국 기업의 목적인 이윤추구와 영향력 강화를 이뤄내는 게 수평적인 조직문화의 목적이자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네이버‧카카오에서 불거진 일련의 사태 역시 ‘수평적’이라는 그럴싸한 방어막이 초래할 수 있는 비극을 여실히 보여줬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굴지의 IT기업들이 오랫동안 자유롭고 유연한 분위기 등을 앞세워 기업 이미지를 만들고 인재를 대거 유입시켰지만, 그 이면에는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위계에 의한 괴롭힘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급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실적 위주의 합리적이지 못한 조직문화가 뿌리 내려왔지만, 기업들은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했다는 선언적 구호만을 외치며 문제를 키워온 셈”이라고 지적했다

 

수직조직은 위계에 따라 책임을 가지는 반면, 수평조직은 역할에 따라 책임이 부여된다. 이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수평조직은 그저 방만하고 느슨한 조직이 될 수도 있다.
수직조직은 위계에 따라 책임을 가지는 반면, 수평조직은 역할에 따라 책임이 부여된다. 이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수평조직은 그저 방만하고 느슨한 조직이 될 수도 있다.

| 지금은 과도기… 특성과 정서 고려해 우리만의 문화로! 
수평적인 조직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론 리더 및 구성원 개개인에게 보다 높은 차원의 책임과 의무가 요구된다. 유호현 옥소폴리틱스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과거 기록을 통해 수평적인 조직문화 구축이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한다.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예전엔 굉장히 권위적이었어요. 1970년대 히피 운동 이후, 자아실현의 욕구가 발현되면서 비로소 수평적인 문화에 눈을 떴죠. 이후 50년 동안 정말 치열한 실험을 거쳤고, 갖은 방법으로 진화를 시도했어요. 다양한 형태의 기업들이 등장과 쇠락을 반복했지만, 결국 살아남은 이들을 중심으로 발달하면서 지금의 안정화를 이룬 거죠.”(유호현 대표)

중요한 포인트는 ‘살아남은 이들이 중심이 됐다’는 부분일 것이다. 결국 기업은 영속성을 추구해야 하고, 수평이든 수직이든 이를 위해 최적화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복연 대표는 “수평적 문화라고 무조건 찬양할 필요도, 수직적 문화라고 배격할 필요도 없다”는 말로 이를 부연한다. 

“아마존이 우리나라 기업이었으면 아마 노동청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날락 거렸을 거예요. 걸핏하면 야근에 초과근무에 박봉이니까요. 직원들 함부로 자르기로 유명한 넷플릭스는 또 어떤가요? 결국 기업의 조직문화에 정답이라는 건 없어요. 시장 특성, 고객 특성, 경영자 특성 등을 종합해서 좋은 성과로 나아가는 길의 옵션일 뿐이죠.”(이복연 대표)

 

기업의 조직문화에 정답은 없다. 리더와 구성원이 공유하고 공감하는 문화가 바로 그 기업의 이상적인 조직문화다. (사진: Ascannio/Shutterstock.com)
기업의 조직문화에 정답은 없다. 리더와 구성원이 공유하고 공감하는 문화가 바로 그 기업의 이상적인 조직문화다. (사진: Ascannio/Shutterstock.com)

분명한 것은 기업이 어떤 조직문화를 선택하든,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결국 리더의 몫이라는 점이다. 기업은 창업자가 가진 기업가정신의 발현이며, 성장과 변화의 단계 역시 리더의 역량과 성찰에 따라 그림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성장을 위해 수직을 택한다면 필요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권위를 내세워야 하며, 수평을 원한다면 직원들의 역량 발굴과 성과 도출을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여러 스타트업에서 다양한 조직문화를 경험한 바 있는 익명의 한 스타트업 대표는 “기업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구성원의 의중을 파악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로 리더의 역할을 강조한다. 창업 초기 소수로 움직일 때는 사실상 대표가 끌고 가는 방식이지만, 규모가 커지면 반드시 조직문화의 기반을 닦아야 할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그는 “조직문화를 꼭 수평-수직의 이진법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 “흉내만 내려는 수평문화보다는 위계와 평등이 공존하는 형태로 비율을 조정해 나가며 조직과 구성원 모두 성장할 수 있는 '우리만의 문화'를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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