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여성 생산자들과 함께하는 공정한 이야기
HOME > > >
지구촌 여성 생산자들과 함께하는 공정한 이야기
지구촌 여성 생산자들과 함께하는 공정한 이야기
2015.10.14 22:51 by 조철희

치열한 세상이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 물음에 응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누군가는 창업을 했고, 어떤 이는 공방을 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갈 길은 멀다. 제대로 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다.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성동구청과 함께 꾸려가는 사회공헌 창조공간으로,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혁신기업가‧예술가‧비영리기획자 등이 함께한다. 더퍼스트는 이들의 도전이 활짝 꽃피우는 그날을 기대하며 ‘변화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주)더페어스토리

아프리카 대륙 남서쪽에 위치한 나미비아(Namibia). 오랜 시간 독일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탁 통치를 받았던 후유증은 여전하다. 인구의 6%에 불과한 백인이 국가의 중심을 이루는 것도 그래서다. 나머지 흑인들, 특히 여성들은 교육은커녕 고용의 기회도 보장받기 힘들다. 수도 빈트후크(Windhoek) 외곽의 흑인 거주지역 카투투라(Katutura)에 사는 루이사(Louisa‧54)씨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당당한 ‘커리어우먼’이다. 직업이 없는 남편을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게 벌써 18년째다. ‘펜두카’를 만난 후의 변화다.

우리말로 ‘일어나라’는 뜻을 지닌 펜두카는(Penduka)는 나미비아의 여성들의 자립을 목표로 하는 비정부기구다. 현지의 자연과 그들의 일상을 담은 자수를 바탕으로 공예품을 생산한다. 3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그들에게 손을 내민 동양인 남성이 있었다. 그가 바로 (주)더페어스토리(The Fair Story)의 임주환(46) 대표다.

임주환 더페어스토리 대표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임 대표는 사내 봉사활동을 통해 공정무역을 처음 접했다. 한 공정무역 브랜드의 마케팅을 돕는 일이었다. 그는 기부가 아닌 무역을 통해 생산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돕는다는 사업 모델에 금세 매료됐다. 5년간 관련 활동을 이어오다, 2012년 6월 아예 회사를 차렸다. 현재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 인근에 위치한 더페어스토리는 캄보디아의 스마테리아(Smateria)와 나미비아의 펜두카, 두 브랜드를 국내 소비자들에게 소개한다.  

캄보디아의 여성 친화적 작업장, 스마테리아

스마테리아는 캄보디아 현지 생산자들이 만드는 패션잡화브랜드다. 두 명의 이탈리아인 제니퍼(Jennifer Morellato)와 엘리사(Elisa Lion)가 2006년 시작했는데, 현재 전 세계 21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스마테리아의 컬러미(color me) 콜렉션. 2겹의 그물망과 홑겹의 원단 각층의 색상을 달리해 오묘한 색상을 만들어낸 것이 특징이다.(사진: 더페어스토리 제공)

스마테리아의 제품은 다채로운 색감과 독특한 질감이 특징이다. 촘촘한 그물망과 같은 질감은 페트병에서 추출한 원사나 폐어망 등의 소재에서 비롯됐다. 사시사철 더운 현지의 기후를 반영한 디자인이다. 이 외에도 버려지는 소파나 오토바이 시트의 가죽 등 다양한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 제품을 선보인다.

현재 직원은 70명 선. 그 중 85%가 여성이다. 모두 최저생계비와 건강보험 등을 보장받는다. 작업장은 수도 프놈펜(Phnom Penh)에 위치하고 있는데, 많은 여성들이 자녀들과 함께 출퇴근한다고 한다. 사내에 보육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장에 아이들과 함께 출근한 여성들의 모습(사진: 스마테리아 페이스북)

도시 개발로 인해 프놈펜에서 밀려난 여성들에게도 직업 훈련 및 일자리를 제공한다. 이들은 교외에 위치한 거주지에서 주로 플라스틱 섬유를 뜨개질해 원단을 만드는 일을 담당한다. 숙련된 현지인 직원이 주기적으로 찾아 지도한다. 임 대표는 “스마테리아는 제품 자체의 경쟁력을 통해 성장한 브랜드”라며 “매년 트렌드에 맞는 새 제품을 선보이며 안정적인 수익도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smateria-shop
 

 펜두카, 나미비아 여성들에게 자립의 꿈 심다

펜두카는 1992년 네덜란드인 크리스틴(Christine Roos)과 현지인 마사(Martha Muulyau)가 공동설립했다. 마사는 4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장애를 갖게 됐다. 어느 자활사업장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장애‧빈곤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나미비아 여성들을 위해 펜두카를 시작했다.

펜두카는 20년 이상 뿌리를 내리며 현지 여성들 가까이에서 호흡해왔다. 현재 제품 생산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300명이 넘는다. 이 중 35명가량이 정규직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수도 빈트후크를 비롯해 오티와롱고(Otjiwarongo), 오울루스 팜(Owlus Farm) 지역에서 자수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펜두카 쿠션 커버. 나미비아의 나무, 돌, 새, 짐승등과 같은 자연물에서부터 농사, 춤, 가축을 기르는 여러 가지 생활상들이 자수로 표현돼 있다.(사진: 더페어스토리 제공)

사업 내용은 단지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주택 마련이나 학비를 목적으로 무이자 융자도 지원한다. 작업장 단위로 배치되는 매니저는 작업 지도를 하며 틈틈이 영어도 가르친다. 공중보건 또한 현지의 주요 과제다. 펜두카는 지역 보건소와 연계한 클리닉 19개소를 운영하며 식사 제공 및 투약 지도를 통해 결핵 환자 수천 명의 치료를 돕는다. 지난 2012년, 창립 20주년 기념식에는 나미비아의 대통령 영부인이 참석해 축사를 했을 정도. 현지 여성분야에서 입지를 다져가는 분위기다.

펜두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만족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임주환 대표는 “정규직 상당수가 20년째 일하는 사람들”이라며 “모두 펜두카를 소중한 직업으로 여겨 떠날 생각을 안 한다”고 했다.

더페어스토리는 이들에게 특별한 친구다. 펜두카의 제품을 취급하는 첫 번째 글로벌 파트너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지난해 1월 나미비아에 다녀왔다. 수도에서 300km나 떨어진 작업장까지 일일이 돌며 워크숍을 진행했다. 당시 크리스틴 펜두카 대표는 “막 일을 시작한 젊은 여성들에겐 그들이 살아온 마을이 세상의 전부라 낯선 땅에서 온 사람을 만나는 기회 자체가 소중하다”면서 “오늘의 경험이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고 도전하게끔 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더페어스토리는 전체 매출의 2.5%를 생산지의 공동체 발전기금으로 적립한다. 2012년 사업 첫해의 수익은 차양막 설치·의자 구입 등 나미비아 생산자들의 작업장 환경 개선에 쓰였다.(사진 위) 사진 아래는 2013년 임주환 대표가 나미비아 오티와롱고 지역 생산자들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사진: 더페어스토리 제공)
‘착한 제품’아닌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어필해야

더페어스토리는 단순히 현지 제품을 들여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펜두카의 경우, 제품 개발과 브랜딩 역량을 보완하는데 집중한다. 나미비아의 자연물과 그들의 일상을 담은 특징적인 문양은 그대로지만, 색감을 비롯한 전체적인 제품 디자인은 현지와의 협업으로 완성된다.

in-pen

서울숲 직영 매장에서 취급하는 펜두카 제품은 그레이‧블루‧옐로우‧컬러링 등 4가지 타입으로 구성된다. 정돈된 톤은 각기 다른 생산자들의 감성이 담긴 자수 제품을 하나의 브랜드로 묶어준다. 지난해 12월에는 에디강(강석현) 작가, 디자인그룹 스티키몬스터랩과 콜라보레이션 전시를 열기도 했다. 향후 펜두카의 정식 상품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비교적 높은 가격대의 공정무역 상품과 소비자와의 장벽을 제품 경쟁력을 통해 허물겠다는 노력이다.

“제품 가격은 물류비와 통관비를 비롯해, 생산자들의 최저생계비를 보장할 수 있는 수준에서 책정돼요. 소비자가가 높아진다고 공정무역의 원칙을 어길 수는 없죠. 그렇다고 ‘착한 제품이니 사 달라’고 어필한다면 지속적인 고객층을 확보하기 어려워요. 지금은 소비지의 감각에 맞는 제품 개발, 일본‧홍콩 등 해외 판로 확보와 같은 다각적인 고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임주환 대표)

더페어스토리(서울 성동구 서울숲2길 38-1)

필자소개
조철희

늘 가장 첫번째(The First) 전하는 이가 된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