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응전의 역사…스타트업씬의 사업계획서 정복記
도전과 응전의 역사…스타트업씬의 사업계획서 정복記
2021.08.10 10:59 by 이창희

사업계획서는 기업의 꽃이자 무기다. 회사의 흥망성쇠가 이 문서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장에서 증명된 가치가 상대적으로 적은 초기 기업, 즉 스타트업에게는 그야말로 운명을 가름하는 것이 바로 이 사업계획서다.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투자를 받아내기 위해,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혹은 자신들이 나아갈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사업계획서를 붙들고 밤을 지새운다. 도대체 사업계획서의 어떤 면이 그들을 불면의 밤으로 안내할까? <더퍼스트미디어>에서 사업계획서를 둘러싼 스타트업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봤다.

 

사업계획서는 스타트업의 첫 번째 관문이다.
사업계획서는 스타트업의 첫 번째 관문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마케팅 솔루션을 제공하는 ‘코스메테우스(대표 태원석)’는 올해 4년차를 맞은 스타트업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지난해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입주에 이어 글로벌창업사관학교 입교에 성공했을 정도로 나름의 내실을 갖췄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사업계획서에 대한 기억은 좌절과 고난으로 점철된 ‘흑역사’에 가깝다.

“수많은 정부지원사업에 도전장을 냈지만 시도하는 족족 낙마했어요.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야 했죠. 주변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반영해보고, 사업계획서 버전을 2가지로 판이하게 만들어서 지원해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초보 창업자에게 사업계획서는 너무 고차원적인 영역이었다. 실패의 원인을 핀셋으로 집어내듯 잡아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결국 경험이 답이었다. 반복적으로 사업계획서를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했다. 6개월 전에 작성했던 버전과 지금의 것을 비교해가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고, 유독 더디거나 고민이 많이 찾아드는 대목이 바로 보완이 시급한 부분이라는 것도 깨닫게 됐다.

코스메테우스의 터닝 포인트는 사업계획서에 ‘계획’ 그 이상의 것을 담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사업계획서는 기본적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문서지만, 그 비전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경험과 실증 사례가 함께하자 비로소 조금씩 빛을 발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게 우리 비전이라고 쳐 볼게요. ‘가겠다!”는 의지와 계획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득력이 생기긴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리가 수원까진 한번 가보니, 부산까지 가려면 어떠한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 정도의 내용만 추가로 담겨도 확연히 달라지더라고요. 실제로 그렇게 사업계획서를 쓰기 시작하고부터 서류전형에선 연전연승 중입니다.”

 

코스메테우스 태원석 대표(右)와 한우철 이사.(사진: 코스메테우스)
코스메테우스 태원석 대표(右)와 한우철 이사.(사진: 코스메테우스)

이제 태원석 코스메테우스 대표에게 사업계획서 작성은 추가적인 업무의 연장이 아니다. 수많은 고민과 경험이 해당 작업을 리프레쉬 과정으로 승화시켰다. “컴퓨터 하드디스크 조각모음을 하듯 사업 전반을 정리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에게 보다 더 간결한 사업계획서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구겨버린 종이들이 마스터피스를 만든다
사람이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 한 방에 성공을 부르는 ‘원 샷 원 킬’의 사업계획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스타트업 대표들은 수없이 많은 사업계획서를 쓰레기통에 구겨 넣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곤 한다.

지난 2년 동안 100개 이상의 사업계획서를 쓰고 고치기를 반복해온 김성환 위트레인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LG유플러스 사내벤처 1호로 독립해 지금은 ‘운동닥터’라는 서비스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한때 그에게 사업계획서는 ‘넘지 못한 산’이었다.

“사업계획서에 정답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바로 그 부분이 가장 힘들더라고요. 어떤 부분을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를 찾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죠. 빠르게 변화하는 업계와 시장 특성상 업데이트도 자주 필요했고요.”

김 대표는 ‘실전이 최고의 연습’이라는 명제에서 답을 구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얻어낸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사업계획서에 반영하는 습관을 들인 것. 초창기 ‘가설’에 불과했던 그의 계획들은 실제 사업 과정을 거쳐 구현 가능성 있는 사업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되돌아보면 더욱 뚜렷한 지표를 기반으로 어필할 수 있었을 때가 가장 ‘먹히는’ 사업계획서가 됐던 것 같습니다. 그 뚜렷한 지표는 결국 사업 경험을 통해 득할 수 있었고요. (사업계획서에) 기초적인 설문조사 자료 하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정말 천지차이거든요.”

 

김성환 위트레인 대표.(사진: LG챌린저스)
김성환 위트레인 대표.(사진: LG챌린저스)

비건을 위한 수제 간식을 만드는 ‘비건포레스트’의 이나금 대표도 사업계획서라는 허들을 넘는 데 꽤나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첫 도전은 지난해 예비창업패키지. 나름대로 공을 들여 사업계획서를 쓰고 야심차게 응시했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사업계획서를 썼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심사위원이었더라도 좋은 점수를 주진 못했을 것 같아요.”

이후 이 대표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부끄러운 사업계획서를 내밀며 조언을 구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와신상담을 위해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업계획서의 기본 틀을 꾸준히 학습하면서도, 투자나 지원사업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는 ‘스스로 그렸던 사업’ 그 자체를 되돌아보는 과정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업계획서가 어느 정도 목적을 가진 문서다보니 목적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죠. 하지만 동시에 내 사업에 대한 스스로의 이해와 확신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게 됐어요. 내가 하려는 사업에 내가 납득할 수 있었을 때부터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왔습니다.”

 

|종이 한 장 차이를 하늘과 땅 차이로 만드는 디테일
컬쳐테크 스타트업 ‘필더필’의 이정은 이사는 3년 전 어느 대기업과의 협상 과정을 떠올리면 아직도 진땀이 흐른다. 사업계획서 디자인에 해당 기업과 경쟁 관계에 있던 회사의 상징 색을 사용했던 아찔한 기억 때문이다.

“대기업 고위 관계자가 ‘우리는 그 색깔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라고 말을 건네더라고요. 농담조로 한 얘기였지만,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이 이사에게는 강렬한 기억이자 교훈으로 남아 있는 디테일이다. 덕분에 그 이후부터는 항상 소소한 부분까지 거듭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정은 이사는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사업계획서의 밸런스도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분야가 분야다 보니 감성에 지나치게 호소하는 사업계획서들을 흔하게 접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문화예술이 가진 이미지에 매몰되어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는 것. 오히려 논리적 완성도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가 직원들에게 ‘사업계획서는 완벽한 논리에 갬성 한 스푼’이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배경이다.

 

권순우 그람컴퍼니 대표.(사진: 그람컴퍼니)
권순우 알프래드 대표.(사진: 알프래드)

“많을 때는 일주일에 5개 이상을 쓴 적도 있습니다. 50개는 써야 1개가 빛을 볼까 말까 했기 때문에 물량공세를 퍼붓는 심정으로 썼었죠.”

친환경 고양이 모래를 만드는 ‘알프래드’의 권순우 대표도 사업계획서에 관해서라면 밤새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잔뼈가 굵다. 초기에는 성공률이 너무 낮은 탓에 별별 시도를 다 해봤다는 권 대표. 그런 경험으로부터 터득한 ‘자신 만의 비결’은 바로 간결함이다.

“같은 사업계획서라도 간결하게 좋은 키워드를 잘 골라서 썼을 때 호평을 받고 결과가 좋았습니다. 사업계획서도 결국은 텍스트 문서고 사람이 읽는 것이니까요.”

동시에 권 대표는 사업계획서의 완성도만큼이나 창업가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멘탈’을 지킬 수 있어야 좋은 사업계획서가 나온다고 믿는다.

“투자 심사나 지원사업에서 계속 물을 먹게 되면 좌절감이 드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멘탈까지 무너져버리면 그땐 정말 끝입니다. 보완할 것은 보완하되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해요. 때론 ‘이 사업은 나랑 핏(fit)이 맞지 않는 구나’라고 생각하고 털어버리는 뻔뻔함도 필요하죠.(웃음)”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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