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 없는 사업계획서…고수들은 이렇게 쓴다
[3인3책] 통하는 사업계획서의 비결
굴욕 없는 사업계획서…고수들은 이렇게 쓴다
2021.08.10 17:25 by 최태욱

“초창기에 썼던 건 그저 헛웃음만 나오는 수준이죠. 한 심사위원께서 ‘수 백 번은 써봐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하셨는데, 이후에 실제로 족히 200개 정도 써봤던 것 같네요.(웃음)”

창업 4년차를 맞은 모 스타트업 대표의 말. 그가 수 백 번 고쳐 쓰며 씨름했던 건 다름 아닌 ‘사업계획서’다. 문자 그대로 사업의 계획을 제시하는 문서. 비즈니스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여겨질 만큼 중요하다. 비전과 미션을 비즈니스에 꾹꾹 눌러 담는 스타트업 창업자에게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답이 되고, 돈이 되며, 길이 되는 것이 바로 사업계획서의 저력이다. 그런데 중요한 만큼 난해하다. 모범답안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작성법과 관련된 레퍼런스가 차고 넘치지만, 그 어느 것도 완벽한 ‘핏감’을 얻긴 힘들다. 

수많은 팁과 노하우가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공통적으로 귀결되는 조언이 딱 하나 있다. ‘많이 써보면 분명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졌다. 진짜 많이 써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더퍼스트미디어>에서 사업계획서 작성 및 평가 분야의 ‘찐’ 전문가를 발굴‧엄선해 마이크를 넘겼던 이유다. 그들의 농축된 경험과 체계화된 철학을 직접 들어보자. 

 

사업계획서… 그것을 알려주마
사업계획서… 그것을 알려주마

| 모든 길은 ‘가격’으로부터 열린다_민광동 컴퍼니디 파트너

민광동 파트너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컴퍼니디와 그 자회사인 비즈나이츠의 컨설팅 파트너로 활약하며 마케팅전략컨설팅, R&D혁신역량강화, 스타트업역량강화 등 다양한 컨설팅 과제를 수행해왔다. 지난 2012년 대덕연구단지에서 기술벤처기업을 창업하며 사업계획서와 연을 맺기 시작했고, 이후 연구단지 내 중소기업들의 R&D사업계획서를 자문‧평가하며 내공을 쌓았다. 현재는 창업진흥원, 서울대, 한국과학기술원 등 기관 및 학교의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모델과 사업계획서 가격전략 강의를 매년 200회 이상 진행하고 있다. ‘스타트업을 하는 깐깐한 방법’의 저자이며, 법인 사업체 2곳을 직접 운영하는 경영자이기도 하다.  

"10년 넘게 사업계획서를 보다보니 ‘이것’만 보면 사업계획서의 내실을 판단할 수 있겠더라고요. 실제로 사업계획서를 넘어 사업 전반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지표죠. 그것은 바로 ‘가격’입니다. 비즈니스 아이템과 수익 모델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가격 결정의 근거가 어떤 식으로 정리되어 있는지 보면 어느 정도 사업계획서의 옥석이 가려집니다. 

 

민광동(사진) 컴퍼니디 대표
민광동(사진) 컴퍼니디 파트너

사업계획서는 태생적으로 평가받는 문서죠. 평가하는 사람이 만족해야 할 요건들이 있는 겁니다. 투자 사업계획서는 투자자들이 어떤 실익을 가져갈 수 있을지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정부지원 자금을 위한 것에는 고용창출이나 매출 같은 아웃풋이 지표로 보여 져야 합니다. 설사 내부에서만 보는 용도라고 해도 나름의 요건들이 있겠죠. 그 ‘만족해야 할 요건들’은 모두 가격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일단 가격의 근거가 미약하면 타깃 고객이 불명확해집니다. 중저가, 고가, 초고가를 선택하는 고객군은 아예 달라요. 가격을 결정했다는 것은 고객의 유형을 정리했다는 얘기와 같고, 경쟁사를 분석했다는 것과도 다르지 않죠. 이는 곧 마케팅에서 얘기하는 ‘포지셔닝’이란 용어로 이어집니다. 고객 분석, 경쟁사 분석, 포지셔닝… 스타트업에서 얼마나 중요한 개념들입니까. 실제로 가방 제작해서 오픈 마켓에 입점하려는 스타트업이 사업계획서에 명품백 유통 시장을 분석해놓는 경우도 있었어요. ‘가격’이라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죠. 

또한 가격은 마케팅 전략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가격이 책정되면 상품의 원가 또한 결정되기 때문이죠. 크라우드펀딩으로 큰 이슈몰이를 한 스타트업을 만나본 적이 있는데 제조원가가 60% 정도 되더라고요. 이 회사는 백화점 같이 수수료 높은 채널에 입점하기 힘든 구조잖아요. 이를 토대로 직판 채널을 운영하든 SNS를 활용하든 마케팅의 노선이 결정될 수 있는 것이죠. 당연한 얘기지만, 가격 전략은 재무적 목표의 기준도 됩니다. 사업계획서의 매출은 가격 곱하기 수량인데, 가격이 왔다갔다하면 목표를 제대로 잡기 힘들겠죠. 

이렇듯 사업계획서에서 가격은 모든 전략의 기준점인 동시에 외부 평가의 원천이 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접하는 사업계획서는 대부분 콘셉트 단계에 멈춰 있어요. ‘고객의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상품을 얼마에 만들어서 얼마에 팔겠다’는 얘기는 잘 못하는 것이죠. 투자자가 얼마 투자했을 때 얼마 가져갈 수 있을지 계산이 안 되는데 그 회사에 투자할 수 있겠습니까?"

 

| 물 흐르듯 스토리텔링, 강점은 확 도드라지게_신강식 파파타랩스 대표 

신강식 파파타랩스 대표는 지난 2014년부터 프레젠테이션 기획‧디자인 에이전시 ‘파파타팩토리’를 운영하며 사업계획서, 투자제안서, 회사소개서, 경영보고서 등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대기업 신사업 제안서, 대통령 보고자료, 스타트업 투자제안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해 왔으며, 올해 4월에는 PPT 판매‧공유 플랫폼인 ‘파파타랩스’를 신규 론칭하며 저변 확대에 나서고 있다. ‘신프로의 닥치고 파워포인트’ 블로그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이자, 해당 분야의 스테디셀러인 ‘신프로의 쉽고 빠른 파워포인트 디자인’의 저자이기도 하다.

"지난 10년 간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만나면서 한 결 같이 느꼈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사업계획서가 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지녔고, 이를 멋지게 비즈니스로 펼쳐갈 열정과 용기가 있는 분들이었지만, 그걸 사업계획서에 담아내는데 유독 어려움을 느꼈어요. 그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저평가되거나, 준비가 덜된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요. 결국은 ‘표현’의 문제죠. 그런 분들에게 먼저 강조했던 건 ‘스토리텔링’이에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펼치는 거죠. 이야기의 기본 방향은 ‘현재-우리-미래’입니다. 현재의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가 어떤 것을 해서, 미래를 이렇게 바꾸겠다는 거죠. 그 과정 안에 자연스럽게 시장 분석, 고객 분석, 솔루션, 수익모델, 기대효과 등이 녹아들게 하는 겁니다. 그런 흐름을 말끔히 정리하는 것은 사업의 확신을 만드는 과정이자, 자신감을 채우는 계기로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신강식(사진) 파파타랩스 대표
신강식(사진) 파파타랩스 대표

스토리텔링이 충실하고 흐름이 자연스러워지면, 그만큼 디자인의 아이디어도 풍부해집니다. 디자인은 메시지를 강조하고 집중력을 높이는 데 탁월함을 발휘하고, 이는 자연스레 설득력을 높이는 효과로 나타납니다. 내용만큼 중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생각할 수도 없는 영역이죠. 실제로 반려된 제안서에 디자인만 보완해서 좋은 성과를 거둔 사례는 의외로 많습니다. 

효과적인 사업계획서 디자인을 위해 ‘스퀘어맵’ 작업을 권해드립니다. 종이에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처럼 네모 칸을 그려넣고 스케치를 해보는 과정이죠. 스퀘어맵을 통해 흐름이 한 눈에 파악되면, 특별히 힘을 주고 싶은 대목이 눈에 쏙 들어올 겁니다. 자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라면 문제인식 파트에, 타깃으로 정한 시장이 규모가 크고 핫한 영역이라면 시장분석 파트에, 팀 빌딩에 특히 자신이 있으면 팀 구성 파트에 강한 비주얼 임팩트를 덧대어 보세요. 사업계획서 전체의 인상이 확 바뀔 수 있습니다. 밋밋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 안경이나 콧수염 같은 걸로 포인트를 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폰트‧색상까지 고민하는 디테일도 은근히 설득력을 높여줍니다. 폰트의 경우 사업 성격에 맞게 사용하면 좋은데, 전문성을 돋보이고 싶을 때는 고딕체를, 감성적인 메시지를 전할 때에는 손글씨나 아트체를 활용하는 식이죠."

 

| ‘이정표’ 보단 ‘나침반’… 유연함이 관건_이종훈 폴리앤파트너스 대표 

이종훈 폴리앤파트너스 대표는 지난 2002년 자신의 기술창업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지원 자금 컨설팅 영역에 발을 들였다. 2013년부터 5년 간 ‘정부지원자금 성공전략 가이드’를 꾸준히 집필‧출판하는 등 정부 지원사업에 특화된 컨설턴트로 활약했으며, 2014년 ‘포스원엘젤클럽’을 결성해 투자 연계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는 본업 외에도 한국관광공사 담임컨설턴트, 중소기업벤처부 수출전문위원, 창업진흥원 예비창업패키지 전담멘토, 한양대 스타트업 아카데미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만난 창업자들이 5000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사업계획서에 접근하는 자세가 다들 비슷했어요. 뭔가 ‘절대 불변의 진리’를 대하듯 한다는 겁니다. 그만큼 부담은 커지고, 틀 안에 갇혀 시야가 좁아질 확률도 높죠. ‘계획’의 본질은 기준이지, 정답 같은 게 아니잖아요. 학창시절을 떠올려보세요. 방학 때 생활계획표를 아무리 공들여 만들어도 상당 부분 잘 지켜지지 않죠. 사업은 방학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변수와 돌발 상황이 잦습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액션보다 리액션이 더 중요한 순간도 오죠. 사업계획서라는 기준점을 세우되 시장의 시그널을 잘 캐치하고, 그에 맞는 유연함과 대응력이 필요합니다. MVP, 린스타트업, 피벗 같이 스타트업씬에서 독려하는 용어들의 본질도 이와 다르지 않죠. 이 부분을 인지하면 사업계획서에 너무 어렵게 접근하거나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종훈(사진) 폴리앤파트너스 대표
이종훈(사진) 폴리앤파트너스 대표

정부 지원사업과 관련해 컨설팅을 진행하다보면 이러한 경직성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정부지원금은 그 자금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진입장벽의 높이가 천차만별이죠. R&D자금 같은 건 높은 수준의 기술과 인력을 요구하지만, 초기 자금은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것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창업자들은 그 낮은 장벽조차 버거워하죠. 이는 지원 주체가 원하는 사업이 아니라 본인이 처음에 그린 사업에 갇혀버렸기 때문이에요. 

물론 잘 쓴 사업계획서가 가져야 할 공통적인 조건들은 있습니다. 객관화가 잘 되어 있어야 하고, 정량화(수치화)가 가능해야 하며, 생애주기별 계획도 뚜렷해야 하죠. 하지만 사업계획서가 가지고 있는 목적지향성을 감안하면, 이런 교과서적인 조건을 넘어 수용자 중심의 작성법이 더욱 유효할 때가 많죠. 실제로 지원사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업 아이템을 조정하여 자금 등을 성공적으로 지원받은 후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창업팀들은 많습니다. 심지어 비즈니스 모델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죠. 스타트업의 성지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창업자들조차 유의미한 성취를 얻기까지 평균 3회 정도 창업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처음에 짜놓은 사업계획 그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거죠.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말이죠."

 

/사진: 각 사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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