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삼매경에 빠진 대기업…비결은 오픈이노베이션
집중탐구, 오픈이노베이션의 세계
스타트업 삼매경에 빠진 대기업…비결은 오픈이노베이션
2021.08.24 17:51 by 최태욱

대기업과 스타트업. 극과 극인 것만 같았던 두 조직이 서로를 끌어당긴다. 처음엔 그저 필요에 의한 한시적 혹은 전략적 동맹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 인력(引力)의 무게감이 상당하다. 어느덧 필요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 필수의 영역으로 도달한 느낌마저 든다. 그 사이 ‘오픈이노베이션’이란 용어의 개념도 점차 확장됐다. 공동 연구‧개발에나 쓰는 줄 알았던 이 말은 이제 문화와 정서의 공유까지 아우른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업이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지난 10년 간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가성비’ 좋은 기업 혁신의 방법론으로 검증을 거듭했다. 하지만 최근의 경향은 조금 특이하다. 스타트업의 달라진 위상 때문이다. 코로나19쇼크로 촉발된 비대면의 바람은 스타트업들을 훨훨 날게 했고, 엉덩이가 무거운 대기업들은 ‘나는 법’을 배우고자 스타트업의 문을 두드린다. 열려 있는 문틈 사이에서 펼쳐지는 혁신의 콜라보. 오픈이노베이션의 오늘과 내일을 톺아봤다.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동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동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 혁신의 메가트렌드 ‘오픈이노베이션’은 무엇인가
포털사이트의 대명사 네이버는 어떻게 국내 쇼핑의 게이트웨이가 됐을까? 메신저의 대명사 카카오는 언제 118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제국으로 성장했을까? 이러한 질문들의 답이 되는 전략이 바로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다. 용어에서 드러나듯 이 전략의 핵심은 개방이다. 기술 혁신을 둘러싼 모든 과정에서 외부의 기술이나 지식,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개념. 이를 통해 비용은 줄이고, 혁신의 가능성과 속도는 높인다는 복안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벤처투자나 M&A부터 기술구매, 위탁연구, 합작벤처, 해결책공모, 사용자혁신 등이 대표적인 유형으로 꼽힌다. 

대기업‧중견기업과 벤처‧스타트업의 관계라면, 일견 그 무게 추가 전자 쪽으로 쏠린다. 초창기 오픈이노베이션의 이미지가 “(대기업 측이) 가지지 못한 기술을 외부에서 싸게 조달 한다”는 쪽으로 치우쳤던 것은 그 때문이다. 벤처캐피탈의 한 투자심사역은 “여전히 업계에는 대기업‧중견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할 경우 기술이나 인력만 빼가고 버릴 것이라는 선입견이 팽배하다”면서 “초창기 투자를 빌미로 기술을 빼갔던 사례들이 비일비재했고, 이런 사례가 쌓여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져 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우리나라가 선입견과 씨름할 때, 세계무대의 선도 기업들은 열린 혁신의 공을 톡톡히 보며 저만치 치고나갔다. 단순히 필요한 기술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수준을 넘어, 고객과 시장의 요구에 민감하고 신속하게 반응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스타트업의 정수 그 자체를 체득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왔던 것. 스타트업의 빠른 속도를 벤치마킹하는 ‘패스트웍스’ 프로그램을 개발한 GE나 기업의 당면 과제를 스타트업과 함께 풀어가는 플랫폼을 구축한 유니레버 등이 좋은 예다. 특정 기업이 아니라 사용자 전체를 혁신의 첨병으로 활용하며 구글 맵이나 구글 기어스 등의 서비스를 빚어낸 구글 역시 오픈이노베이션의 최대 수혜기업으로 통한다.

 

개방형 서비스 인터페이스 구글 맵은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의 결실이다.(사진: AngieYeoh/Shutterstock.com)
개방형 서비스 인터페이스 구글 맵은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의 결실이다.(사진: AngieYeoh/Shutterstock.com)

|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미래, 혁신은 문밖에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오픈이노베이션 열기가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 스타트업과의 규합은 신사업을 위한 하나의 선택지라기 보단, 미래 생존을 위한 마지막 퍼즐에 가깝다.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한 스타트업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코로나19쇼크를 거점으로 180도 달라진 풍토다. 민첩한 대응의 조직인 스타트업은 비대면 시대라는 전인미답의 땅에 대응할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며 산업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지난 1년 간 전체 산업 고용자 수가 3% 늘어날 때, 유니콘 기업의 고용자가 44% 늘었다는 통계는 누가 시대의 대세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기업이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넘어 스타트업을 학업하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톺아보면 이해가 빠르다. 네이버는 위킵, 아워박스, 파스토, 품고 등 풀필먼트(물류 일괄 대행 서비스) 스타트업들과 지속적으로 연을 맺으며 물류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다수의 우군을 통해 물류거점을 확보하는 동시에, 스마트 물류 트렌드에 민첩하게 대응하여 이커머스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3월,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를 인수한 롯데쇼핑의 행보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통의 명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온라인에서 부진이 이어져 온 롯데쇼핑이 비대면 중고거래 서비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온라인 시장에서 성장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포부가 숨어 있는 것. 아예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시도에도 오픈이노베이션은 유효하다. 자산관리 솔루션 핀테크 스타트업 ‘뱅크샐러드’와 몸을 섞은 KT, 스마트팜 스타트업 ‘에이아이플러스’를 인수한 SK매직은 각각 마이데이터 사업과 스마트농업 분야의 진출을 위해 스타트업을 교두보 삼은 케이스다. 

 

네이버의 AI 번역기 ‘파파고’ 역시 ‘크라우드웍스’라는 스타트업과의 공동프로젝트로 탄생한 오픈이노베이션의 결과물이다.(사진: sdx15/Shutterstock.com)
네이버의 AI 번역기 ‘파파고’ 역시 ‘크라우드웍스’라는 스타트업과의 공동프로젝트로 탄생한 오픈이노베이션의 결과물이다.(사진: sdx15/Shutterstock.com)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위기를 타개해주며 새로운 분야에 도전케 하는 동력은 단연코 혁신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수십 개의 계열사에 수많은 인재를 보유한 대기업은 유독 혁신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몸이 움츠러든다. 많은 전문가들은 “조직이 오래되고 규모가 클수록 변화가 어렵다”는 말로 대기업의 한계를 표현한다. 한 대기업 출신의 스타트업 종사자는 “대기업에선 하나의 의사결정을 위해 이해 가능한 수준의 문서화 작업과 연관 부서 보고, 스케줄링 등을 거치며 2주가 넘는 시간이 소요되지만, 액션 중심의 업무를 수행하는 스타트업에선 이틀이면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속도와 효율성의 차이는 고스란히 업무 동기와 추진력의 차이로 이어지며 혁신을 저해한다. 때마침 들이닥친 코로나펜데믹 상황은 혁신 없이는 미래도 없다는 걸 여실히 증명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 삼매경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마지막 퍼즐…이것이 진정한 ‘윈윈’이다
오픈이노베이션은 기본적으로 동반성장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대기업에게 미래 혁신의 자양분을 제공하는 창구가 되는 것처럼, 스타트업에게도 스케일업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작용한다. 대기업과 한 배를 탄 스타트업은 그 배 안의 많은 것을 제 것처럼 누릴 수 있다. 풍부한 재원과 인력, 시장 경험과 관계망, 지적재산권, 데이터, 설비 등이 그것이다. 시장에서 빠르게 검증받는 것이 목표인 스타트업에게 대기업의 후방지원은 그야말로 순풍을 넘어 광풍에 단 돛이나 다름없다. 우아한형제들이나, 수아랩, 스타일난다 같이 해외자본을 등에 업은 스타트업의 폭발력이 좋은 예다. 

특히 벤처투자금 회수 시장이 위축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M&A로 대표되는 오픈이노베이션 활동은 스타트업 생태계 전체를 활성화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M&A를 통해 자금을 회수한 창업자가 이를 시드삼아 재창업을 이어가는 실리콘밸리식 스타트업 문화가 꽃피우는 것이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한 관계자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절반 이상이 초기 단계에서 엑시트를 하며 대부분 M&A가 이뤄진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19년 기준, M&A를 통한 엑시트는 0.5%에 불과할 정도로 M&A에 대한 준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9년, AI스타트업 수아랩(SUALAB)을 인수한 미국 딥러닝 개발기업 코그넥스. 해당 M&A는 기술 분야에서 대표적인 인수 사례로 꼽힌다.(사진: Pavel Kapysh/Shutterstock.com)
지난 2019년, AI스타트업 수아랩(SUALAB)을 인수한 미국 딥러닝 개발기업 코그넥스. 해당 M&A는 기술 분야에서 대표적인 인수 사례로 꼽힌다.(사진: Pavel Kapysh/Shutterstock.com)

지금까지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업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끌어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바야흐로 스타트업도 대기업을 밀어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진정한 의미의 ‘윈윈’이 가능케 된 것이다. 물론 스타트업의 방식이 혁신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며, 오픈이노베이션이 역시 혁신의 만능키는 아니다. 오히려 사업 규모, 인적 구성, 관리체계 등 서로 간의 이물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헛힘만 쏟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어쩌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대기업의 묵직함이 재평가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명한 건, 적어도 지금 우리는 오픈이노베이션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이다. 갈수록 한계가 드러나는 대기업과 갈수록 기회가 드러나는 스타트업이 만난 꼭짓점이 오픈이노베이션의 최적점이며, 지금이 바로 최적의 시기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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