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진정한 프로를 양성하는 사관학교 꿈꿉니다”
이종훈 롯데벤처스 상무(투자본부장) 인터뷰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진정한 프로를 양성하는 사관학교 꿈꿉니다”
2021.09.06 14:10 by 최태욱

스타트업의 원천은 무엇일까? 괴짜의 번뜩임이나 뼛속 깊은 소명감 같은 것일까? 혹은 한 분야에서 켜켜이 쌓인 내공일까? 의외로 많은 전문가들은 그 답을 ‘학교’에서 찾는다. 좋은 스타트업을 완성하는 사람과 기술, 아이디어가 모두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와 그로부터 배출되는 인재가 실리콘밸리의 토대가 된 것처럼 말이다. 알만한 기업들이 회사를 ‘캠퍼스’라 칭하는 것도 그래서다.

스타트업과 학교. 이 조합에 꽤나 어울리는 인물이 바로 이종훈 롯데벤처스 상무다. 다소 오묘한 표현이지만, 그는 “학교가 좋아서 학교를 나와 기업에서 일하고 있고, 기업의 일이 재밌어서 학교를 떠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엔젤투자, 벤처캐피탈, 스타트업CFO 등 혁신 최전선에서 격동기를 누볐고, 기술경영학(MOT) 박사, 창업대학원 교수, 정책연구 및 기고 활동 등을 덧대며 ‘실사구시’까지 추구했던 이력은 이채롭기까지 하다. 풍성한 경험과 탄탄한 지식으로 생태계 최고의 훈수꾼을 자처하는 이종훈 상무를 만나, 그의 ‘배우고 익히고 행하는’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이종훈(사진) 롯데벤처스 상무
이종훈(사진) 롯데벤처스 상무

| 혁신의 급물살…그 위에 사뿐히 올라탔던 15년
좋은 기운과 때를 만나 이름을 떨치는 사람을 ‘풍운아’라 부른다. 이종훈 상무가 딱 그렇다. 아무리 낯설어도 새롭고 옳은 방향이라고 판단하면 큰 고민 없이 움직였고, 결과는 대부분 좋았다. 공학도 출신으로 대기업 기술마케터로 활약하던 그가 돌연 창업 생태계에 입문할 때처럼 말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벤처투자하는 분들은 주로 경영‧경제 쪽에서 나왔어요. 증권사 출신들이 특히 많이 넘어오던 때였죠. 그런데 당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분야의 투자 건이 갑자기 늘면서 기술과 산업을 아는 투자심사역이 필요하게 됐죠. 지인으로부터 제안이 있었는데, 직감적으로 ‘잘 몰라도 일단 부딪쳐보자’ 싶더라고요.”

우연한 기회로 발을 들인 세계지만 적성도 맞았고 재능도 드러냈다. 업무는 늘 흥미진진했고, ‘세상을 바꾸는 일’이란 사명감도 동기부여가 됐다. 무엇보다 주변의 훌륭한 벤처캐피탈리스트 동료들이 넘쳐나서 심사역이라는 일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그렇게 6년, 두 곳의 벤처캐피탈을 거치며 열정과 냉정 사이를 넘나드는 투자의 세계를 온 몸으로 경험했다. 하지만 지나친 역동성은 때때로 실패와 좌절의 불씨가 된다. 투자에 실패하기도 하고, 불미스런 소송에도 휘말리기도 했다. 연이은 취업 번복의 쓰라린 경험도 맛봤다. 그렇게 서서히 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가 내 자리가 맞나?” 의심하고 있을 때쯤 삶을 ‘피벗’할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공부였다.

“일하면서 틈틈이 강의도 했어요. 당연하게도 처음엔 협회나 공공기관 대상 특강사 ‘땜빵’자리로 시작했는데 점점 비중이 커졌죠. 그런데 경험만 가지고 전달하다보니 한계가 오더라고요. 과거 유학생시절 공학박사 문턱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한(恨)도 다시금 떠올랐고요. 공부와 학위에 대한 갈증이 목까지 차올랐을 때 길이 딱 열렸죠.”

대학 창업 분야를 선도했던 한양대가 그 ‘길’이었다. 당시 대학 창업펀드와 창업보육센터 등을 새로이 구축 중이던 한양대는 추후 학생 창업을 이끌어 줄 외부의 인재가 절실했고, 이종훈 상무는 안정적으로 공부에 매진하면서 커리어를 새롭게 만들어 갈 환경이 필요했다. 둘 사이의 니즈가 절묘하게 맞았던 것. 곧장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의 팀장역할을 맡으며, 동시에 기술경영전문대학원(MOT)에 들어가 박사 과정을 함께 시작했다. 낮에는 젊은 학생들과 초기 창업가들을 도우며, 저녁과 주말엔 바로 옆 건물에서 혁신과 창업 대한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던 나름 풍요로운 시절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학위 논문이 바로 ‘한국 벤처캐피탈의 창업초기기업 투자에 관한 연구’였다.

 

산업계와 학계를 거치며 실행력 있는 이론을 축적한 이종훈 상무
산업계와 학계를 거치며 실행력 있는 이론을 축적한 이종훈 상무

창업을 열망하는 젊은 학생들과의 동고동락은 즐거운 일이었다. 학생들은 이종훈 상무의 경험과 지식을 쑥쑥 빨아들이며 기업가정신을 키웠고, 이종훈 상무 역시 그들 속에서 열정의 온도를 유지했다. 한양대를 나와 국민대 글로벌창업벤처대학원으로 적을 옮긴 후에도 즐거움은 줄지 않았다. 그가 두 곳의 학교를 거치며 배출한 학생 창업팀 수는 따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종훈 상무는 “학생들과 밤 새워가며 액셀러레이터 사이트를 만들거나, 온라인 스타트업 백과사전을 편찬했던 일이 떠오른다”면서 “한양대와 국민대가 국내에서 제대로 된 창업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데 있어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면에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 “학교 밖에도 학교는 있다” 롯데벤처스에서 꾸는 꿈
강단에 서는 일은 보람만큼 부담도 있었다. 분야가 분야이니 만큼 늘 실전에 적용 가능한 이론을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이를 위해 자신의 현장 경험을 교보재로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에 부쳤다. 이 상무는 “내가 공부한 것과 경험한 것의 균형이 잘 맞아야 힘 있는 교육이 되는데, 3년 정도 지나자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어디서 주워들은 것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직감적으로 ‘다시 현장으로 나가야할 때’라는 판단이 내려진 순간이었다.

그렇게 도달한 곳이 바로 지금의 롯데벤처스다. 롯데그룹의 오픈이노베이션 전담 조직인 롯데벤처스는 스타트업 펀드 운용부터 벤처투자, 엑셀러레이팅에 이르기까지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의 마중물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이미 200개에 이르는 스타트업을 투자‧육성하고 있을 정도로 살림이 크다.

산학연을 넘나들며 광폭행보를 펼쳐왔던 이 상무이지만 오픈이노베이션은 유독 ‘잘 맞는 옷’이다. 대기업-스타트업 모두의 혁신에 기여하는 업무 특성이, 관계와 성장에 특화된 자신의 성향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최근 ‘포모증후군’(FOMO Syndrom‧소외되는 두려움)까지 거론될 정도로 기업들의 경쟁과 참여가 거세지고 있다는 측면도 그의 풍운아적 혈기를 부채질했다. 무엇보다 오픈이노베이션이야말로 격변하는 시대의 돌파구이자 생태계 모두의 상생전략이라는 믿음이 투철하다.

“우리가 ‘베어로보틱스’란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거기서 서빙로봇을 만들었어요. 덕분에 롯데그룹의 F&B매장은 그 로봇을 세계 최초로 적용해볼 수 있었죠. 스타트업은 시장 검증을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고, 대기업은 혁신의 경험과 자신감을 얻죠. 모두 각각의 조직들이 혼자서 해내긴 힘든 것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픈이노베이션 활동의 매력이자 보람이죠.”

 

롯데벤처스가 투자한 베어로보틱스의 서빙로봇은 현재 668만개의 테이블에 서빙하고 있다.(사진: 베어로보틱스)
롯데벤처스가 투자한 베어로보틱스의 서빙로봇은 현재 668만개의 테이블에 서빙하고 있다.(사진: 베어로보틱스)

오픈이노베이션은 획기적인 만큼 어렵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전략은 모두가 뜻과 힘을 합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 상무는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오픈이노베이션 활동이 성공할 확률은 벤처투자의 성공률과 비슷할 것”이란 말로 그 어려움을 표현했다. 그래서 더 중요해지는 게 사람의 역할이다. 롯데벤처스를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한 ‘사관학교’로 만들고 가고 싶은 열망도 그로부터 나온다.

“우리 조직의 장점은 광대한 활동 범위에요. 오픈이노베이션 활동을 중심으로 초기기업 발굴, 국내‧외 투자, 교육‧보육 운영 등을 전부 아우르죠. 시작부터 그런 목적을 지향했고, 이를 조금 더 고도화하는 게 제 역할이에요. 팀원들에게 이는 굉장한 기회입니다. 생태계 선진화를 이끌어 갈 인력을 배출할 수 있는 좋은 무대니까요.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함께 성장하고, 이 과정에서 사람과 생태계까지 성장하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인 셈이죠.”

 

| CMO? CPO? 별명 속에 담은 철학
이종훈 상무는 롯데벤처스의 입사 후 최고의 성과를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좋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라고 답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 외부 파트너, 스타트업 등이 모두 그 ‘좋은 사람들’에 포함된다. 사람이 핵심 자산이 되는 VC업계에서 이는 어떤 성과지표보다 값지다. 그가 그리는 혁신 ‘사관학교’의 청사진 역시 그 바탕은 사람들이다.

이를 위해선 자신을 ‘광대’로 희화화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상무라는 직함, 교수라는 타이틀 대신 재미있는 별명으로 ‘부캐’를 만드는 것도 그래서다. 대표적인 것이 ‘CMO’와 ‘CPO’다. C레벨의 직책을 연상시키지만, 사실은 그냥 막걸리(m)와 식물(p)을 제공하는 사람이란 뜻이란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걸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이유는 물론, 관계와 성장을 중요시하는 그의 철학까지 살며시 담아 놓은 별명이다.

 

이종훈 상무는 전국팔도 막걸리를 찾아다니는 막걸리 애호가다.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전국에서 막걸리를 보내 온다고 한다.
이종훈 상무는 전국팔도 막걸리를 찾아다니는 막걸리 애호가다.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전국에서 막걸리를 보내 온다.

이종훈 상무는 스타트업 생태계는 “관계로 시작해 관계로 끝난다”며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막걸리는 그 관계를 위한 매개체다. “막걸리 들고 찾아 갈게요”라는 인사는 대기업 상무의 방문을 여는 마법의 주문이다. 그리고 그런 너스레가 어떤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게 이 바닥이다.

식물은 성장과 관리의 가치를 함축한다. 사무실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집과 사무실 곳곳에도 이 상무의 손을 떠난 화분들이 빼곡 자리 잡고 있다. 지금도 이 상무는 종종 투자한 스타트업이나 회사에서 막내에게 식물화분을 선물한다. “그 화분이랑 함께 쭉쭉 커보라”는 의미다.

 

이종훈 본부장 덕분에 롯데벤처스 사무실은 늘 자연친화적이다.
이종훈 상무 덕분에 롯데벤처스 사무실은 늘 자연친화적이다.

이종훈 상무는 스타트업 생태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경험들을 품어왔다. 2007년을 시작으로 벤처캐피탈의 격변기를 경험하며 사모펀드(PEF) 설립과 운영까지 두루 경험했다. 엔젤투자자로서 엔젤투자클럽 운영도 해보고, 엔젤투자 협회의 각종 활동에도 참여했다. TIPS 프로그램을 위한 국가연구과제도 수행했다.

왕성한 활동력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실리콘밸리, 뉴욕, 이스라엘, 중국의 상해‧심천‧북경‧홍콩, 인도, 싱가폴,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직접 경험해보기도 했다. 외교부·코이카와 함께 팔레스타인과 같은 후진국의 벤처생태계를 돕는 활동에도 참여했다. 직접 플레이어로 뛰어 본 경력도 주목할 만하다. 창업 최전선에서 제조 스타트업의 CFO로서 투자유치를 진행한 경험도 있고, 실패했지만 작게나마 교육 분야 창업에 도전한 적도 있었다.

이런 경험은 고스란히 상아탑의 혁신에도 활용됐다. 논문과 보고서를 통해 벤처투자 이론을 체계화했고, 학생 창업가들을 양성하며 생태계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현재도 벤처창업학회 이사이자 논문 심사위원으로써 새로운 연구들을 가장 먼저 만나고 있으며, 한양대 겸임교수로써 꾸준히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이런 왕성한 활동력에 대해 스타트업 생태계의 한 관계자는 “한 개인이 10여 년 간 이 생태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수준”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차곡차곡 쌓인 경험과 내공이 도달한 곳은 결국 ‘사람’이다.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상아탑에서 잠시 걸어나온 이유도, 롯데벤처스를 산업 현장의 사관학교를 만들겠다며 박차를 가하는 이유도 스타트업의 원천이 사람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 그가 기울이는 막걸리 잔 너머의 바로 그 사람 말이다. 아마 그는 오늘 저녁에도 어딘가에서 혁신 한 사발을 건네고 있지 않을까?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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