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서나 살아 숨 쉬는 예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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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서나 살아 숨 쉬는 예술을 위해’
‘세상 어디서나 살아 숨 쉬는 예술을 위해’
2015.11.17 11:47 by 최태욱

치열한 세상이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 물음에 응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누군가는 창업을 했고, 어떤 이는 공방을 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갈 길은 멀다. 제대로 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다.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성동구청과 함께 꾸려가는 사회공헌 창조공간으로,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혁신기업가‧예술가‧비영리기획자 등이 함께한다. 더퍼스트는 이들의 도전이 활짝 꽃피우는 그날을 기대하며 ‘변화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위누(weenu)’
지난 11월 펼쳐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서 펼쳐진 문화 참여형 프로젝트 <노는지, 플레이성수>의 소책자

여기저기 산적한 안내 책자와 각종 문서더미, 가쁜 몸놀림으로 연신 무언가를 확인하는 직원들. 지난 12일 방문한 사회적기업 ‘위누(weenu)’의 첫인상은 ‘분주함’이었다. “이것 때문이에요. 기자님도 홍보 많이 해주세요.”

허미호(34) 위누 대표가 하얀색 소책자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노는지, 플레이성수」라고 적힌 브로셔. 서울시 성수동에 위치한 독특하고 창의적인 공간 50여 곳을 소개하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각종 예술 프로그램을 한데 엮은 프로젝트다.

일상과 예술의 만남을 도모하는 위누가 최근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일이라고 한다. “나만의 노는 지도를 만드는 참여형 지역 전시 프로젝트에요. 동네에서 소소하게 하는 건데도, 참여하는 작가들의 프로필이 어마어마하죠.” 허 대표의 설명에 아티스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묻어난다. 벌써 9년째, 빛을 보지 못하는 예술가들과 예술을 보지 못하는 대중을 이어온 힘이다.  

예술가를 동경한 경영학도, 예술을 경영하다
허미호 위누 대표

“피아노를 7년 넘게 배웠는데도 학원에서 제일 못 치는 아이였어요. 미술도 6년이나 했는데 열등생을 벗어날 수 없었죠. 함께 배웠던 친구들은 지금쯤 훌륭한 음악가나 화가가 돼 있을 겁니다.(웃음)”

허미호 대표 마음속에 ‘예술에 대한 동경’이 자리 잡기 시작한 이유다. 관심과 애정은 넘쳤지만, 재능이 부족했던 허 대표는 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 대학교(이화여대 경영학과) 3학년 시절이던 2002년부터 예술을 다루는 회사 창업의 밑그림을 그렸고 2007년 결실을 맺었다. 예술 공유 서비스기업 ‘위누’의 탄생이다.

초기 아이템은 중저가 예술작품을 모아 온라인상에서 판매하는 사이트였다. “어릴 적부터 해외에 나갈 기회가 많았는데, 나갈 때 마다 예술이 정말 대중적으로 퍼져있다는 걸 많이 느꼈죠. 어느 거리를 가도 바이올린 연주가 들렸고, 가난한 나라의 작은 여관에도 멋진 그림이 여러 개 걸려있었어요. 우리나란 달랐죠. 몇 십 만원을 호가하는 고급예술 아니면, TV를 통한 대중문화가 전부였어요. 그 중간에서 활약하는 작가들과 이를 원하는 소비자를 연결해주고 싶었습니다.”

2005년에 만들어진 미국의 ‘엣시닷컴(ETSY.com)’은 좋은 참고가 되었다. 수공예 장식품이나 작은 사이즈의 그림 등 중저가 예술작품을 판매하는 전문 쇼핑몰이었다. 이를 본 따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첫 도전은 실패에 가까웠다. 온라인 시장은 낯설었고, 소비자는 외면했다. “몇 백 개 단위로 팔려나가야 회사 인건비 정도의 수수료가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수공예로 만들어지는 작품의 특성상 팔려봐야 몇 십 개였어요. 그마저 꾸준히 올려줄만한 작가도 없었고요.”

기회는 오히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온라인 시장의 생리를 익히고 작가들의 관심도 유도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DIY키트’를 자체 제작해 유명 온라인 업체에 입점 시켰는데 그게 대박이 났던 것. 당시 국내 최대의 온라인 마켓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용품 1위를 기록했을 정도라고 한다. 허 대표는 “그때 올린 매출로 설립 초반 회사를 지탱할 수 있었다”면서 “소문을 듣고 신진 작가들이 우리를 찾기 시작한 것도 의미 있는 성과”라고 회상했다.  

2014년 9월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교육프로그램 ‘미술하는가족’에서 김성용 작가가 참여가족들에게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1000명이 넘는 예술가 네트워크가 최고의 자산

현재 사회적기업 위누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활동은 ‘아트업페스티벌’이다. 지난 2012년부터 위누가 직접 기획․진행하고 있는 환경예술 페스티벌로, 30시간 동안 100여명의 예술가가 폐자원으로 업사이클링 작품을 만드는 축제다. 지난 4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제4회 행사는 ‘폐 플라스틱’을 주재료로 일반인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2015년 4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렸던 제4회 아트업페스티벌에 참여한 100인의 예술가들이 작품의 소재로 사용할 폐자원을 고르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한국메세나협회 등과 함께 하고 있는 ‘예술교육프로그램’, 네이버 문화재단과 함께하는 ‘헬로! 아티스트’, 현대차그룹과 함께하는 ‘브릴리언트(brilliant)30’ 등도 위누를 대표하는 온․오프라인 프로그램. 이런 활동이 가능한 이유는 시나브로 구축해온 다양한 예술가 네트워크 덕분이다. 예술에 대한 관심과 예술가에 대한 동경을 오롯이 새겨 넣은 회사인 만큼, 가장 보람된 순간 역시 ‘예술가들이 돋보일 때’다.

“처음 온라인 쇼핑몰을 할 땐 100여명에 불과했던 예술가 풀이 이젠 1500여명에 달해요. 그 중 반 정도는 새로 만들어지는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참여합니다. 이렇게 모인 작가들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해요. 각자 생각과 표현법이 다른 예술가들을 조율해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어 주는 것도 위누의 중요한 역할이죠.”  

환경부터 다문화까지, 예술로 푸는 사회문제

설립 9년차, 부침을 겪으며 국내를 대표하는 문화예술 사회적기업으로 발돋움한 위누. 지난해에는 대기업과의 임팩트 투자 계약을 성사시키며 사업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인정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환경문제를 예술로 풀어내려 했던 시도 역시 공로를 인정받았다. 지난 9월, 서울시 환경상 ‘환경보전 분야’ 부분 수상자로 선정된 것. 허 대표는 “환경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정된 시스템을 갖춰졌다고 생각해 다른 이슈에도 도전장을 내민 상태”라고 했다.  

2015 청계천 업사이클 페스티벌 ‘류’에 방문한 시민들이 버려진 LP판을 이용해 만든 엄아롱 작가의 <도시의 도베르만>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위누의 다음 타깃은 ‘다문화’. 이미 중앙대학교 다문화연구소와 MOU를 맺고, 다문화 인식 개선을 위한 인형극 키트를 개발하는 등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어느덧 중견기업가가 된 허미호 대표가 꿈꾸는 위누의 미래는 뭘까?

“해외에서도 영향력을 갖는 기업이 되고 싶어요. 인도네시아에서 ‘아트업페스티벌’을 개최한 것도 그런 시도죠. 현재 사업이 오프라인으로 약간 치우쳐져 있는데, 온라인의 비중을 키워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한 목표입니다.”

카이스트(KAIST) 사회적기업가 MBA 1기 졸업생답게, 선배 사회적기업으로서의 책임감도 강하다. “사회적기업을 배우고 경영하면서 롤 모델의 중요성을 알았어요. 우리도 해외의 훌륭한 기업들을 배우며 직원들과 미션을 공고히 했고요. 미약하나마 우리도 그런 회사로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