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웹툰 되살리는 스타트업, OTT 시장에 도전장 던지다
조규석 투니모션 대표 인터뷰
잊힌 웹툰 되살리는 스타트업, OTT 시장에 도전장 던지다
2021.10.08 16:00 by 이창희

웹툰은 스마트폰의 출현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문화 콘텐츠다. 한 해 5000편 이상의 작품이 쏟아지며 1조원이 넘는 시장규모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1차 소비성 콘텐츠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태생적 한계도 가지고 있다. 여러 단계의 시장을 거치며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영상물과 달리 한 차례 소비되고 나면 사실상 수명이 다하기 때문이다.

조규석(45) 투니모션 대표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영화·드라마화 되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폐기되는 작품들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시대를 풍미했지만 잊힌 작품이나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작품, 조금만 손대면 명작 반열에 오를 작품까지… 그의 손을 거친 웹툰은 애니메이션으로 변신해 OTT 시장에서 부활을 노린다.

 

조규석 투니모션 대표.
조규석 투니모션 대표.

|‘애니 덕후’였던 X세대, 공학도의 길을 포기하다
조규석 대표는 어려서부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소위 ‘X세대’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대학(한양대 공대)에 입학한 후에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좀처럼 전공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했고, 급기야 군 전역 후 진로마저 바꿔버렸다. 8개월 동안 미술학원을 드나든 끝에 세종대 애니메이션과 00학번으로 입학하고야 만 것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한참 늦었던 입시 준비는 이내 한계를 드러냈다. 무언가를 그리는 건 즐거운 일이었지만, 주변에는 그보다 잘 그리는 이들은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프리미어’ 같은 툴을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편집하는 작업에 재미를 붙이며 대학 4년을 다녔다. 그리곤 졸업과 동시에 후미진 지하창고를 구해 4명의 대학 동생들과 애니메이션 제작팀을 꾸렸다. 학과 교수의 소개로 의뢰 받은 워너브라더스의 애니메이션 외주 제작이 첫 도전이었다. 이를 계기로 사업자를 내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팀원들이 전부 동생들이었던 터라 영업부터 계약서 작성, 수금까지 ‘작업 이외의 업무’는 제가 모두 도맡아 해야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창업이라기보다 ‘개업’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조규석과 아이들’은 그렇게 꼬박 7년을 일했다. 밥 먹듯 밤을 지새우고 클라이언트의 끝없는 퇴짜와 수정 요청을 감내하며 버틴 치열한 시간들이었다. 물론 고달프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조금씩이나마 수익이 늘었고, 무엇보다도 필요했던 경험과 기술력이 쌓여 갔다.

 

조규석 대표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된 지하창고.
조규석 대표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된 지하창고.

|드론스포츠 애니 ’에어로버’ 통해 진정한 창업자로 도약
지하창고에서 공력을 쌓은 조 대표는 2013년을 도약의 해로 삼았다. 대표가 아닌 감독으로서 창작작품에 도전한 것이다. 인력을 충원하고 법인을 설립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에 나선 것. 외주를 벗어나 콘텐츠 기획·개발을 통해 독자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픽셔너리 아트팩토리’의 시작이었다.

세계 최초의 드론스포츠 애니메이션으로 국내를 비롯해 전세계로 수출된 ‘에어로버’가 바로 픽셔너리 아트팩토리의 작품이다. 당시 급부상하던 드론 기술에 큰 흥미를 느낀 조 대표는 아이디어를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2015년 국산창작캐릭터 발굴지원사업에 선정되고 이후 2016년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기획개발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스페이스 드론 캐릭터 매뉴얼북 및 드론 샘플 제작에 착수했고, 이듬해 캐릭터 라이선싱 페어에도 참가했다.

그렇게 에어로버는 2D 캐릭터 디자인에 3D UHD 배경을 사용한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고, 2018년 새해 벽두부터 MBC에서 방영을 시작했다. 1월부터 5월까지 ‘시즌 1’, 9월부터 12월까지 ‘시즌 2’로 나뉘어 총 26차례 전파를 탔다.

 

세계 최초의 드론스포츠 애니메이션 ‘에어로버’.
세계 최초의 드론스포츠 애니메이션 ‘에어로버’.

에어로버는 당시 저 연령대 시청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디테일 측면에서도 업계의 호평을 받았다. 단순히 캐릭터 간 대결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성장 드라마를 부각시켰고, 드론협회의 자문을 통해 안전하게 드론을 날리는 법부터 준수해야 할 항공법 등도 꼼꼼하게 반영했다. 등장인물의 국적과 인종을 다양하게 구성한 점이나 성 고정관념을 탈피해 남녀 캐릭터 모두 차별 없이 배치한 점 등 시대를 앞서갔던 시도들도 즐비하다.

하지만 조 대표는 에어로버로 받은 호평보다는 작품을 제작하고 마케팅하는 과정이 더욱 값진 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3년 동안 하루 3시간씩 자면서 아시아·유럽·중남미까지 진출해 배급을 위한 노력을 쏟았다. 그 사이 창업가로서의 내공과 역량도 서서히 무르익고 있었다.

“당시엔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일했어요’(웃음) 해외 출장 다니면서 낮에는 관계자들 대상으로 IR피칭을 하고, 밤에는 호텔에서 시나리오 작업하는 게 일상이었죠. 사업기획부터 제작, 배급, 스텝 관리, 해외 영업, OTT 플랫폼들과의 협상까지 다 하려니 정말 눈코 뜰 새가 없었죠. 돌이켜보면, 그런 경험이 제게 남은 가장 큰 자산입니다.”

 

에어로버의 해외 배급을 위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의 미팅.
에어로버의 해외 배급을 위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의 미팅.

|‘OTT 홍수’에서 살아남기 위한 항해
에어로버는 그에게 커다란 성취를 가져다 줬지만, 반대로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손수 제작한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와 고통이 요구된다는 현실도 깨닫게 해 줬다. 해외에 비해 작은 규모의 인력 시장과 극심한 단가 경쟁, 제작비용 대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의 부재 등이 그것이었다.

이는 조 대표가 픽셔너리 아트팩토리를 떠나, 2019년 투니모션을 설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많은 현실적 어려움과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정통 애니메이션 대신 조금 더 효율적이며 효과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런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웹툰의 재활용이었다.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보는 게 웹툰이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작품을 한 번 보고나면 곧바로 새로운 걸 찾죠. 힘들게 만든 웹툰들이 금방 소비되거나 잊혀지고 맙니다. 이 웹툰들을 애니메이션으로 되살려 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웹툰 기반의 애니메이션 콘텐츠 트랜스 미디어 기업’으로 투니모션의 닻을 올린 조 대표는 공격적으로 사업화에 뛰어들었다. 15명의 직원 중 경영지원 파트를 제외한 절반 이상의 인력을 과감히 제작팀으로 꾸렸고, 웹툰 IP(지적재산권) 확보를 위해 밤낮없이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기술적 고도화에도 집중했다. 정적인 이미지에 관절을 분절화해서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디지털 컷아웃’ 기법을 통해 불과 2주 만에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일반 애니메이션이 기획부터 제작까지 길게는 수 년 가까이 소요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굉장히 획기적인 대목이다.

“급성장하는 시장과 소비 속도가 빠른 소비자들을 따라가려면 콘텐츠 수급의 속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을 공급할 수 있어야 시장과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으니까요.”

 

투니모션에서 제작 예정인 웹툰들.
투니모션에서 제작 예정인 웹툰들.

성과는 빠르게 드러났다. 지난해 SBA콘텐츠 제작 마케팅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웹툰 ‘화화원행기’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고, 이는 올 하반기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에 관심을 갖는 OTT 기업들이 늘어났고, 글로벌 프로젝트 제안까지 받았다. 이미 웹툰의 영상사업권을 20개 이상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국내 대형플랫폼에 서비스중인 인기 웹툰 중 40개 작품을 선정해 해당 플랫폼과 협상할 계획도 구체적으로 세워 놓은 상태다. 

“아직은 거대한 목표를 설정하긴 이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어떤 새로운 흐름을 일으키는 역할은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죽어있는 웹툰을 살려서 활성화되는 걸 증명한다면, 다른 애니메이션 기업들의 동참도 이끌어낼 수 있겠죠. 그런 선순환을 바탕으로 웹툰과 애니메이션이 OTT 시장에서 상생하는 그림을 그려봅니다.”

 

/사진: 투니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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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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