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숭숭 창업교육…이게 정말 최선인가요?
창업자 5인이 말하는 창업교육의 문제
구멍 숭숭 창업교육…이게 정말 최선인가요?
2021.10.12 18:06 by 이창희

지난해 기준 국내 연간 창업자 수는 150만명에 달한다. 올해 창업지원 예산은 1.5조원을 넘어섰고, 그중 창업교육에는 828억원이 배정됐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교육의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2019년 글로벌 기업가정신 모니터(GEM)에 따르면 한국은 정부 지원 부문에서 6.14점으로 54개국 중 5위를 차지한 반면 창업교육 부문은 4.36점으로 37위에 머물렀다. 이에 <더퍼스트미디어>는 실제 다양한 창업교육을 경험한 창업자들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들이 경험한 대학·정부기관·민간 분야의 창업교육은 생각보다 크고 복잡한 문제들을 지니고 있었다.

 

국내 창업교육의 문제점은 학생교육의 문제점만큼이나 많다.
국내 창업교육의 문제점은 학생교육의 문제점만큼이나 많다.

|물은 있는데 비료가 부실한 스타트업 육성
창업자들이 앞 다퉈 지적한 지점은 분야를 불문하고 창업교육이 가진 태생적 구조의 문제다. 교육보다 지원금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보니 양질의 교육이 자리 잡을 공간이 없고,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업 3년차인 AI 스타트업의 대표 A씨는 “한 푼이 아쉬운 초기 스타트업에게 자금 지원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면서도 “기관에서 하는 상당수의 교육이 예산 소진을 위해 적당히 채워 넣어 만들어진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가 지난해 글로벌창업사관학교에서 수강한 AI 교육은 매번 다른 강사가 강의를 맡았는데, 교육 시간의 절반가량을 AI 기초 이론에 할애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곳에서 이미 배우고 익혔던 것과 똑같은 내용을 반년 동안 수십 차례나 반복해야 했다. A씨가 교육으로 소비했던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고 토로하는 이유다.

예비창업패키지와 청년창업사관학교를 거친 반려동물 스타트업 대표 B씨는 교육 자체의 다양성이 실종됐다고 말한다. 그는 “초기 창업교육의 8할은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사업계획서’ 같은 교육에 치중돼 있다”며 “조직 운영이나 기업가정신 같은 기본적인 소양 교육은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지나치게 원론적인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올해 각종 창업교육 모집 포스터. 본문 내용과는 무관.(사진: 각 기관)
올해 각종 창업교육 모집 포스터. 본문 내용과는 무관.(사진: 각 기관)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대표 C씨도 예비창업패키지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C씨는 “사업자 혹은 법인 등록 방법은 가르치면서 정작 세금계산서 발행 같은 기초적인 방법론에 대한 교육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나중에 사업을 하면서 세무사를 통해 이런 저런 것들을 깨닫고 난 뒤에 아찔했던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맞춤식 교육의 부재를 꼽는 이들도 있었다. 스마트팜 스타트업의 CTO로 재직 중인 D씨는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지원사업 과정에서 이를 여실히 경험했다. 그는 “농업이 다른 분야보다 지원사업 종류가 적어서 그런지 교육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라며 “젊은 영농인들은 스마트팜 이해도가 높고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기술까지 도입되고 있는데, 원격 제어 같은 초기 IoT 기술을 신기술이라고 소개해서 상당히 난감했다”고 회상했다.

“스타트업을 식물로 비교했을 때 물이 자금이라면 비료는 교육이죠. 물을 잘 주면 어떻게든 자라긴 하겠지만, 좋은 비료가 없으면 부실하게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A씨)

 

|그들에게 필요한 건 ‘잘난 사람’이 아닌 ‘도움을 줄 사람’
창업자들이 일선에서 만나게 되는 강사와 멘토들 중 함량이 미달인 사례도 상당하다. 혹여 이들이 충분한 역량과 의지를 갖췄더라도 교육 프로그램 자체의 한계가 뚜렷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A씨는 대학교 창업지원단에서 경험한 창업교육을 떠올리며 “아직도 한숨이 나온다”고 끌탕했다. 학교 교수 중에 창업 경험이 전무한 인물이 강사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경영학 강의 시간에 가르치던 걸 한 학기 가까운 시간 동안 반복했다”며 “교재도 대체 언제 적 것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지경”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C씨가 만난 멘토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대체로 대기업 출신이라는 화려한 경력에 비해 창업 경험과 이력이 전혀 없는 경우가 많았다”며 “오늘날 트렌드는 전혀 모른 채 자신의 성공담만 끝없이 늘어놓는 이들 때문에 상당히 피곤했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놨다.

D씨 역시 “농업 관련 기관에서 적당한 직급의 관계자가 떠밀리듯 파견돼서 교육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스마트팜 기술로 성공한 기업 관계자나 창업자가 교육에 참여하면 질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량과 의지를 갖춘 멘토의 존재는 창업교육의 핵심이다.
역량과 의지를 갖춘 멘토의 존재는 창업교육의 핵심이다.

2019년 예비창업패키지에서 B씨가 만난 담당 멘토는 앞선 경우보다 더욱 황당했다. B씨의 사업 성장과 방향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사업비 사용에만 관심을 보였다. 만날 적마다 ‘추가적인 패키지 교육이 필요하지 않느냐’, ‘디자이너가 필요하지 않느냐’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심지어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에 사업비를 사용하면 나중에 ‘페이백(pay-back)’을 해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B씨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거절했지만 창업지도사 자격증을 갖고 멘토를 하는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역량 있는 멘토 풀이 존재함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얻지 못한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 LG 사내벤처 출신의 스타트업 대표 E씨는 지난해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섭외한 화려한 멘토 리스트를 보고 큰 기대를 가졌지만 이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강의와 멘토링 비율이 9:1 수준이다 보니 멘토링은 사업 소개하다 보면 끝이 난다”며 “너무 많은 창업자들을 일일이 만나다 보니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멘토들도 많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힘들게 키워놓은 창업씬, 헌터·좀비에 장악되지 않으려면
창업자들은 현 창업교육이 가진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세심한 커리큘럼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본적이지만 꼭 필요한 소양 교육과 함께 기업 특성에 따른 맞춤형 교육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B씨는 “우리나라는 창업 붐을 타고 창업지도사 같은 창업교육 관련 자격증을 남발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업 멘토보단 창업 경험이 풍부하고 실제 스타트업에 몸담고 있는 이들을 교육 현장으로 투입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이나 정부 산하기관이 창업 공간과 내부 교육을 통으로 일임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A씨는 “대학과 기관은 자금·공간을 지원하는 데 힘쓰면서 내부 프로그램은 창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민간에 맡기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양질의 창업교육은 기업 성장의 밑거름이다.
양질의 창업교육은 기업 성장의 밑거름이다.

C씨는 최근 한 액셀러레이터를 통해 경험한 교육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기초교육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법률·세무·인사·마케팅 등으로 세세하게 분류한 커리큘럼이 인상 깊었다”며 “대표자가 모두 참석하는 게 아니라 직무에 맞는 담당자만 가서 들었는데 모처럼 효율적이고 남는 게 많았던 교육”이라고 회상했다.

근본적으로 의무교육 단계부터 창업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D씨는 “이제는 특별한 사람들만 창업을 하는 시대는 아니다”라며 “창업교육이 잘 이뤄지고 창업이 활발한 국가들의 경제지표가 높게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진단했다.

“자금 지원 중심의 창업지원은 지원사업 헌터나 좀비 스타트업만 양산할 뿐이죠. 교육을 통해 내실이 구축돼 있어야 느리더라도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설혹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될 테고요.”(B씨)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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